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냉전체제 형성기(1945~1948) 中華民國의 한국인식 - 국민당 언론의 한국 기사를 중심으로 -
본 연구는 종전이후 중화민국의 주요 신문인 『대공보』‧『신보』‧『중앙일보』의 한국관련 보도를 통해 냉전초기 한‧중 관계를 이해하려는 것이다. 전후 식민지에서 해방된 한반도는 미·소 주도의 냉전체제로 급속히 재편되었다. 전승국인 중국은 국공내전에 휩싸여 대외적 역량을 발휘할 수 없었고, 동아시아 질서재편의 주체가 되지 못하였다. 전후 한국문제처리에서 중국은 미·소의 주도로 진행된 국제논의에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단지 역사적 현실적으로 긴밀한 연대와 외교적 후견역할을 통한 도의적 책임론을 내세워 한국문제에 적극적으로 의사표시를 하였다. 그러나 자국의 역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미국의 후원과 협력에 의해 제한적 역할만 가능할 뿐이었다. 이 때문에 중국이 줄곧 주장해온 4개국 협의에 의한 한국독립과 미·소 군대의 철수는
[학술논문] 그 이름 불러주기 ― 실록의 조선ㆍ청나라 호칭(互稱) 분석
二十世紀東亞國家之間的互稱顯示出如何認爲對方。韓國所用的南韓․北韓․中國․臺灣, 朝鮮所用的北朝鮮․南朝鮮․中國․臺灣, 中華人民共和國所用的韓國․朝鮮․臺灣, 日本所用的韓國․朝鮮․中國․臺灣, 這些互稱都反映着各國如何定位對方。除現在國家之間的互稱外, 過去東亞國家之間的互稱也反映一个國家定位對方的方式。滿人宣言‘我們是滿人’之前, 他們被明朝定爲女眞。明朝永樂帝設置衛所管轄統制東北, 將該地部族劃分爲建州、海西、野人女眞。但是被稱爲女眞的部族並不放棄原來名稱。兀良哈、斡朶里、兀狄哈長期保持自己的部族名, 海西女眞從1550年代開始自稱爲葉赫、烏拉、哈達、輝發, 明確他們的整體性。『明實錄』將女眞記爲野人、夷人、貢夷, 野人意味文化落後的部族, 後兩個名稱意味獻上貢物的集團。'朝鮮王朝實錄'將女眞記爲野人、胡人、彼人。可見, 明朝也好, 朝鮮也罷, 輕視女眞。奴爾哈赤不顧女眞名稱的貶意
[학술논문] 특집 : 현실정치의 규정력 아래 놓인 해방 후 북한의 역사서술 - 북한 역사서술의 시원 검토 -
Socialist states, including North Korea, have showed a tendency of controling knowledge, philosophy and historical memories, and it seems such actions were intended to serve political goals laid out by the state or regime. North Korean historical studies for example, have served two important agendas: Supporting all the political,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policies promoted by the government and
[학술논문] 북한지역 고려 후기 금동불 연구 -중대형 금동불을 중심으로-
...금동약사여래좌상(靑陽 長谷寺 金銅藥師如來坐像)과 서산 문수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瑞山 文殊寺 金銅阿彌陀如來坐像)과 형식적으로 매우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즉, 얼굴과 신체의 균형 잡힌 비례를 비롯하여 갸름한 얼굴과 온화한 표정, 허리를 곧추 세우고 정면을 응시하는 자세에서 동일한 모습이다. 또한, 복부의 정교한 띠매듭의 표현과 왼쪽가슴에서 승기지(僧祇支)를 고정하는 장치인 금구장식(金具裝飾), 양쪽 무릎에 형성된 원형의 주름 등 세부 형식 역시 14세기 금동불과 비슷하게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 북한지역 불상은 장곡사, 문수상과 같이 14세기 중엽의 연대를 알 수 있는 충청도 지역의 불상 유형과 유사한 형식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14세기 이전에 제작된 서울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서울 開運寺 木造阿彌陀如來坐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