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新羅統一의 現代史的 意義
...발전하였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오랜 기간 준비와 국력의 강화로 이루어졌다. 제1단계(한강유역 차지, 553). 제2단계(백제 정벌, 660), 제3단계(고구려 정벌, 668), 제4단계(중국 당나라 군대 축출, 676)의 150여년 과정으로 거친 후 민족의 융합으로 이룩되었다. 특히 중국 당과의 외교에서 능동적 이용과 주체적 입장은 오늘날 큰 교훈이 된다. 황룡사 조성(553)으로부터 시작된 민족문화의 개발은 9층탑(643)과 월지(안압지) 건설(674)이 있었고, 불국사 건립(751)으로 이룩되면서 문화의 뒷받침으로 매듭짓게 되었다고 말하겠다. 우리는 남북통일을 기다리면서, 한강유역이 지닌 중요성과, 국가 발전의 토대 위에서 미국・일본・중국・러시아 간의 갈등 속에서 능동적 외교라는 주체적 자각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학술논문] 발해 상경성 내 제1절터의 건축적 성격
...경우는 곁채가 부속불전인 사례가 있으므로 단정할 수 없다. 본채와 곁채가 일체형으로 구성된 방식은 상경성에서도 제1사찰에서만 나타나는 드문 사례지만 중국 및 일본의 유사한 시기 사례와 상경성에서 발견된 아미타소조불 등의 유물로 미루어 제1절터의 성격을 정토사원으로 비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본채가 속칸과 겉칸으로 구성된 겹실형 평면을 북한학자들은 발해만의 특징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고대 인도의 석굴이나 중국 당대 포꽝쓰(佛光寺) 대전을 비롯한 송대(宋代) 롱씽쓰(隆興寺) 모니띠엔(摩尼殿), 포공쓰쉬지아타(佛宮寺釋迦塔), 신라의 사천왕사(四天王寺) 금당(金堂), 황룡사(黃龍寺) 중금당(中金堂) 등 다수의 사례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6~10세기 정도에 유행하였던 불전 평면의 보편적인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