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식민주의적 고조선사 인식의 비판과 과제
일본의 식민주의적 고조선사 인식은 단군부정 연구와 한사군 역사지리 및 낙랑군연구로 집약되어 있다. 먼저 檀君에 대해서는 관련 사료가 고려시대 이후 출현하고 있다는 문제를 부각하여 고려시대 불교적 인식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신화로 규정하여 단군말살을 기도하였다. 또 일부에서는 단군을 일본 天照神의 동생이라 하여 일본신화로 왜곡하기도 하였다. 이같이 단군을 말살하거나 왜곡한 것은 단군이 국권회복의 구심점으로 부각되자 단군을 역사에서 제거하여 식민통치를 원활히 하고 내선일체를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키 위한 기도였음을 보여준다. 또한 고조선역사에 대한 검토는 철저히 외면한 채 한군현과 낙랑관련 연구만을 진행해 우리 역사의 독자적 출발과 한제국과 맞서 싸웠던 강력한 국가 고조선을 제거하고 한국의 역사는 漢나라의
[학술논문] 북한 초기 역사학계의 단군신화 인식과 특징 -리상호와 리지린의 연구를 중심으로-
이 글은 초기 북한의 역사학계에서 진행된 단군신화를 둘러싼 논의가 어떠한 문제의식 속에서 진행되었으며, 어떠한 결과로 귀결되었는지를 살펴본 것이다. 북한의 고조선 논쟁은 1959년에서 1963년까지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주요 쟁점은 고조선의 위치와 영역에 대한 문제였다. 고조선의 중심지를 요녕설(遼寧說)과 평양설(平壤說)로 보는 견해가 대립하였는데, 요녕설은 주로 역사학자들이 주장하였고 평양설은 고고학자들이 주도하였다. 이 과정에서 역사학자들의 요녕설이 논쟁의 우위를 차지할 무렵 단군신화에 대한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토론을 주도했던 연구자는 요녕설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리상호와 리지린이다. 이들은 단군신화의 역사성을 강조하면서 신화 속에 내재된 역사적 사실을 찾으려고 하였다. 그 결과 북한 역사학계는 단군신화가...
[학술논문] 「朝鮮人民歷史講座」(1950)과 歷史敎育-樂浪郡의 위치비정을 중심으로-
...420여 년 동안 한반도의 북부를 지배하였다고 가르쳤다. 이는 조선이 일찍이 또 오랫동안 중국의 식민지 내지는 그와 비슷한 처지였다는 歷史像을 교육하여 일본의 식민 지배를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들려는 것이었다. 「조선인민력사강좌」에서 낙랑군을 비롯한 한사군이 요동에 있었다고 하여 이를 부정하였다. 1950년 전후 북한 역사학계에서는 종래의 ‘낙랑평양설’을 부정하고, 낙랑을 비롯한 한사군의 위치를 요동에 비정하는 설이 대두하였다. ‘낙랑요동설’은 논쟁의 여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인민력사강좌」에 채택되는 등 정설처럼 되었다. 이는 새로운 국가의 새 서울인 평양이 과거 ‘식민지’의 중심이었다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근대 민족주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