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군사]
... 이는 근대적 사상이 아니라 외세에 대한 적개심과 원한에서 비롯된 퇴행적 성격이 강했다. 1919년 3.1운동 직후, 조선과 만주, 중국에는 무려 아홉 개의 공산주의 단체가 생겨났고, 지식인들은 공산주의를 이상향으로 바라보았다. 상해파, 이르쿠츠파, 고려공산당, 화요회, 북성회 같은 조직들이 속속 결성되며 사회 전반으로 번져갔다.
그러던 중, 전 세계의 판도를 바꾼 회담이 열렸다. 1945년 2월, 크림반도의 얄타에서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이 모여 전후 질서를 협의했다. 독일 처리 문제와 유엔 창설, 그리고 태평양 전쟁의 종결을 위한 소련의 참전 조건이 논의되었다. 하지만 한반도 문제는 단 30분 만에 신탁통치라는 결정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는 사실상 분단을 예고한 것이었다.
[정치/군사]
《반도의 붉은 별》은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직후까지 조선 공산주의 운동의 흐름을 중심으로, 그 내부의 갈등과 분열, 그리고 이념의 허상까지 파헤치는 역사소설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민족보다 이념을 앞세운 선택이 어떻게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이어졌는지 묻는다.
6.25 전쟁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장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그 복잡한 원인과 전개, 그리고 인물들의 내면은 여전히 심도 있는 탐구를 요구한다. 신간 《반도의 붉은 별_소설 박헌영》은 이러한 역사적 과제에 응답하며, 특히 박헌영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전쟁의 이면과 이념 갈등이 빚어낸 비극적 인간상을 탁월하게 조명한다. 이 책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을 넘어,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인물들의 선택과 운명을 분석함으로써 독자에게 깊은 성찰의...
[사회/문화]
...소설가”라는 평을 다시금 환기시킨다.
▶ 우키시마호 침몰 사건,
바다에 잠긴 이름들을 부르기 위해
2025년 3월, 1945년 폭침한 우키시마호의 승선자 명부가 모두 확보되었다. 우키시마호는 광복 직후 일본에서 귀환하던 조선인들을 싣고 부산으로 출항한 일본의 수송선이다. 1945년 8월 24일 선체 밑부분에서의 폭발로 침몰했다. 표제작 「도항」은 이 ‘우키시마호’ 침몰 사건을 다룬다.
광복 직후, 일본에 있던 조선인들은 며칠 만에 일터와 집을 뒤로하고 떠나라는 일본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배에 올랐다. 반강제로 끌려온 것처럼 반강제로 내보내진 사람들을 태운 배에는 김상구도 타고 있다. 일찍이 도항해 나고야에서 일하던 김상구는 자신을...
[통일/남북관계]
...외교관으로 지낸 저자가 들려주는 소중하고 귀한 독립운동가 귀암 김용중 선생의 이야기
분단국가의 외교관으로 평생을 보내버렸다는 사실에 허탈하던 저자는, 우연히 재미 독립운동가인 귀암 김용중 선생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간 선생의 이야기는 교과서나 역사 관련 서적에 거의 소개되지 않아 잘 알려지지 않았다. 선생은 해방 직후부터 분단이 되면 내전이 일어날 것이 뻔하므로 그것을 기필코 막아 보려 애를 쓰고, 결국은 전쟁이 터지고 말자 중립화를 통해 분단을 해소하고 통일을 이루기 위해 미국 내에서 평생을 바친 선각자이다.
구한말 이래 한반도의 영세중립을 한번쯤 주장한 정치인이나 지식인들이 더러 있기도 하지만, 30년을 끊임없이 전 인생을 바쳐 노력해 온 사람은 없다...
[사회/문화]
... 1945년 이후는 교육과정 개정이 시기 구분의 기준이 되나 시기별로 다루기보다 학교를 구분한 후 해당 교육과정의 변화를 다루는 방식을 취하였다. 남한의 경우 학제 및 학교급 교육과정 변화의 개요를 먼저 소개한 후 2019 개정 및 2022년 개정까지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각 시기별 특징을 다루었다. 유치원은 개화기부터 존재했으나 제2, 3부에서 다루지 않았기에 제16장에서 함께 다루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1945년 해방 직후에 일제강점기에서와 같이 한 개의 중등학교 체제를 갖추고 있다가 분화되었기에 제18장에서 함께 다루었다. 북한은 학제의 변화와 학교급별 교육과정의 개요를 소개하고, 총론 편제표나 일부 교과서 사례를 통해 교과 교육과정의 특징을 소개하였다.
[학술논문] 해방 후 김기림의 행적(업적) 속에 담긴 문화정치사적 함의에 대하여
...계기를 맞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말하자면 현실적, 이데올로기적 강박의 분위기로 인하여 하나의 전향선언문격 글을 공식화하여 발표하고 그의 행방 직후 시기 언설적 실천 양상을 스스로 부인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1950년 6월, 남북 간에 전쟁이 발생하는 상황을 맞게 되자 그의 상황 판단은 다시 한 번 흔들리고, 결국 인민 정치 보위부 앞에 스스로 몸을 노출하게 됐던 김기림은 이후 체포되어 끌려가는 상황을 맞게 되고, 이로써 그의 생의 마지막 행로는 영원히 실종 상태를 감수하지 않을 수 없는, 민족사적 비극의 또 한 유형을 이루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해방 후 좌고우면한 김기림의 이러한 행적은 기본적으로 김기림이 이데올로기적 인간이 될 수 없었음을 말해준다. 김기림은 실무적으로 뛰어난 인간이었다고...
[학술논문] 재북한일본인들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북한의 일본인기술자 정책(1945~1950)
해방직후 북한의 재북일본인 정책과 조선인들의 일본인관은 한국현대사의 전개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테마이다. 일제 식민권력이 붕괴되면서 조선인들이 제 기관들을 접수하고 일본인 고위관리들을 체포·처벌하는 과정은 조선총독부 권력으로부터 조선인 자치기구인 인민위원회로 이어지는 권력의 이양과정이 어떤 양상을 띠었는가를 선명히 드러낼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이 상당히 단절적이었음은 분명하지만, 국가를 운영해본 경험이 없었던 북한지도부가 일제의 기관과 전문 인력을 그대로 물려받았다는 점은 어느 면에서 양자가 연속성을 띠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일본인들을 향해 분출된 조선인들의 반일감정을 분석하고 있는 이 연구는 일제시기에 형성된 민족주의가 해방을 계기로 표면화되는 과정이 현대 남북한 각각의 국민과 인민의 형성에...
[학술논문] 해방정국의 청년 유교단체 ‘대동회’ 연구
...그동안 그 전모가 밝혀지지 않았던 해방정국의 유교 단체 대동회의 활동과 성격을 분석하는 것이다. 이를통해 그동안 간과되어 왔던 해방 후 유교계의 건국운동과 통일국가수립운동을 복원하여 유교와 근대 정치제도(민주주의, 사회주의) 사이의 관계에 대해 논증하는 것을 2차적 목적으로 삼았다. 이를 위해 필자는 대동회 관련 자료를 새로 발굴하여 그 역사와참여자에 대한 조사를 수행했다. 조사 결과, 대동회는 초기 유교계 통합을 목적으로 출범했으나 해방정국의 열광과 혼란 속에서점차 좌파 정치사회단체로 성격을 변화하였다. 출범 시기 대동회는 일제하 명륜학원 출신들로 구성된 청년 유림 단체로서 해방정국 초기에 유교계에서 가장 강력한 조직력을 발휘했다. 일제하비밀 독서모임인 대동사를 모체로 해방직후에 결성된 대동회는유교계 통합의...
[학술논문]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전후 강제동원 피해의 범위와 보상논리 변화
본 연구는 전시기 조선인 강제동원의 역사가 해방 후 피해 보상체계를 거치면서 어떻게 규범화하고 정의되었는지,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어떤 모순점들을 잉태했는지를 명확히 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따라서 시기적으로 해방 직후부터 한일청구권협정을 거쳐, 민간청구권보상체제가 성립되어 보상을 이룬 1970년대까지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해방 직후 미군정은 식민지기 원호회를 해산하면서 강제동원 피해자의 원호금을 일정 정도로 보상했다. 이후 1948년 한국정부 수립 이후에는 정부 스스로가 1949년 인구총조사를 실시하면서, 징용, 징병, 미귀환, 사망 등도 함께 조사했다. 한편, 귀환자들 사이에서도 스스로 징용, 징병에 의한 미수금, 사망, 부상 등 피해사실을 조사하여 국회와 정부에 보상을 요구했다. 그리고 미귀환의 문제...
[학술논문] 복수의 ‘민주주의’들 ― 해방기 인민(시민), 군중(대중) 개념 번역을 중심으로
...포괄적 대변체였다. 그러나 분단과 단독 정부 수립이라는 정치적 토대 아래, 이 다양한 지향점들을 단일화시키기 위한 권력의 통치 기술은 점차 교묘해지면서 강화되었다. 그 배후에는 각기 소련과 미국의 對韓 선전정책이 자리잡고 있었다. ‘민주주의’와 관련된 계열어의 번역 역시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인민’의 경우 해방 직후에는 좌우파 양자에서 모두 민주주의 실현 주체인 “People”의 번역어로 활용된다. 물론 그 안에서 미묘한 구별점이 존재하기는 하는데, 좌파의 경우는 국가 건설의 주체인 통일전선 주체 전반을 지칭하는 것이었고, 우파의 경우는 ‘국민’의 함의에 가까웠다. ‘시민’의 경우 좌파와 우파 모두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