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식민지 조선의 支那文學科의 운명 ― 경성제국대학의 支那文學科를 중심으로
This study focuses on the Department of Chinese Literature Department in Keijo Imperial University in colonial Chosǒ̌n in the 1930s to 1940s. Dealing with Takeshi Karashima, a professor at the departments, Choi Chang-kyu(1st graduating class), Kim tae-jun(3rd), Bae-ho(9th), and Lee Myong-sun(12th), this study aims to explore what context the academic discourse of the Chinese literature produced in
[학술논문] 安敬根이 걸어 간 한국근현대사 -독립운동에서 통일운동으로-
...교관 직을 사임하고 상해로 귀환하였다. 괄목할만한 군사활동 이력의 소유자임을 짐작할 수 있다. 1932년 4월 虹口義擧를 계기로 성립된 한ㆍ중 연대를 배경으로, 그와 金九의 인연도 본격화되었다. 그는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 洛陽分校 내 韓人特別班과 韓國特務隊獨立軍學生訓練所로 짜여진 김구 항일특무조직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는 김구의 신변경호뿐만 아니라, 天津·上海 등지를 무대로 항일특무활동을 수행하였다. 김구의 모친과 아들도 그를 통해서야 김구와 만날 수 있었던 사실은 그의 역할과 비중을 알려준다. 1936년 11월 10일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황해도 의원’에 선임되었고, 1937년 7월 16일 대한민국임시정부 軍事委員會 상무위원에 선임되었다. 1946년 5월경 귀국하여, 1948년 4월 이른바 ‘남북협상’에...
[학술논문] 北韓 소장 미공개 申采浩 遺稿의 현황과 성격
1928년 신채호가 일제에 피체되어 수감된 후, 그의 많은 유고는 천진에서 독립운동을 펼치고 있던 박용태에게 일시 맡겨졌다. 그런데 이후 신채호 유고는 해방 후 북경 주재 북한대사관을 통해 북한으로 유입되어, 현재 평양 인민대학습당에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간 남한에서 신채호자료가 집성된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이 자신들이 소장하고 있는 신채호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전해진 일부 자료를 제외하고는 수록할 수 없었다. 그런데 신채호 전집 발간을 추진하던 2006년, 신채호 유고 수집을 위한 북한과의 접촉과정에서 유고 목록과 일부 사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북한이 소장하고 있는 신채로 유고가 최소 53건 4,979쪽 이상임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필자가 북한과의 접촉과정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