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사할린 한인 귀환을 둘러싼 배제와 포섭의 정치 - 해방 후∼1970년대 중반까지의 사할린 한인 귀환 움직임을 중심으로
...직후인 1966년부터이다. 이것도 한국정부의 일본에 대한 식민지 지배 책임에 대한 문제제기라기 보다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구명운동에 대한 일종의 면피성 대응과 일본의 ‘재일조선인 북송문제’에 대한 대응적 카드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와 더불어 1964년부터 시작된 한일협정 반대운동으로 약화된 정권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반공과 반일 감정을 일으키는 기재로도 사용했다. 소련과 북한이 노동력으로써 사할린 한인을 ‘국민’으로 포섭한 것에 비해, 한국정부는 사할린의 한인을 ‘국민’으로 포섭하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정부는 그들을 ‘한국인’의 경계에 두고 끊임없이 사상성을 감시하고 통제함으로 한국의 정통성,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학술논문] 재북한일본인들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북한의 일본인기술자 정책(1945~1950)
...일본인들을 향해 분출된 조선인들의 반일감정을 분석하고 있는 이 연구는 일제시기에 형성된 민족주의가 해방을 계기로 표면화되는 과정이 현대 남북한 각각의 국민과 인민의 형성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엿볼 수 있는 효과적 통로를 제시한다. 학문적 차원을 넘어 재북일본인문제는 현실 외교정책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북한과 일본의 수교문제가 거론될 때 일본이 협상의 범주에 포괄할 수 있는 의제가 과거 북한의 일본인 억류와 사유재산권 박탈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주제를 둘러싼 한국인들과 일본인들 간의 관점 차이는 양국 간의 역사적 갈등이 학문영역에까지 날카롭게 연장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필자는 해방직후 한반도에 잔류하고 있던 일본인들을 향해 분출된 조선인들의 반일감정과 그 기저에 놓인 민족주의가 모든...
[학술논문] 북한『노동신문』에 나타난 독도기사(2009~2017) 현황분석
...‘고등학교 교과서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영유권 주장을 고수한 점이다. 그리고 독도관련 기사를 분석한 결과를 요약하면, 1) 한국 정부 인사들의 소극적인 일본 대처 방안을 비난하는 것과 한국의 언론, 민간단체, 민간인들의 적극적인 대응과 규탄을 제시. 2) 일본의 독도영유권 등에 대하여 독도강탈, 침략이라고 하며 한국국민들에게 반일감정 선동역할. 3) 반미적대정책을 선동. 4) 남북 공동독도수호운동의 공동성명발표. 5) 일본이 북한에 의한 통일을 방해하는 것을 비난하며, 독도와 관련하여 통일전략전술을 내세우고 있다. 6) DB구축시스템과 종래 아카이브의 자료검색의 편차. 이것은 아직까지 북한과의 자료공유가 원활하지 않은 점에서 비롯된다. 결론적으로 북한의 독도인식이 매우 對日비판적이라는데...
[학술논문] 北朝鮮と日本の映画交流·関係史に関する研究(1994~2011)
...る「反日教養」映画に顕著に現れた。このような映画の中で日本(人)は朝鮮を物質的、精神的に収奪する存在として描かれた。 また、2000年代以降の北朝鮮映画における日本(人)の表象は解放後、朝鮮人の帰還過程とその後の人生を描いた映画の中でも見られる。このような映画で繰り返されている「被害者(朝鮮女性)/加害者(日本男性)」の構図は、解放後も続く日本(人)の朝鮮に対する蛮行を示し、当時の北朝鮮社会に反日感情を鼓吹させる役割を果たした。 次に、日本映画における北朝鮮(人)の表象も、日本社会の北朝鮮に対する政策と世論の影響を受けていた。特に在日朝鮮人を主要人物型に設定した映画は、彼らを「韓国籍」「朝鮮籍」と二分化して思考する日本社会の現実が反映されたものだった。さらに映画で「朝鮮籍=北朝鮮」という図式は、北朝鮮を象徴する事物、そして現実と遊離している朝鮮学校の姿を通じて生産されていた。そしてこのよう...
[학술논문] 중국의 안중근 연구 경과와 안중근 유해 발굴에 대한 인식
...남북한공동발굴단의 현지 조사와 2008년 남한 단독 발굴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중국 측의 관계자와 연구자가 한국 측의 안중근 의사 유해 매장지 추정에 동의하지 않았다. 따라서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사업이 재개되려면 한중 연구자가 서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공동연구를 추진하는 것이 우선이다. ‘둥산포 묘지설’은 안중근 의사의 시신이 ‘공동묘지’에 안장됐다고 한 신문보도에 근거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의 반일 감정과 독립의식을 자극할 것을 우려한 일제가 안 의사의 매장지를 사실대로 공개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안중근 의사 유해 매장지로 경비와 통제가 가능하고;안중근 의사 수감 당시 감옥 담장 바깥 북쪽부터 도랑 내외에 이르는 공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