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한중수교 20년의 평가와 전망에 대한 연구
올해는 한국과 중국이 정식으로 수교한지 20주년이 되는 해로 양국의 문화 부처가 공동으로 2012년을 한중 우정의 연도로 선포할 정도로 한중양국은 급속한 성정과 우애를 다져왔다고 할 수 있다. 한중양국은 1992년 8월 24일 정상적인 외교관계를 선언하면서 외교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렸다고 할 수 있으며, 올해 이명박 대통령은 북경을 방문하여 후진타오 주석과 만남자리에서 한중양국이 새로운 도약을 위한 성장 동력을 마련하기 위하여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논의하는 토대를 마련하였다는 것은 향후 한중관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중간의 교역량을 보면 1992년에 비해 약 30여배의 증가를 보여 왔을 뿐만 아니라 한미 교역량을 초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심화하고 있어 이에 대한 정책적 고려를...
[학술논문] 광복 후 ‘안중근 의사 유해 찾기’의 경과와 역사적 검토
...광복 후 70여 년간 안의사유해찾기의 과정을 정리하고, 향후 과제를 전망하고자 한 것이다. 광복 후 안의사유해의 봉환을 처음 제기한 것은 1946년 3월 안의사 순국 36주기에 맞추어 우덕순 등이 성립한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였으나 구호에 그치고 말았다. 그리고 안의사유해찾기에 누구보다 고심하던 백범이 1949년 서거하고, 6·25전쟁 이후 남북 대립이 극심해진 상황에서 안의사유해찾기는 관심에서 오랫동안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안중근의사의 동상이 남산에 세워지고, 순국기념일에 추모식을 거행하면서도, 안의사유해찾기는 엄두를 내지 못한 채 20여 년이 넘는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1980년대 들어 중국 개방의 바람이 불면서 국교수교 전이라 해도, 민간차원의 방문이 허용되면서 안의사유해찾기도 활기를...
[학술논문] 심양 서탑 코리아타운의 변화와 민족문화축제
...다양한 이해당사자들과의 인터뷰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다. 심양 서탑의 한인사회는 1910년경에 확립되었는데, 약 50여 한인가정이 살았다. 1922년에는 봉천(심양)의 서탑지역에는 401가정 1,902명의 한인들이 살면서 점차 정미소를 비롯한 다양한 상점들로 조선거리를 형성했다. 그러나 1945년 8월15일 해방 이후 많은 조선인들이 한국으로 돌아갔으며, 1948년 11월 심양이 공산당 정부에 의해 해방될 때 서탑의 조선인상점은 규모가 작은 31개 상점만이 남았다. 198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정책 이후, 서탑의 조선족거리는 새로운 발전을 모색했는데,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서탑은 조선족집거지에서 조선족과 한국인, 북한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코리아타운으로 발전했다. 현재 서탑에는 조선족사회 외에 700개의...
[학술논문] 경제교류와 안보협력 사이에서: 정체된 대중 인식의 결정요인 분석(2003-2013)
... 경험한 전쟁세대보다도 한중 수교 이후에 성장한 에코세대가 중국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다. 이는 2010년 이후 북한의 점증하는 군사적 위협에 민간한 젊은 세대의 비판적 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셋째,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낮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들은 향후 이론적, 정책적인 측면에서 향후 연구를 자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학술논문] 재외국민의 향수와 고향의 의미 - 중국 선양(瀋陽), 단둥(丹東) 지역을 중심으로 -
본 연구는 현재 재외국민들의 고국에 대한 관념과 향수를 이주자 자신의 감정, 정서 및문화적 환경을 중심으로 하는 감정인류학적 분석을 통해 재현하고자 하였다. 재중한국인이거주하는 선양과 단둥은 1992년 한중수교를 전후한 시기에 이주가 시작되어 20여년이라는짧은 이주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한국과 거리가 가까워 언제든 왕래가 가능하나 중국이 이민수용국이 아니기 때문에 고국에 언젠가는 돌아가야 한다는 사회구조적 조건이 존재한다. 또한 고구려 및 항일 유적지가 가까이 있고 조선족, 북한사람들과 마주치는 기회가 많기 때문에 재중한국인들은 남한에서는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시간과 공간, 장소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 생긴다. 그 결과 재중한국인들에게는 개척자적 향수, 성찰적 향수, 구조적․복원적 향수의 형태가 나타난다. 개척자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