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1960년대 초 경주피학살자유족회사건의전개과정과 성격
...dictatorship which came to the political forefront after 5‧16 Military Coup in 1961(5‧16軍事政變) took an anticommunist line and put the leaders of the Gyeongju survivors association on Revolutionary trial(革命裁判) under the pretext of their anti-state activities. Accordingly there was Gyeongju survivors association incident(慶州被虐殺者遺族事件). The leaders of the Gyeongju survivors association had survived the Gyeongju...
[학술논문] 국민과 비국민의 경계― 피학살자유족회사건을 중심으로
...못하였다.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붕괴되자 이승만 독재의 한 부분으로서 민간인학살이 먼저 국회에서 쟁점화되었으며 이에 힘입어 경상남북도를 사례로 해서 피학살자유족회가 결성되어 피학살자를 기억하는 유족운동을 전개하였지만 5·16 군사쿠데타 정권에 의해서 탄압을 당하였다. 유족운동에 참가한 유족들은 유족회사건으로 혁명재판에 회부되었다. 혁명재판에서의 검사의 공소 사실, 재판부의 판결, 검사와 피고인의 상소 이유 등을 살펴보면 재판의 쟁점이 피학살자가 ‘국민’인가 ‘비국민’인가 하는 데 놓여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유족회와 유족회 활동이 반국가적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그 연장선 상에 놓여 있었다. 판결문은 “북한괴뢰의 동조자였던...
[학술논문] 김기철의 통일운동 역정과 생애
...혁신계의 활동공간과 기회가 확보되자 다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혁신세력의 이합집산 와중에 사회대중당(창당준비위원회), 통일사회당을 거치면서 역시 통일문제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이 와중에 그가 구상했던 통일안을 좀 더 구체화한 중립화통일방안을 내세워 다양한 공론의 장에서 그의 주장을 펼쳤다. 5·16군사쿠데타 후 군사정부가 실시한 혁명재판에서 ‘중앙통일사회당사건’으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김기철은 1963년 3공화국 출범 뒤 단행된 특사로 석방되었다. 1971년 신민당에 입당한 후에도 당 내에서 통일문제를 담당하였다. 해방 후 거의 전 생애를 분단과 통일문제에 천착하며 연구하고 활동했던 김기철이 지향했던 것은 바로 한반도의 평화와 민주적 사회건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