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식민주의적 고조선사 인식의 비판과 과제
...단군부정 연구와 한사군 역사지리 및 낙랑군연구로 집약되어 있다. 먼저 檀君에 대해서는 관련 사료가 고려시대 이후 출현하고 있다는 문제를 부각하여 고려시대 불교적 인식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신화로 규정하여 단군말살을 기도하였다. 또 일부에서는 단군을 일본 天照神의 동생이라 하여 일본신화로 왜곡하기도 하였다. 이같이 단군을 말살하거나 왜곡한 것은 단군이 국권회복의 구심점으로 부각되자 단군을 역사에서 제거하여 식민통치를 원활히 하고 내선일체를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키 위한 기도였음을 보여준다. 또한 고조선역사에 대한 검토는 철저히 외면한 채 한군현과 낙랑관련 연구만을 진행해 우리 역사의 독자적 출발과 한제국과 맞서 싸웠던 강력한 국가 고조선을 제거하고 한국의 역사는 漢나라의 식민지인 漢四郡으로부터 시작했으며...
[학술논문] 木簡에 보이는 古代國語 表記法
三國志 魏志東夷傳 東沃沮條의 內容 分析을 通하여 韓民族이 기원 1세기부터 漢文 文書를 作成할 줄 알았고 帳簿도 管理해왔음을 밝힌다. 그것의 방증자료로 漢四郡 時代의 文字資料인 평양시 낙랑구 정백동에서 출토된 木簡을 제시한다. 百濟 木簡과 新羅 木簡의 자료 분석을 통하여 釋讀 表記의 事例와 吏讀發達의 과정을 검토하고, 吏讀, 口訣, 鄕札의 混用 事例를 確認한 후 그것의 文字史的 意味를 밝힌다. 木簡資料로 본 吏讀의 發達史에 대해서는 ‘模倣(imitation)-選擇(selection)-變形(transformation)’의 3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학술논문] 「朝鮮人民歷史講座」(1950)과 歷史敎育-樂浪郡의 위치비정을 중심으로-
...420여 년 동안 한반도의 북부를 지배하였다고 가르쳤다. 이는 조선이 일찍이 또 오랫동안 중국의 식민지 내지는 그와 비슷한 처지였다는 歷史像을 교육하여 일본의 식민 지배를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들려는 것이었다. 「조선인민력사강좌」에서 낙랑군을 비롯한 한사군이 요동에 있었다고 하여 이를 부정하였다. 1950년 전후 북한 역사학계에서는 종래의 ‘낙랑평양설’을 부정하고, 낙랑을 비롯한 한사군의 위치를 요동에 비정하는 설이 대두하였다. ‘낙랑요동설’은 논쟁의 여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인민력사강좌」에 채택되는 등 정설처럼 되었다. 이는 새로운 국가의 새 서울인 평양이 과거 ‘식민지’의 중심이었다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근대 민족주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