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과나눔 컨퍼런스] 2024 통일과나눔-공감한반도연구회 컨퍼런스 | 美 트럼프 정부 출범과 국제정세 및 한반도 통일
...前 외교안보수석비서관
발제: 최우선 국립외교원 교수
허 윤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토론: 차정미 국회 미래연구원 국제전략연구센터장
조영진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주재우 경희대학교 중국어학부 교수
🎙️ 2세션 | 미국 신 정부 한반도 정책 변화와 통일 🎙️
사회: 김현욱 세종연구소장
발제: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前외교통상부 장관
제니 타운 美스팀슨센터 38노스 디렉터
토론: 홍용표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前 통일부장관
김진하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서정건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하원 조선일보 외교안보 에디터
[통일과나눔 컨퍼런스] 2023 한국정치학회·통일과나눔 컨퍼런스 <초당적 통일정책의 모색, 가능성과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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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열 연세대 통일연구원 부원장 - 초당적 통일정책의 필요성과 가능성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전 통일부 장관, 2006 - 진보의 입장에서 본 초당적 통일정책의 가능성과 한계
홍용표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전 통일부 장관, 2015 - 보수의 입장에서 본 초당적 통일정책의 가능성과 한계
○ 토론:
민태은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천해성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책임연구원 / 전 통일부 차관, 2017
[지리/관광]
그동안 한국의 전통음식은 대부분 조선시대의 식문화에 근간을 두고 있지만, 조선의 식문화란 고려시대 개성의 식문화가 한양으로 이어지면서 형성된 것이니, 개성의 식문화는 결국 우리 민족 고유의 식문화라는 점에서 계승해야 할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그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 남북한을 아우르는 우리나라 전통음식의 양대 축을 잇고자 하는 바람으로 이 책을 엮었다. 어릴 적, 어머니의 부엌 친구가 되어, 보고 듣고 맛보고 느꼈던 개성음식 이야기와, 김금옥 여사님을 비롯한 개성 어르신들이 들려주신 개성 식문화 이야기들, 그리고 20여 권의 문헌 기록과 한국의 전통음식 전문가로서 그동안 연구해 온 내용들이 큰 힘이 되고 토대가 되었다.
[사회/문화]
...감염 대응 방식과 그 결과는 보건의료, 사회 기반이 부족한 상황에서 국가가 감염병 대유행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유가 어떠하든, 북한은 유행 초기 상당 기간 진단 키트나 장비 부재 상태로, ‘공식적으로’ 집단 예방접종 못한 채 감염병 유행과 싸워야 했다. 일차적으로 북한 당국이 책임져야 할 부분을 갖는다 하더라도 인도주의적 상황에 대해 한국, 일본 등 주변국들과 특히 국제사회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반성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엄청난 인류 재난 앞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국제적 규범, 국가 간 약속, 특히 인도주의적 국제 협력 체계를 다시 설계할 필요성을 보여 준다.
_ 신영전(한양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추천사 중에서
[사회/문화]
서로 상반된 체제에서 살아온 남한과 북한의 경우 정신적ㆍ정서적 화합을 이끌어내는데 있어 ‘문화예술’처럼 유용한 것은 없다.
이에 본 연구사업단은 이 단행본에서 제시하고 있듯이 소비에트 체제와 유라시아 시대에서 북한의 사회ㆍ문화예술 현상이 작용해온 흐름의 단면들을 포착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단행본이 거창하게 내세운 책 제목에 온전하게 부합되지는 못한 부분도 있겠지만, 북한을 단순히 우리와 동질화하거나 무조건적 적대감으로 이질화하는 시각에서 벗어나, 거대한 소비에트 및 포스트소비에트 체제에서 사회ㆍ문화예술계에 투사된 북한을 둘러싼 의미장을 통찰할 수 있는 첫걸음으로 이해해주길 바란다. 이러한 논의를 계기로
[사회/문화]
북한의 정치·문화를 총망라하다!
카리스마 권력은 어떻게 세습되는가『극장국가 북한』. 영국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칼리지 석좌교수이자 냉전사 이론연구로 국제학계에서 기어츠상 등 굴지의 상을 수상해온 권헌익과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이자 북한을 열 차례 이상 방문하며 남북문화통합을 주제로 연구를 진행해온 정병호가 북한 정치체제 유지의 미스터리를 밝히기 위해 5년여에 걸쳐 공동 작업한 연구의 결과물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총 6장으로 구성하여, 국가정치가 역사를 어떻게 발명해내 이를 문화예술 분야에 반영하는지를 다루고, 1994년 대국상 이후 대대적으로 전개된 ‘추모와 그리움의 드라마’를 주의 깊게 살핀다...
[정치/군사]
북한의 정치·문화를 총망라하다!
카리스마 권력은 어떻게 세습되는가『극장국가 북한』. 영국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칼리지 석좌교수이자 냉전사 이론연구로 국제학계에서 기어츠상 등 굴지의 상을 수상해온 권헌익과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이자 북한을 열 차례 이상 방문하며 남북문화통합을 주제로 연구를 진행해온 정병호가 북한 정치체제 유지의 미스터리를 밝히기 위해 5년여에 걸쳐 공동 작업한 연구의 결과물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총 6장으로 구성하여, 국가정치가 역사를 어떻게 발명해내 이를 문화예술 분야에 반영하는지를 다루고, 1994년 대국상 이후 대대적으로 전개된 ‘추모와 그리움의 드라마’를 주의 깊게 살핀다. 더불어 ‘두개의 권총 에피소드’...
[학술논문] 서울성곽과 돈의문의 가치
...덕목은 공동체의식을 바탕으로 한 사회질서 유지를 위한 가치와 국가정치이념으로서의 중요성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나라를 지키는 진정한 힘은 정치와 교화를 밝게 하여 인민들이 평안하고 풍요롭게 사는데서 나오는 것이고 볼 때, 인민들의 노역을 강요하여 도성을 축조한 것은 국가 방어의 여러 측면 가운데 가장 낮은 단계라고 볼 수도 있다. 조선왕조는 한양 천도와 더불어 궁궐 축조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도성을 축조하여 궁성과 도성을 갖추었다. 도성은 궁궐과 각종 도시시설을 에워싼 백악․낙산․목멱산․인왕산의 내4산을 잇는 형태로 산지와 평지에 축조되었다. 그리고 서울도성의 4대문 4소문 가운데 서쪽 대문으로 敦義門이 건립되었다. 성문의 이름은 의로움을 돈독히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유교덕목인 仁․義․禮․智․信...
[학술논문] 「분지」를 읽는 몇 가지 독법 - 남정현의 소설 「분지」와 1960년대 중반의 이데올로기들에 대하여
...사건은 문학작품에 반공법이 적용된 최초의 필화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분지」는 일종의 알레고리 소설이지만, 대개의 남정현의 소설들이 그렇듯이 대단히 현실적인 접점들을 내장하고 있었다. 「분지」의 해석 코드는 지식 담론 상에서 뚜렷이 존재했다. 그 해석의 코드란 바로 당시 전 세계적인 관심사였던 제3세계 신민족주의였다. 매체 상으로 [청맥]과 재일교포 잡지 [한양]이 이 기반에서 담론을 생산하고 있었다. 신민족주의의 맥락에서 한국 민족주의 운동은 자연스럽게 ‘반미’의 과제로 연결되었다. 미국이 한국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은 이 시기의 진보 민족담론 진영의 글들 도처에 나타난다. 결과적으로 남정현의 「분지」를 당시 진보 민족담론의 맥락에서 읽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던...
[학술논문] 英祖朝 東村派의 交遊樣相과 交遊詩 -吳瑗· 南有容· 李天輔· 黃景源을 중심으로-
...남유상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모임은 한때 활기를 잃게 된다. 1732년이 되어 황경원이 모임에 가담하면서 吳瑗·南有容·李天輔·黃景源을 핵심 구성원으로 한 이 모임은 1740년, 오원이 죽을 때까지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이 시기에 모임의 핵심 구성원들은 여러 차례 四郡을 함께 유람하기도 하고 北漢山, 貞陵, 冠岳山 등 한양의 승경지를 찾아다니며 文酒會를 가졌다. 吳瑗·南有容·李天輔 세 사람은 특히 자주 東亭에 모여 시를 지었으며 그때 지은 시를 시집으로 엮기도 하고 唐 이전의 시를 선발하여 시선집을 엮기도 했다. 1740년, 오원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모임은 침체기에 접어든다. 오원은 이 그룹의 중심 인물이었고 그의 종암 동정은 이 그룹의 주 모임 장소였기에...
[학술논문] 1970년대 통일로 변에 건설된 단독주택지에 관한 연구
At the beginning of the 1970s, the world was in the mood for peace. South Korea and North Korea first established diplomatic relationship since the separation. The high officials visited to Pyeongyang and Seoul to attend meetings. The basic argument of this research is based on this hypothesis that these two cities became a stage to propagate each nation’s political idea. The development begun
[학술논문] 조선시대 漢陽 西郊지역의 邦墓 조성과 피장자 신분
...기록에서는 서교가 주로 왕이 사신을 맞이하던 곳, 혹은 종종 사냥을 하러 나가던 곳으로 설명되곤 한다. 따라서 서교라는 지역은 홍제원을 넘어선 성 서쪽 외곽지역을 이르는 말로 북한산 인근지역이었을 것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 이렇게 대규모 공동묘역인 방묘가 진관동 일대에 자리하게 된 이유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이곳은 성저십리를 막 벗어난 지역으로 한양과 인접한 곳에 자리하였고 예로부터 사신들의 왕례가 잦아서 도로가 잘 마련된 지역이자 박석고개와 북한산이 거주지와 경계를 이루어 생활공간과 자연스럽게 분리된다는 이점 때문에 묘역이 조성되기 적합하였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실제로 1789년대에 기록된 한성부 성 안․밖의 호구분포를 살펴보면, 이곳이 다른 성 외곽지역에 비해 유독 거주민이 적었다는 사실을 알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