[지리/관광]
...성공했다면 현재의 우리 모습은 어떠할까를 그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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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해방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장충단에 모여들고 있었다. 이들은 당시 전재 동포 또는 귀환 동포로 불렸다. 특히 해방 초기에 돌아오고 있는 동포들이 전재민(戰災民)으로 표현됐던 것은 이들이 자발적인 선택에 따라 이주한 것이 아니라 중일전쟁과 아시아·태평양전쟁 과정에 강제로 동원돼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던 전쟁 피해자, 일제 전시동원 체제의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들에 대한 도움이 필요하다는 정서가 지배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1945년 8월 31일, 조선재외전재동포구제회를 시작으로 수십 개에 이르는 구호단체들이 결성되고 조선건국준비위원회와...
[정치/군사]
...서북(평안도·황해도·함경도)에서 남으로 내려온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은, 도산 안창호의 후예들로 해방 이후 백만명, 전쟁 시기 수십만 명의 인원이 남하하여 반공 민족주의, 근대화 세력, 반독재 투쟁 세력이 되어 대한민국의 소금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였다.
구사일생. 대한민국의 생존은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었다. 만주사변, 중일전쟁 이후 15년간의 전쟁기간 동안 물자와 인력의 대거 징발로 한반도는 매우 피폐해졌고, 더욱이 남한은 농업중심지로 전력과 대규모 공업시설은 북한에 집중되어 해방시기에 극심한 혼란과 고통을 겪었다.
소련 점령군의 지령을 받은 남로당의 선전·선동, 격렬한 폭동과 대규모 게릴라침투에도, 신생국가 대한민국은 1950년에 쌀을 수출할 정도의...
[정치/군사]
이 책은 한반도를 둘러싼 대륙세력과 일본세력이 얽혀 전쟁한 역사적 사실들만 추출해서 10장으로 구성하여 역사를 기술한다. 시기적으로는 삼국시대인 4~6세기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 및 663년의 백촌강전투부터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 그리고 한국전쟁까지의 관련 역사이다. 4~6세기부터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경까지이다.
‘역사의 기본적 사실’은 한국에서 출판된 한국사를 기본으로 하고, 역사의 기본적 사실에 대한 ‘역사적 시각 혹은 관점’은 일본에서 출판된 일본사 및 세계사와 영미에서 출판된 역사서 등을 기본으로 하였다. 역사에 대하여 객관적인 눈으로 바로 보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이다. 타인의 시각이 곧 자신에...
[학술논문] 이와쿠니 재일조선인 여성의 역사
본 논문은 야마구치현 이와쿠니시로 도일한 재일조선인 여성의 역사에 관한 문헌 자료와 구술자료 수집·연구를 통해, 이와쿠니 조선인 여성의 식민지 지배에 따른 이주 경험과 전후 이와쿠니에서 지속된 민족차별의 역사적 조건과 그에 맞선 여성들의 활동을 고찰한 연구이다. 야마구치현 이와쿠니는 중일전쟁 하에 건설된 구일본군항공 기지에서 기원한 미군 해병대 기지가 있는 곳으로 다수의 조선인이 강제 동원되어 다수가 사망했으며 그 중에는 여성, 아동, 유아 사망자도 많았다. 일본의 패전과 조국의 해방을 맞아, 이와쿠니 조선인 여성들은 민족학교를 세워 민족교육운동에 헌신했다. 또한 그녀들은 이와쿠니의 정치·지정학적인 위치에 따른 조선인에 대한 탄압과 혹독한 생존권의 위협에 맞서 싸웠다. 계속되는 일본...
[학술논문] 일본 防衛硏究所 소장 조선 주둔 일본군 관계 사료의 구성과 성격 -‘滿洲-朝鮮’ 史料群을 중심으로
...같은 특징을 보인다. 첫째, 중일전쟁 이후 생산된 자료가 90%에 이를 만큼 압도적으로 많다. 둘째, 각종 병영공사 관련 설계서가 60%이상을 차지하며, 조선군 경리부가 작성 혹은 보관한 자료가 많다. 셋째, 전쟁 종결 후 쓰여진 戰史자료 및 부대일지 등이 포함되어 있다. 넷째, 편철기준이 없어 보이되 다양한 자료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사료군의 특성을 고려해보면 다음과 같은 활용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1) 각종 지리지 및 다양한 설계서 등으로 일본군 병영 증축에 대한 실체적 접근이 가능하다. (2)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의 도서 방비 조사와 이에 관란 자료를 활용할 수 있다. (3) 북한지역 일본군 병영 확장의 지리적 특수성과 공간의 역사성을 규명할 수 있다. (4) 중일전쟁 이후 일본군 증설에 대한 새로운...
[학술논문] 한국창극사를 통해서 본 해방공간 창극 연구
...‘전편(全篇) 창극’이 이뤄졌다. 이때는 김창환을 이어 송만갑, 이동백, 김창룡, 정정렬 등 근대의 5명창들이 창극을 주도했다. 1919년 3・1운동 뒤의 일제의 이른바 문화정치와 그 뒤를 이은 1930년대의 전통문화 운동이 일어나던 때였다. 창극이 나름대로 일정한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당시는 일제강점기였고,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으로 일제는 전시(戰時) 체제로 들어갔다. 창극은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해방 후 창극은 비로소 재도약 시기를 갖게 된다. 좌우익의 대립이란 사회적 갈등과 경제적 침체란 기본적 사회적 문제가 있었지만, 당시 고조된 민족주의와 함께 국악인들이 ‘대한국악원’을 중심으로 모였고, 국악인들은 창극을...
[학술논문] 해방이후 《동학사》의 비판적 수용과 농민전쟁연구
...‘역사소설’이라는 표지에 대하여 당시 조선총독부의 전시통제로 인하여 수많은 책들이 판매 금지를 당하는 상황이었으며, 특히 영창서관과 발행자인 강의영 명의의 출판물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있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오지영의 저작은 판매 금지 대상이 아니었다. 이유의 하나로 1940년 1월 4일자 『매일신보』기사를 검토하였는데, 오지영과 영창서관은 중일전쟁 선전에 일부 협조함으로써 출판 자체의 탄압은 받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하였다. 다음으로 해방이후 《동학사》의 영향과 농민전쟁 서술의 변화에 대해서 우선 당시 김상기의 『동학과 동학란』에는 오지영의 서술에 대해 언급되지 않았으며 물론 폐정개혁 12개조도 분석되지 않았다. 반면 정규호는 개별 논문에서 오지영의 저작을 그대로 인용하였고, 폐정개혁 12개를 그대로...
[학술논문] 안보위협이 과거사 인식에 미치는 영향 : 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 타결에 관한 국내여론 분석
동아시아는 과거 식민지배, 중일 전쟁, 태평양 전쟁, 한국전쟁 및 냉전으로야기된 서로 공유되지 않은 역사인식으로 인하여 여전히 불안정한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특히 1991년 8월 위안부 피해 당사자의 증언으로부터 시작된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국과 일본 양국의 대표적인 정치외교 갈등으로 여겨져 왔다. 최근 일련의 북한위협으로 부상하고 있는 일본의 역할 증대에 관한담론들은 종종 일본의 과거사 문제와 연동되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본 연구는 북한으로부터의 안보위협이 위안부 합의를 바라보는 한국 국민들의 역사인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하여 분석하였다. 본 논문은 국내결집효과(rally’round the flag effect)와 보수정당의 안보분야에 대한 이슈소유권(issue ownership)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