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두 개의 조선, 혁명과 전쟁 사이 - 남궁만 <홍경래>(1947)의 전후
해방기 희곡 <홍경래>는 남궁만이 쓴 유일한 역사극으로 해방 이후의 역사적 전망을 과거인물의 혁명성을 통해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본고는 ‘홍경래’라는 인물과 ‘홍경래의 난’이라는 사건이 근대 이후에 재발견/재해석 되었다는 점에 주목하여 특정한 시대적 맥락에 따른 역사적 인물 및 사건의 소환 문제에 대해 고찰하였다. 그 결과 ‘홍경래’는 주로 홍경래 난의 근거지이기도 한 평안도와 서북지역 출신 작가들에 의해 재현되었으며 남궁만 역시 평안도 출신으로 해방기에 ‘홍경래’를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창작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남궁만의 <홍경래>는 아직 북한의 체제가 공고화되기 이전 시점에 재현된 역사극으로 1931년
[학술논문] 정노식의 생애 연구- 행적과 교유를 중심으로
...유년기에는 고향에서 한학(漢學)을 익혔던 것으로 보인다. 스무살 무렵인 1911년에는 상경하여 경성기독교청년회관(YMCA)에서 수학하였고, 1912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과(法科)를 다녔다. 정노식은 일본 유학시절 근대 신학문(新學問)을 접하였으며, 이때 ‘조선유학생학우회(朝鮮留學生學友會)’를 통하여 장덕수, 현상윤, 이광수, 최남선 등과 교유하면서 계몽주의적 가치관을 정립하게 된다. 정노식은 1919년경 유학에서 돌아온 뒤 3ㆍ1운동에 관여하였다가 옥고를 치룬다. 그 뒤 1920년대에 장덕수 등 조선청년회연합회를 결성하고 전국을 순회하며 ‘물산장려운동’, ‘민립대학설립’ 운동 등 계몽주의 운동을 전개한다. 하지만 정노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