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이젠 고향도 기억나지 않아요"…명절에 더 가슴 시린 이산가족
(전주=연합뉴스) 나보배 기자 = "우리 엄마 모습이 하나도 기억이 안 나요. 고향도 다 잊어버렸지."
추석 명절을 앞둔 지난 29일, 대한적십자사 전북지사로부터 선물을 받아 든 박복주(99) 어르신이 옅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촉촉해진 박씨의 눈가를 바라보던 딸 유모(66)씨는 "어머니가 결혼한 지 1년이 지나 19살이던 1940년대 중반께 고향인 황해도에서 전북 익산으로 내려왔다"고 거들었다.
[뉴스] 김정은, 황해도 지방공장 건설현장 시찰…"완공 동시에 가동"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황해남도 재령군의 지방공장 건설현장을 시찰하고 공장 완공과 동시에 본격 가동에 들어갈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를 당부했다.
[지리/관광]
『북한의 옛집』 제3권 《그 기억과 재생(황해도편)》. 1996년도에 시작된 이 연구는 실향민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옛집과 건설과정, 주생활 등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북한지역 전통주거의 성격을 파악한다.
[정치/군사]
...김신(공군참모총장), 임정 최고의 이론가 조소앙, 국회의장 신익희, 부통령 이시영, 비타협적 민족주의자 안재홍, 광복군사령관 지청전, 초대 국방부장관 이범석, 미군정 통위부장 유동열,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진보주의자 조봉암, 부통령 김성수, 제헌의회 헌법기초위원장 서상일 등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북한의 서북(평안도·황해도·함경도)에서 남으로 내려온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은, 도산 안창호의 후예들로 해방 이후 백만명, 전쟁 시기 수십만 명의 인원이 남하하여 반공 민족주의, 근대화 세력, 반독재 투쟁 세력이 되어 대한민국의 소금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였다.
구사일생. 대한민국의 생존은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었다. 만주사변, 중일전쟁 이후...
[사회/문화]
...1922년부터 발행되고 있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신학잡지 「활천」, 1930-40년대에 기록된 성결교회의 「총회록」과 「연회록」, 「조선총독부관보」, 『조선야소교동양선교회성결교회약사』(이명직, 1929) 등을 샅샅이 조사한 끝에 일제강점기 시기에 북한 지역에 세워진 성결교회가 함경북도에 17개, 함경남도에 34개, 평안북도에 10개, 평안남도에 12개, 황해도에 12개, 강원도에 3개, 경기도에 3개 등 모두 91개소임을 밝혀냈다. 그리고 이 91개소의 교회가 각각 어떻게 세워지고 발전했으며, 문을 닫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 교회들에서 사역한 교역자들은 누구였는지, 어떤 성도들이 어떠한 활동을 했는지를 상세히 소개했다. 한국전쟁 이전의 북한성결교회에 대한 집중적이 연구가 아직까지 전무한 상황에서 교단 최초로 북한성결교회...
[통일/남북관계]
저자 김상운 선생은 1933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1950년 해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집단농장 생산지도원으로 근무하다 1953년 7월 15일 휴전 직전 북한에서 탈출했다. 10여 명의 결사단을 조직하여 집단으로 자유를 찾아 남하했다. 이 책은 두 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글은 분단의 역사를 온몸으로 관통해 온 저자가 민족의 화해와 동질성 회복을 염원하는 글이다. 두 번째 글은 20년 전『한반도 이데올로기는 공포다』라는 제하의 책에 실었던 동 일 제목의 원고 원문을 그대로 게재한 것이다.
저자는 첫 번째 글에서 한반도의 신탁통치를 비롯한 식 민지 나라의 처리를 논의한 1945년 2월 얄타회담(Yalta Conference)부터...
[사회/문화]
...독립적인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는 2건의 콘텐츠가 소개되는데, 1건은 인물 ‘이봉학’의 일대기이고, 나머지 1건은 이틀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진행된 ‘송악산 사건’입니다.
7부 ‘흩어지면 백성 모여 있으면 도적’은 소설 『임꺽정』의 결말에 해당하는 부분을 ‘황해도에 도적이 들끓은 이유’, ‘병해대사의 유서’, ‘평산싸움’을 통해 소개합니다.
에필로그는 벽초 홍명희를 미국의 문호 마크 트웨인에 대한 저자의 소감과 함께, 조선시대의 임꺽정/홍명희의 조합이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상징 투사인 전태일열사/조영래 변호사의 조합을 연관성에...
[학술논문] 백범 김구의 교육활동에 대한 연구
... 그리고 혁명가 등으로 알려져 있지만, 독립과 통일을 위해 노력해 온 교육문화운동가이기도 하다. 그는 1905년 을사늑약 이후부터 국권회복을 위한 교육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본격적인 교육운동가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또한 자신이 직접 세운 학교나 독립운동 동지들이 세운 학교와 사범강습소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특히 신민회 시기에는 황해도 학무총감을 맡아 황해도 일대를 순회하며 각종 연설회나 강연회, 환등회를 통해 국민의식 개조, 구국계몽을 위한 교육을 실시한 바도 있다. 광복 이후에는 건국에 필요한 인재양성을 위해 건국실천원양성소를 설립하여 9기에 걸쳐 약 800여 명의 인재를 양성하였고, 1949년에는 북한 실향민, 전쟁 이재민과 부모 잃은 고아들을 대상으로 백범학원, 창암학원을 세워 무상으로 교육을...
[학술논문] 20세기 초 황해도 甕津郡 주민의 住居 양상 - 1905년도 南面과 龍淵面 戶籍 자료의 분석 사례
이 논문은 新호적제도에 의해 조사․작성된 황해도 甕津郡 南面과 龍淵面의 1905년 戶籍 자료를 분석하여 주민들의 住居 양상을 考究한 것이다. 옹진군 남면과 용연면은 황해도의 서남단에 위치한 沿海지역이었으며, 남면 호적 자료에는 昌麟島라는 島嶼 주민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였다. 따라서 두 책의 호적 자료를 통해 20세기 초 황해도 연해 및 도서지역에서 거주했던 총 789호(남면 354호, 용연면 435호) 주민들의 住居生活史에 대해 다음과 같은 양상을 복원할 수 있었다. 첫째, 동족집단을 이루고 있는 성씨들은 대부분 해당 面의 평균치보다 호당 평균 인구수 및 평균 가택 칸 수가 모두 많거나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일부 성씨의 경우는 정반대의 양상을 보이기도 하였다. 둘째, 瓦家와 借有 가택의 점유율이 극히...
[학술논문] 광무 연간 북한 지역 여성의 호적 기재 양상
이 논문은 1897년부터 1905년 사이 함경도, 평안도, 황해도와 강원도 북부 지역의 호적에 나타난 여성 기재 관행과 그 특성을 분석한 것이다. 본 연구에서 검토한 지역은 북위 38도 이북의 18개 군(郡)이었다. 광무(光武) 년간의 한반도 서북지역 호적을 검토한 결과 남부나 중부 지역과 확연히 다른 경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는 아들에 비해 딸을 거의 기재하지 않았다. 평안남도와 평안북도는 아들의 성비가 각각 3,543과 2,126으로 나타났다. 아들을 딸에 비해 무려 20~35배 가량 많이 등재한 것이다. 게다가 딸의 경우 호적에 오르더라도 이름을 거의 기재하지 않고 있었다. 아들의 경우 전체의 88%가 이름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딸에게는 불과 9.8%만이 이름이 주어졌으며, 그마저도...
[학술논문] 중부지방은 어디까지인가 - 남북한 분단과 ‘중부’의 의미 변화 -
...조금씩 다른 지리 구분 의식을 찾아볼 수 있다. ‘중부’의 범위 변화는 남북한 분단과 깊이 관련되어 있기에 의미가 남다르다. 분단 이후 남한의 시각에서, 황해도는 중부에서 북부로 바뀌었고 충청도는 남부에서 중부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이는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는 시각이라기보다, 휴전선 경계에 이끌린 분단의 산물에 더 가깝다. 분단이 오랜 시간 지속되면서, 남한 사람들의 인식에서 북한 지역은 차츰 희미해져갔고, 그 결과 ‘중부’의 범위가 차츰 변화하였다. ‘중부지방’은 황해도를 배제하고 충청권으로 확장되는 변화를 겪었고, ‘중부권’은 수도권까지도 배제한 채 충청권만을 가리키는 변화를 겪었다. 한편 북한의 지역 구분은 조선시대 이래로...
[학술논문] 위성자료를 이용한 북한지역 토지피복 및 식생 변화 추정
...감당할 여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본 논문에서는 북한 전역 및 북한에서 농지의 면적이 가장 넓은 황해도 지역을 대상으로 MODIS 위성영상을 이용하여 2001년부터 2014년까지 토지피복 변화와 산림 변화를 분석하였다. MODIS 토지피복 산출물을 이용하여 토지피복 변화를 분석하였고, MODIS의 정규분포식생지수(NDVI)를 통해 산림 면적의 변화를 14년간 월별로 나타내었다. 북한의 산림 면적은 2013년 53% 정도로 나타나 과거 여러 문헌에 제시된 80%보다 현저히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림 면적은 다소 증대되었으나 식생지수는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나 황폐화되어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황해도 지역은 토지피복의 측면에서 농지 점유율은 유지되거나, 산림 면적이 다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본 논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