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북한 문학자들의 소련기행과 전후 소련의 이식
이찬, 이기영, 그리고 한설야는 1946, 1947년 그리고 1949년의 소련 기행에 대한 글들을 통해서 ‘전후 복구’ 시기의 소련의 경제개발, 교육, 선전선동 및 문학예술 그리고 민족 정책 등을 자세히 소개하였다. 이찬은 ‘즈다노프’의 보고를 자세히 소개하고 이것이 북한의 문학예술 정책의 기본 노선이 되는데 기여하였다. 그는 또한 소련작가동맹의 ‘예술 대중화 운동’을 소개하여 북한에서 ‘군중문화사업’ 및 ‘예술 써클-운동’이 전개되는데 기여하였다. 이기영은 소련의 경제 개발 및 전후 복구 정책을 자세히 소개하고, 북한 주민들을 국가건설에 동원하는 데에 소련의 ‘사회주의적 경쟁’과
[학술논문] 조선문학가동맹과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의 대립과 그 원인, 1945~1953
...등과 달리 식민지 조선에서는 ‘인민전선’이 확고하게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북조선문예총의 문학자들은 인민전선의 형성을 통한 인민민주주의 국가의 수립을 지지하면서도 문학에서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성’을 강조하는 모순된 입장을 취했다. 이런 경향은, 북한문학이 전후 소련의 문학 정책인 ‘즈다노비즘,’ 즉 공산당의 강력한 검열과 통제를 통해 문학예술에서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성을 강화하는 정책을 수용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반면에, 조선문학가동맹은 루카치의 ‘세계관에 대한 리얼리즘의 승리,’ 즉 작가의 세계관과 그의 문학적 성취는 별개라는 입장이었고, 이를 좌파와 중간파가 협력하는 중요한 이론적 근거로 삼았다. 이러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