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1960년대 후반 북한의 갑산파 숙청과 유일사상체계 형성에 관한 재고
이 연구는 1960년대 중반 갑산파가 유일혁명전통을 수립을 방해하고 혁명전통의 다원화를 시도했다는 기존 연구에 문제를 제기하며, 그 근거가 된 4가지 문제에 대하여 재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첫째, 박금철의 처 서채순의 사망 당시 로동신문에 게재된 부고 기사가 기존에는 박금철에 대한 개인 우상화의 산물이라고 인식되었으나, 연구 결과 서채순의 부고가 박금철 개인 우상화라 할 정도의 파격은 아니었다. 둘째, 「일편단심」이라는 작품이 박금철에 대한 아내의 수절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알려져 왔으나, 검토 결과 「일편단심」은 갑산파와는 관계 없는 지방 연극단의 창작극으로, 혁명 과업에 대한 한 여인의 헌신을 그린 작품이었다. 셋째, 갑산파가 리효순의 동생 리제순 전기를 출판함으로써 갑산파의 항일투쟁을...
[학술논문] 1967년 노동당 제4기 15차 전원회의 김정일 연설: 김정일 후계체제의 서막
...‘혁명2세대'들의 뒷받침 속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김정일이 첫 연설을 한 1967년 조선노동당 제4기 15차 전원회의가 주목된다. 이 연설은 김정일이 권력의 전면에 나서는 서막이자 ‘혁명2세대’들이 세대교체를 통해 노동당의 핵심층으로 부상하는 신호탄이었다. 또한 이 전원회의는 김일성 유일 사상체계 확립에 소극적이었던 박금철, 이효순 등의 ‘갑산파’가 제거되고 당 내에 유일사상체계가 확고하게 자리 잡는 출발점이 되었다. 이 전회회의에서 첫 연설 후 7년이 지난 1974년 김정일은 후계자로 공식 결정됐다. 1960-70년대에 형성된 북한의 ‘수령제 정치체제’는 1956년 ‘8월종파사건’을 계기로 조직적, 사상적으로...
[학술논문] 1930년대 중반 한인민족해방동맹의항일투쟁의 특징과 역사적 재평가
박달과 박금철은 1930년대 초부터 갑산에서 야학과 강습회 등 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두 사람은 긴밀한 협력관계를 형성하였고 대중적인 조직화의 필요성을 공감하여 조국광복회에 참여하였다. 갑산공작위원회를 한인민족해방동맹으로 개칭하고 조직 확대에 박차를 가했다. 한인민족해방동맹은 신규 조직원을충원하고 갑산군 운흥면과 보천면 일대에 여러 하부조직들을 신속하게 조직하였다. 박달과 박금철을 비롯한 주요 조직원들은 사상적으로 검증된 화전민과노동자를 대상으로 하여 신규 조직원들을 포섭해 나갔다. 반일회, 항일청년동맹, 부녀회, 아동대, 운동부 등 여러 하부조직들이 결성되었다. 한인민족해방동맹의 항일투쟁은 정치적·경제적·문화적 투쟁의 양상을 띠었다. 하부조직의 결성을 통해서 갑산 항일운동의 저변...
[학술논문] 1930년대 중반 함경남도 갑산 항일운동 조직의 체계화 과정
This study aims to analyze on the systematization of the anti-Japanese movement organization in Kapsan area, southern Hamkyung province in mid 1930s. The core members of the Korean national liberation alliance including Pak Dal and Pak Geum-Cheol, played an active part in expansion of organization, after the solidarity with the independence association of the fatherland in 1936. As the inflow of population
[학술논문] 1960년대 중반 북한 혁명전통 다원화 시도와 혁명전통 논쟁: 박금철의 처 서채순 관련 『로동신문』 보도를 중심으로
...혁명전통의 범주에서 제외되는 것은 일절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혁명전통 다원화를 과감하게 전개하였다. 그 단적인 예는 1965년 12월에 박금철의 처인 서채순의 부고기사가 파격적으로 『로동신문』에 보도된 것이었다. 이것은 조국광복회 산하의 한인민족해방동맹의 항일활동을 강조한 것으로 혁명전통 다원화가 전개된 것이었다. 이처럼 박금철의 정치적 위상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로동신문』의 서채순 관련 보도 이후에 얼마가지 않아 북한은 권력구조 개편과 함께 혁명전통의 유일성에 대한 논쟁이 본격적으로 점화되었다. 본 논문은 서채순의 사망을 알리는 『로동신문』의 기사가 박금철의 정치적 영향력과 함께 갑산파의 결집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 보인 계기였고 이와 동시에 혁명전통의 다원화 시도가 강력하게 전개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