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동아시아 통합 미술사의 구상과 과제: ‘동양미술론’과 ‘동양미술사’를 넘어서
‘동양미술론’과 ‘동양미술사’는, 서세동점에 따른 동아시아 질서 개편에 편승하여 부상된 근대 일본의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반발과 위기의식에 수반되어 대두한 국수주의를 확산하여 ‘동양’을 하나의 지정문화적인 권역으로 이용하고 규정하기 위한 새로운 인식 틀과 지식 관념으로 생성되고 구상된 것이다. 청일전쟁 이후 ‘동양의 맹주’로서 미학 및 미술사적으로 ‘서양’과 대등하게 대립하면서 다른 ‘동양’에 대한 발전성과 우월성을 입증하고 권위를 부여하는 이론과 학문으로 체계화되고 제도화되었으며, 이러한 일본 중심 동양주의의 제국주의적 팽창과 더불어 권역을 아시아 전역으로 확장시켰다. 이와 같은
[학술논문] 「동아시아사로서의 한국사」를 위한 마지막 提言
近二十年來韓國的人文社會學界流行著有關‘東亞’的議論。此議論可分為 「東亞談論」 和 「東亞史論」:所謂 「東亞談論」是圍繞未來南北韓的統一和推進構成‘東亞共同體’等問題展開,因此可以說不屬於‘歷史學’的範疇;最初的 「東亞史論」應是1960年代日本學者西嶋定生提出的‘東亞世界論’,這一理論是在他的‘冊封體制論’ 和‘東亞文化圈論’(漢字文化圈論)基礎上建立起來的。不少韓國學者懷疑 「東亞世界論」是解放前‘大東亞共營圈’的復活。實際上,這是西嶋爲改變日本‘皇國史觀’,把日本史當做世界史的一部分來理解的一個嘗試。受西嶋理論的影響,筆者在1987年全國歷史學大會上作了題為‘試論建立獨創性的東亞
[학술논문] 論增進韓中曆史文化相互理解合作與任務
韓中兩國建立外交關系之後,兩國在許多領域友好往來、交流十分活躍,但在曆史問題上,兩國之間仍然存在巨大分歧,嫌韓、反韓情緒問題依舊存在。韓中兩國之間在曆史問題上的糾紛起源於2002年開始的“東北工程”,而東北工程的導火線是北韓重修高句麗古墓壁畫後2001年申請世界文化遺產事件。雖然兩國之間的爭論是由端午節引發,但是起因卻是由於兩國之間的相互理解不足。由於最近雙方進行不斷的文化交流,韓中兩國都認識在曆史文化方面相互理解、尊重的態度必將對兩國友好關系的發展起到一定影響。實際上韓中兩國之間存在的曆史懸案以及由於日本的歪曲曆史行爲使得西洋史學沒有正確理解韓國古代史,國內學界的曆史問題重重隱藏在內。而韓中兩國史學界爲解決兩國曆史懸案而作出的努力。比如,按照曆史潮流改變曆史教育過程,還積極倡導克服自我中心主義曆史觀,尊重亞洲曆史多樣性,韓國有意願同中日韓三國的曆史學者、教師共同編
[학술논문] 韓㳓劤의 韓國史學 方法論에 대한 고찰
이 논문은 20세기 후반기에 활약한 대표적 한국사학자 韓㳓劤의 韓國史學에 대한 연구방법론을 추적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해방 후 1세대 韓國史學者로서 實學의 연구, 東學農民蜂起의 究明 및 조선유교정치의 추구 등에 큰 업적을 남긴 한우근이 한국사학 연구방법론과 관련해 발표한 많은 글들을 분석․고찰함으로써 그의 한국사학에 대한 기본적 입장과 史觀에 관련된 연구방법의 문제를 살핀 것이다. 크게 3부문으로 이루어진 이 논문에서 첫번째로 한우근의 학문적 배경을 추적하였다. 그는 일제시기 平南에서 유교적 전통을 지녔던 가문에서 태어났다. 평양과 서울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친 그는 일본에 유학하여 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東京帝國大學 西洋史學科에 다니다가 해방을 맞아 서울대학교 文理科大學 史學科 제1회로 졸업함으로써 韓國史學者로
[학술논문] 근원 김용준(1904-1967)의 기명절지화 연구
...동경미술학교에 유학한 서양화가, 미술평론가였던 김용준은1939년(36세) 동양화가, 미술사학자로 전향한 후 다수의 기명절지화를 그렸다. 서양화로 미술을 시작한 김용준의 전통회화에 대한 눈뜸은 1928년(25세)경 본 오원(吾園) 장승업의 기명절지화에서 시작되었다. 전향 배경에는 지필묵을 접하며 자랐던환경, ‘향토색’, ‘동양주의’ 등 미술계 담론과 ‘조선학’ 운동이라는 시대 상황, 모더니스트이면서 고미술품을 애완(愛翫)한 이태준(1904-?)의 영향 등이 있었다. 김용준의 「오원일사(吾園軼事)」는 그의 조선회화에 대한 인식 전환이 전통이나 민족 같은 이념이 아니라 장승업의 기명절지화에서 받은 미학적 충격에서 비롯되었으며, 여기에서 언급한‘기명절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