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꽃 파는 처녀』의 신파성과 대중성 그리고 상호텍스트성
... 『꽃 파는 처녀』는 항일혁명의 전통과 인민대중의 사상무장과 계급교양이라는 대원칙과 창작방법에 충실한 작품으로 주체예술의 전형이자 정전(正典)으로 통하지만 이념의 잣대를 걷어내고 오직 스토리와 미적 형식만을 놓고 본다면, 신파극이나 대중소설에 가깝다. 『꽃 파는 처녀』의 신파성과 통속성은 일차적으로 인민대중을 위한 예술 곧 문학예술을 통한 사상교육과 당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사회주의 문학의 대원칙을 구현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된다. 요컨대 목적과 원칙에 대한 강한 지향이 작품의 신파성과 통속성이라는 미적 부작용을 배태하게 된 것이다. 『꽃 파는 처녀』의 주요 스토리텔링 전략은 정형화한 선악 이분법, 감정의 과잉, 우연의 남발, 조력자(helper)의 존재, 그리고 반전과 비약 등이다. 『꽃 파는 처녀』는 이...
[학술논문] 개혁개방 이전 중국에 대한 북한 문화의 영향력 : 1950∼70년대 중국의 북한 영화 수입을 중심으로
개혁개방 이전 대량의 북한 영화가 중국에 수입, 유통 되었는데, 주로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상영되던 북한 영화는 그 역제편(譯制片) 횟수에서 소련의 뒤를 이어 두 번째일 정도였다. 문혁시기를 전후하여 소련 영화 수입이 거의 두절된 것과 달리 북한 영화는 지속적으로 중국 사회에 유입되었으며 「꽃 파는 처녀」와 같은 명작들은 당시 중국 인민들에게도 인기를 끌었다. 이 시기 중국에 수입된 북한 영화는 유형별로 혁명 영화, 조국해방전쟁영화, 건설 영화, 첩보 영화가 있는데 이들은 북한 영화 자체의 경쟁력, 북중 관계의 밀접함, 양국이 지닌 역사적 경험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중국 사회에서 상당한 흡인력을 지닐 수 있었다. 특히 문화 콘텐츠가 빈곤하였던 문혁시기에 이르면 북한 영화는 중국 문화시장에서 생동감 넘치는 스토리...
[학술논문] 박학의 삶과 영화 활동 연구
...이어지는 월북 직전까지그의 연극 활동은 소위 “예술극장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진보적 민족연극 수립”을 위한 노력의 과정이었다. 이러한 연극배우로써의 행적과는 달리 월북이후의 활동은 주로 영화를 통해이루어졌다. 북한 최초의 극영화 <내고향>에 출연한 이후 1960년까지 많은 수의영화에서 주역을 맡았던 그는 1961년 <분계선 마을에서>를 시작으로 영화 연출가로 전향하여 <꽃파는 처녀>를 비롯해 1960∼70년대 북한의 대표적인 작품들을연출했다. 그가 배우에서 연출가로 성공한 이유 중 하나는 무대배우로써의 경험과 영화배우로써의 경험이 북한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무대극을 영화로 만드는 작업에유리하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학위논문] 북한 서정가요의 주제와 음악분석
...애정과 풍속을 노래한 서정가요는 1990년 이후 많이 등장하게 되는데, 애정주제의 경우, 남녀의 애정사를 소재로 하고 있으나 사회주의적 전형으로서의 총각을 흠모하는 처녀 또는 처녀를 흠모하는 총각이 혁신자의 영예를 획득하여 처녀에게 인정받겠다고 하는 식의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풍속을 노래한 서정가요로는 전통적 소재를 가지고 노래한 곡들이 있는데, 전통적 소재에 대한 찬양은 곧 민족에 대한 자긍심으로 이어지게 된다.
가극 속의 서정가요는 가극 속의 각 장면들과 연관된 정서를 담고 있는 가사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는 《꽃파는 처녀》・《피바다》・민족가극 《춘향전》에서의 주요 곡들을 살펴보았다. 대부분 역경 속의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이므로 전반적으로 흐르는 정서는 슬픔에 관한 것이 많다. 하나의...
[학술논문] 1972년부터 1994년까지 북한의 국제 영화교류를 통해 본 남북영화교류 방안
...방향을 제시하는 데 있다. 북한은 1972년 처음으로 헌법을 개정하고, 온전히 독자적인 노선의 “자주적인 사회주의 국가”(제1조)임을 대내외에 선언하였다. 그리고 1972년을 전후하여 비동맹, 제3세계와의 국제 연대를 강화하였다. 북한이 국제교류 수단으로 활용한 것은 영화를 비롯한 문화예술이었다. <피바다>, <꽃파는 처녀>를 각색한 혁명가극으로 순회공연을 진행하였고, 예술영화 상영회 개최, 국제영화제 참가를 통해서 친선관계를 확인하였다. 영화를 통한 국제교류는 해외에서 개최된 국제영화제 참가를 거쳐 평양국제영화축전으로 이어졌다. 평양국제영화축전은 오늘날까지 사회주의권 국가를 비롯하여, 비사회주의권 국가와의 교류에서도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다. 남북교류에서도 남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