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영토변증설(領土辨證說)
1919년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은 전 민족의 의지로 대한제국과 결별하고 새롭게 다시 조직된 한민족공동체로서의 민주공화국이다. 남한은 1948년 8월 15일 북위 38도선 이남 지역에서 창설된 신생국가가 아니라, 한민족공동체로서의 대한민국이 재건된 국가이다. 따라서 남한은 국민과 영토 면에서 한민족공동체로서의 대한민국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을 뿐, 이와 동일체이다. 북한은 남한의 승인과 관계없이 국제법적 의미의 국가이며 그 자체로서 국제법의 주체이다. 남북 유엔 동시 가입(1991)은 남한이 북한의 국가성을 사실상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남한과 북한은 한민족공동체로서의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지붕 밑에 공존하는 국가들이고, 북한은 남한과의 관계에서 외국이 될 수 없다. 남북관계는 순수한 국내관계도...
[학술논문] 1950~70년대 ‘사상계’ 지식인의 분단인식과 민족주의론의 궤적
...장준하는 그것을 빈곤 추방과 민주 복지사회 건설을 무기로 하는 대공 ‘경제전’이라고 불렀다. 5ㆍ16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 군부는 민족 주체성을 앞세운 대대적인 관주도 민족주의 캠페인을 통해 반공과 근대화를 두 축으로 하는 개발독재의 권력기반을 다졌다. 사상계 지식인들은 앞서와 마찬가지로 보편 가치를 강조하며 쿠테타 세력과의 민족주의 논쟁에 임했다. 이후 사상계 지식인들은 박정희 정권의 대일 저자세 외교를 규탄하며, 그들 나름의 저항 민족주의를 정초해 갔다. 그리하여 민족주의를 놓고 관주도 캠페인과 민간의 대항 담론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3ㆍ1운동의 재현과도 같았던 대일 굴욕외교 반대투쟁을 거치며 사상계 지식인들의 민족주의 담론은 경제적 영역에서 정치적 영역으로...
[학술논문] 芹村 白寬洙의 정치 이념
이 글은 근촌 백관수의 정치이념과 그것이 일제시대 및 해방정국에서 그의 행동에 어떻게 투영되었는가를 살펴보고자 쓴 글이다. 백관수는 일제 35년과 군정에서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5년의 기간에 이 나라의 지도자로서 가장 굴곡된 삶을 살다간 현대사의 비극적 상징이었다. 일제치하에서 백관수는 적국의 수도에서 독립선언서의 기초에 참여하고 낭독한 기개의 인물이었다. 그의 삶에는 분명히 지사적 우국심과 고뇌가 있었다. 그러나 막상 조직의 책임자가 되었을 때 백관수는 기개와 현실 사이에서 고뇌했으며 그러는 과정에 허물을 남겼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의 그의 생애에서 연정회(硏政會)의 가담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며, 시국강연회의 명단에 포함된 것은 그의 허물이지만 그가 전적으로 비난받고 책임질 일을 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학술논문] 정노식의 생애 연구- 행적과 교유를 중심으로
...이때 ‘조선유학생학우회(朝鮮留學生學友會)’를 통하여 장덕수, 현상윤, 이광수, 최남선 등과 교유하면서 계몽주의적 가치관을 정립하게 된다. 정노식은 1919년경 유학에서 돌아온 뒤 3ㆍ1운동에 관여하였다가 옥고를 치룬다. 그 뒤 1920년대에 장덕수 등 조선청년회연합회를 결성하고 전국을 순회하며 ‘물산장려운동’, ‘민립대학설립’ 운동 등 계몽주의 운동을 전개한다. 하지만 정노식은 조선청년회연합회가 좌우로 분열되자, 소위 민족주의 진영의 계몽운동에 한계를 절감하게 된다. 1920년대 중반 정노식은 고향인 전북 김제의 만경으로 낙향하는데, 이 시기에 정노식은 판소리에 관한 연구에 관심을 갖는다. 정노식에 관련 기사는 1930년대 중반까지 등장하지...
[학술논문] 권태휘의 생애와 민족운동
...통해 그의 민족의식의 형성과 민족운동, 구체적으로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과 사회운동, 해방 후의 정치활동에 대하여 검토하였다. 권태휘는 1897년 진위군 북면 가곡리 331번지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신분은 양반이었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편이었다. 키가 작고 피부도 고왔지만, 그의 항일의지는 남과 달리 강하였다. 그는 봉명학교와 경성의전을 다니면서 민족의식과 항일의식을 형성하였다. 특히 그는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전후하여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추진하고, 경성의전의 선배와 동료들이 3ㆍ1운동을 주도하고 참여하는 것을 목격하거나 인지하고 독립운동에 참여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서울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고, 3월 중순 평택에 가서 평택인에게 평택에서도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라고 권유하였다. 또한 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