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退翁性徹의 頓悟頓修的 見性과 究竟覺에 대한 考察
본고의 목적은 퇴옹성철선사의 돈오돈수적 견성과 구경각의 철학적 의미를 그의 언어관을 중심으로 심도 있게 규명하는 데 있다. 올해는 그의 탄생 백주년이 되는 의미 있는 시기로, 주지하다시피 불교역사상 어느 누구보다 더 강경하게 돈오돈수론을 주장했었던 그의 입장은 한국불교사의 또 다른 거성, 보조지눌선사의 돈오점수론과 극단적인 대립각을 형성함으로써 역사상 돈점논쟁의 불씨를 다시 한 번 부각시켰다. 이 과정에서 성철은 많은 이들의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는데, 필자는 이러한 비판에 대해 언어문(言語門)에 기초한 지눌의 입장과 달리, 진여문(眞如門)에 근거한 그의 입장은 학문적 관점에서보다는 종교적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해석학적 순환의 측면에서 성철은 다양한 역사적 맥락을 토대로 전통에 대한
[학술논문] 조선후기 산수기행문예에 나타나는, ‘奇’의 추구
...정선은 조각처럼 서 있는 문의 형상으로 문암의 기이함을 증폭시켰다. 또 다른 예로 개성의 朴淵瀑布를 보면, 김창협이 박연폭포를 奇로 칭송하며 물줄기가길고 그 아래 시커먼 것이 있다고 하였고, 정선은 이에 입각하여 폭포수를 지나치게길게 그리고 아랫 못에 아예 시커먼 바위를 그려넣었다. 이렇게 시문과 회화로 드러난이미지는 실제의 기경보다도 더욱 기이하게 변형되었다. 18세기 전반기 조선의 산수기행예술에 드러나는 奇는 시각적으로 감흥을 일으키는기이한 이미지의 발굴과 그 이미지의 형상화로 구현되었다. 기이함의 강조로 실제모양이 변형되어도 산수의 기이한 속성이 드러난 것을 일러, 그 당시 문인들은 奇하다고혹은 逼眞하다고 칭송하였다. 여기서, 奇과 眞가 연관되는 담론의 형성은 19세기 담론과의 연관성을 열어주게 된다.
[학술논문] 북한지역 사찰의 불교사적 의의
본 논문은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북한지역의 사찰의 역사적 중요성을 다룬 연구이다. 북한지역내 고구려 사찰은 평양천도 이후의 것이 대부분인데 고구려 건국자 동명성왕과 관련된 광법사, 영명사, 중흥사, 정릉사 등의 사찰이 중요시 되었다. 신라하대 수미산문의 해주 광조사는 최북단 9산 선문 가운데 하나였으며, 선종의 북한지역의 확대 포교였다. 북한지역내 발해지역의 개심사 등의 사찰은 남북국시대의 불교도량이라고 하겠다. 고려시대 국도 개경의 중요사찰은 태조가 창건한 법왕사․왕륜사 등의 10대 사찰이다. 역대 왕실에서 운용했던 봉은사․불일사 등 진전사원 그리고 불교계가 운용했던 고려시대 주요종파의 본산 사찰도 중요하다. 즉, 고려불교의 12종파의 본산 산문중심 불교가 개경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와 더불어 서경인
[학술논문] 眞興王代 新羅의 北方進出과 對高句麗 領域向方
신라 眞興王(540~576)은 553년에 백제로부터 한강 유역을 탈취한 후 영역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한 巡狩를 추진하였다. 진흥왕은 먼저 555년 10월에 北漢山에 巡幸하여 지역 내 민심을 위무하였다. 556년 7월에는 比列忽州[강원도 안변]를 설치했고, 다음해에는 기존의 新州를 폐지하고 北漢山州를 두었다. 이를 통해 진흥왕은 군사적 거점을 한강 이남에서 이북으로 전진 배치하였다. 진흥왕의 북방 순수는 568년부터 본격화되었다. 진흥왕은 곧 568년 3월~6월에 북한산 비봉에 올라 비문을 세웠고, 철령[양주-포천-영평-김화-회양-철령] 또는 추가령구조곡[양주-연천-철원-평강-분수령]을 경유한 후 안변을 거쳐 8월에는 황초령 10월에는 마운령까지 巡狩를 갔다. 결국 553~568년 신라의 北進線은 한강 하류 유역의
[학술논문] ‘108산사순례기도회’의 신행
본고에서는 21세기 한국불교 信行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형으로 자리매김 이 되었다고 교계안팎의 평가를 받고 있는 ‘선묵 혜자스님과 함께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산사 순례기도회’의 창립동기와 취지, 순례정신이 무엇이고 ‘108산사 순례기도회’의 실천내용과 그 공덕에 대하여 논구함으로써 후세에 신행의 전범의 사례로 남겨 귀감이 되고자 한다. 본문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108산사순례기도회’는 도선사 주지 선묵 혜자 스님이 은사이신 청담대종사(1902~1971)의 도제양성. 역경사업. 전법포교 3대 사업의 서원에 대한 유업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기 위하여 2006년 9월에 결성했다고 술회했다. 이는 선묵 혜자 스님이 산사 순례에 앞서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