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제2차 국공내전기 미 해병대 중국 파병과 북한-중공 군사 동맹의 형성에 대한 연구
1945년 8월 15일을 기해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자, 중공은 소련군을 돕고 일본군을 무장 해제한다는 명목으로 화북과 만주로 병력을 급파하여 군사적 입지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이런 중공군의 군사 활동은 얄타 협정과 일반명령 제1호에서 보장한 국민당 정부의 역할 규정에 역행하는 것이므로 장제스는 중공군을 제지하고자 하였다. 중공과의 전면전을 준비하는 한편, 장제스는 1945년 8월 29일에 마오쩌둥과 함께 전후 국정 운영을 논의하고자 충칭에서 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에서 국공 양 측은 건국 방침 및 당파의 합법적 평등 인정에 대해 공감을 표했으나, 군대 조직 문제에서 상당한 이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로 인해 국공 양 측은 일본군 무장 해제 및 군사적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무력충돌을 벌임으로써 심각한 분열양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