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월북 이후 이용악 시에 나타난 청년의 표상과 그 의미
...‘조국해방전쟁기’로 지칭되는 1950~1953년에 이르는 시기에 발표된 이용악의 시에는 청년의 표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들은 대개 ‘조국해방전쟁’에 복무하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조국해방전쟁기의 이용악 시에서는 희생양이자 투사로서의 청년의 표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전선에 선 청년은 불굴의 의지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그 과정에서 영웅적 희생양의 역할을 감당하기도 한다. 미래를 담지해야 할 청년의 희생을 통해 고양되는 것은 숭고의 감정이다. ‘전후복구 및 사회주의 건설기’에 발표된 이용악의 시들에는 지속적으로 긍정적인 청년의 표상이 나타나는데, 이들은 전후 복구 및 사회주의 건설을 앞당기는 일꾼이자 희망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이 시기 시에 나타난 청년의 표상은 긍정적...
[학술논문] 북한 문학자들의 소련기행과 전후 소련의 이식
...국가건설에 동원하는 데에 소련의 ‘사회주의적 경쟁’과 노동 영웅들에 대한 선전을 활용할 것을 제안하였다. 한설야는 전후 소련 당국이 선전하였던 사회주의적 인간형, 즉 자신의 미래를 긍정하며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헌신하는 소련 인민들의 모습에서, 새로운 조선인의 모델을 발견하였다. 무엇보다 이들은 전후 소련의 선전선동의 중요한 테마였던 사회주의적 ‘애국주의’를 적극적인 소개하고, ‘고상한 리얼리즘’과 ‘고상한 애국주의’로 알려진 북한문학의 노선 형성에 활용하였다. 또한 이들은 스탈린에 대한 개인숭배를 활용하여 김일성을 조선 의 유일한 지도자이자, 영웅, 애국자로 선전하였다. 북한 문학자들은 북한에 소련을 모방한 인민민주주의 국가를...
[학술논문] 민중의 자발성과 지도의 문제* - 최명익의 중기 소설 연구
최명익의 삶과 문학은 근대란 무엇이며, 그러한 근대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의문과 연결되어 있다. 해방 이후 최명익은 식민지적 근대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공산주의가 득세하게 된 북한의 현실을 수용한다. 부르주아의 잔재나 인텔리겐챠의 한계 등의 비판 속에서 최명익이 관심을 가졌던 것은 ‘승차’ 모티프에서 출발하여 「맥령」에 이르러 발견한 민중의 자발성 내지 능동성이었다. 공산주의적 지도를 민중들의 자발성과 어떻게 융화시키는가는 최명익 중기 소설의 핵심적인 과제였던 것이다. 해방 이후의 문제를 다룬 최명익의 소설들에서 근대를 성취하는 것은 민중들이다. 이들은 해방이나 토지개혁 등 외부에서 부여된 사태를 자발성과 능동성으로 훌륭히 소화해내면서 식민지적 근대의 폭압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학술논문] 북한에서의 이찬 시의 정치적 대응과 변모양상
...소련과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는 계기가 되면서 조소 우호의 시가 쓰여진다. 또한 새시대를 맞이하여 대중 속으로 파고들어 노동을 장려하는 현장참여시도 급격히 부각된다. 1950년 조국해방 전쟁기에 들어 북한 문학은 급격히 전시문학 체제로 개편된다. 미제국주의와 남한 이승만 정권 타도가 중심을 이룬다. 동시에 승리에 대한 확신과 희망을 주입시키는 혁명적 낙관주의 시가 쓰여진다. 또한 전쟁영웅의 형상화도 주요한 과업이었다. 전쟁후 북한은 폐허가 된 국토를 재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천리마 운동은 복구 건설기 문학의 중요한 소재가 된다. 천리마 현장에서 전투적으로 노동에 참여하는 천리마 영웅의 형상화는 이찬 시의 중심을 이룬다. 이찬은 북한정권의 수립기에서 정착기에 이르기까지 정치현실의 변모에 맞추어 창작해 간...
[학술논문] 이용악의 「평남관개시초」 연구
「평남관개시초」는 정전 후 숙청당했던 이용악이 북한 시단에 연착륙한데 이어 북한 문단의 중심에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게 한 작품이다. 1955년 복권되어 활동을 재개한 이용악은 이듬해인 1956년 조선작가동맹 시분과 위원 단행본부 부주필을 맡은데 이어『조선문학』 8월호에 「평남관개시초」연작 10편을 발표한다. 그리고 1957년 5월, 「평남관개시초」로 조선인민군 창건 5주년 기념 문학예술상 운문부문 1등상을 수상하게 되며 12월에는『리용악시선집』을 작가동맹출판사에서 출판하며 북한문단에서 위상을 확고히 하게 된다. 이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면서 1968년 9월 공화국창건 20주년 훈장을 수훈하였으며 또 작고한 후인 2003년 9월 조국 통일 위업에 바친 공로를 높이 평가받아 김정일에 의해 조국통일상을 수여하는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