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전후 강제동원 피해의 범위와 보상논리 변화
본 연구는 전시기 조선인 강제동원의 역사가 해방 후 피해 보상체계를 거치면서 어떻게 규범화하고 정의되었는지,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어떤 모순점들을 잉태했는지를 명확히 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따라서 시기적으로 해방 직후부터 한일청구권협정을 거쳐, 민간청구권보상체제가 성립되어 보상을 이룬 1970년대까지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해방 직후 미군정은 식민지기 원호회를 해산하면서 강제동원 피해자의 원호금을 일정 정도로 보상했다. 이후 1948년 한국정부 수립 이후에는 정부 스스로가 1949년 인구총조사를 실시하면서, 징용, 징병, 미귀환, 사망 등도 함께 조사했다. 한편, 귀환자들 사이에서도 스스로 징용, 징병에 의한 미수금, 사망, 부상 등 피해사실을 조사하여 국회와 정부에 보상을 요구했다. 그리고 미귀환의 문제
[학위논문] (A) society of no popular resistance : How Kim Il Sung created one when communist Albania and Romania could not
...정의를 다소 수정한 ‘리더십 경제 통제 주입 격리’를 정하고 김일성이 북한땅을 밟은 1945년부터 생을 마감한 1994까지를 3개 기간으로 나누어 각 기간에 5가지 변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피는 비교역사적 방법을 사용하였다. 우선 1945-1956년 시기 북한의 김일성과 루마니아의 게오르규 데쥬 (Gheorghiu-Dej) 알바니아의 호자 (Enver Hoxha)는 권력 중심부에 진입하여 숙청으로 권력을 공고화하며 통제와 개인 우상화를 시작하고 국민들을 외부세계로부터 단절시키기 시작한다. 전쟁의 영향으로 삼국의 경제는 붕괴되다시피 하지만 외부의 지원을 받아 삼국 모두 소련식 경제개발계획 이행에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국민들은 강력한 리더십에 순응했고 1956년 헝가리 혁명 직후 헝가리계가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