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오영진과 반공․아시아․미국 -이승만 전기극 <청년>․<풍운>을 중심으로-
...해방 이후 제3공화국에 이르기까지 극작가이자 평론가, 잡지 발행인, 영화 제작자, 정당 정치인 등 다양한 정체성의 삶을 살았다. 또한 해방 이전과 이후, 전쟁과 전후, 소 군정하의 북한과 미 군정하의 남한을 모두경험한 이채로운 경력의 소유자이다. 오영진은 해방 직후 평양의 민족지도자 조만식의 조선민주당 창당 과정에 참여했으며 1947년 월남한 이후 1952년 전시 부산에서 월남 문인들을 중심으로 문학단체를 조직하는가 하면 반공서적 전문 출판사를 설립했으며, 1953년 미 국무성의 리더스 그랜트로 미국을 다녀온 이후 1955년 미 공보원과 공동으로 반공영화를 제작하는 등 1950년대 내내 ‘반공 전사’, ‘반공 이데올로그’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영진은 서북 출신...
[학술논문] 한국전쟁 전후 시기, 남북한의 냉전이데올로기 영화에 재현된 근대화담론의 비교
한국전쟁은 2차대전이후 반공보루를 구축하려는 미국과 공산블럭을 구축하려는 소련의 의지가 한반도라는 지역에서 전면적으로 충돌한 사건으로 전후 두 한국의 분수령이자 현대 한국의 출발점이다. 전쟁 전 신탁통치를 둘러싼 논쟁에서 단초를 마련한 냉전이데올로기로서 반공주의와 반제국/반미주의는 한국전쟁을 통해 자생력을 갖게 되었다. 반공과 반제국/반미는 한국전쟁 이후 남북한의 내부 발전방향의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을 부과했다. 경로의존성이란 현재의 변화가 과거의 제약과 가능성에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다는 것으로 한국전쟁 후 남북한이 민족을 대신해 주목한 근대화 논의도 반공주의와 반제국/반미에서 결코 자유로울수 없었다. 한국전쟁 이래 현재까지 남북한이 각각 추구한 국제화 대 민족화, 세계화대 자주화, 탈한국화...
[학술논문] 박정희 시대의 ‘민족’ 담론과 이만희 영화의 ‘민족’ 표상
... 용사였던 이만희는 1960년대 ‘반공 영화’ 흥행작들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국가로부터 물질적, 제도적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1965년 작품인 <7인의 여포로>에서 북한군을 동일 ‘민족’의 범주 안에서 형상화했다는 이유로 이만희는 검찰에 의해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되었고 영화는 상영 금지 처분까지 받았다. 국가가 영화의 상영을 위한 검열 뿐 아니라 제작 허가 및 영화 제작사의 설립 허가에까지 관여했던 1960~70년대에 이 사건은 이만희를 비롯해 수많은 창작자들에게 예술적 상상력을 제한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서 만들어진 이만희의 다른 작품에서 다루어졌던 국군과 이 작품에서 국군 묘사가 본질적으로...
[학술논문] 망각된 냉전체제하의 <아리랑>-1963년, 남북단일팀 국가가 되기까지의 남북한 <아리랑> 정전화 과정
...연주하는 한편, 54년에 반공 영화 『아리랑』을 한국과 공동 제작하면서 <아리랑>에서 점차 통속성을 떨쳐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57년에 나운규 서거 20주기를 기념하여 영화 『아리랑』 리메이크가 제작되는 흐름으로 이어져, 재차 항일 저항의 메시지가 대중적으로 선전되었다. 한편 북한의 경우는 당초부터 민족음악 건설의 기초자료로서 그 가치가 천명되어 일찍이 민요의 계승 작업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아리랑>이 특별히 주목되어 공식적인 노래로 불린 것은 아니었다. <아리랑>이 민족의 노래로서 특별한 가치가 강조되기 시작한 것은, 역시 남한과 마찬가지로 57년에 영화 『아리랑』이 일제하 민족해방투쟁에 복무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선구적 영화로 주목된 것과 관계가 있는...
[학술논문] 한국 반공만화영화의 선전 전략과 그 의미
... 이룩했다는 점에서 우월성이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관객에게 위기의식을 심어주고, 그것을 해소하는 반공사상을 긍정적으로 그려내는 것에 성공함으로써 반공만화영화는 계몽․선전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낸다. 반공만화영화는 침체기에 접어든 만화영화 산업을 살리기 위한 방법으로 고안된 것으로, 정부의 지원을 받아 안정적으로 관객을 확보하면서도, 만화영화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는 방책이었다. 반공만화영화는 선전의 기능을 어느 정도 효과적으로 수행해 냄으로써 한국만화영화의 새로운 존재 방식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