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대한민국 제헌헌법과 ‘건국절’ 논란-헌법 전문과 중앙정부론을 중심으로-
...분단정부로 전화했다. 분단정부인 대한민국정부를 전국정부로 변신시키고 여기에 대한민국을 유일합법국가인독립주권국가로 보는 시각이 덧씌워지면 분단국가가 탄생하게 된다. 8・15 건국일을 주장하는 논자들은 대한민국정부는 유엔 결의에 의한 유일합법정부이며 이 유일합법정부는 곧 전국정부라는 것과 그 정부의 국가인 대한민국은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적인 독립주권국가라고 주장하겠지만, 그 실제 내용은 분단국가의 분단정부이다. 대한민국과 대한민국정부를 유엔이 승인한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와 주권국가로 보는 시각은 북한을 흡수 통일하는 방법 이외의 다른 통일 방법, 예를 들어 1947년과 1948년의 유엔총회 결의에서 언급된 ‘포괄적 협의’를 바탕으로 한 통일을 배제하는 것이며 분단국가의 분단정부를...
[학술논문] 1945~1950년 북한의 과학기술과 근로인민 형성에 대한 인식
...이루는 것이 바로 사회주의 사회의 이상형이라고 이해하였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북한 정권은 당면한 현실을 해결하기 위한 측면에서 과학기술의 보급과 전파를 통해 인민을 ‘과학화’하고자 하였다. 특히 산업현장에서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 과학기술을 주입하여 부족한 기술인력을 충당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다. 산업현장에서는 ‘기술공백’을 메우기 위한 고투 속에서 첫 2개년 계획 기간에는 창의성을 발휘하는 노동자가 가장 과학적인 근로인민으로 추켜세워졌다. 분단 정부 수립 이후에는 노력합리화를 명분으로 하는 ‘소비에트 테일러리즘’의 도입이 본격화되었다. 자신의 육체를 가장 과학적․합리적으로 움직여 생산에 매진할 것이 노동자에게 요구되었다.
[학술논문] ‘냉전’과 ‘열전’의 지역적 기원 — 유럽과 동아시아 냉전의 비교 역사사회학
...기간 국민국가 체제가 자리잡은 상태에서 독일문제를 다자주의적으로 처리하려 했지만, 동아시아는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새로운 독립국가를 수립하는 것이 가장 큰 당면 과제였다. 둘째, 유럽과 동아시아는 냉전 균열구조의 형성과 결정적 국면의 양상이 달랐다. 유럽의 냉전과 분단은 1949년부터 1955년경까지 느리고 약하게 진행되었지만, 동아시아에서는 1948년에 분단정부가 수립되고 1950년엔 지역차원의 전면전인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유럽은 미소 냉전 균열구조에 다자주의적 포섭이 이루어졌지만, 동아시아에선 선별적, 차별적, 순차적 포섭이 이루어졌다. 셋째, 냉전이 제도화된 이후 발생한 위기의 성격과 그에 대한 대응방식이 달랐다. 유럽에선 베를린 위기, 쿠바위기 등이 발생하자 과도한 양극화에 대한 반발로 프랑스와 독일이...
[학술논문] 1945~ 1950년 북한의 공채발행 구상과 ‘인민경제발전채권’ 응모사업의 시행
...말기 수탈 경험과 구매력 부족으로 해방 직후 곧바로 시행되지는못했지만, 사회주의 경제이론가들은 초기부터 공채발행을 주요 재정정책의 방식으로 구상하고 있었다. 둘째, 공채는 한국전쟁 직전에 발행되었기 때문에 주로 전쟁 준비의 일환으로 보려는 경향이 강했지만, 애초의 발행 목적은 부족한경제 부문 및 인프라 건설에 대한 투자에 놓여 있었다. 공채는 남북에 분단정부가 수립된 상황 속에서 전쟁을 통한 ‘말살’이 아닌 체제 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발행된 측면이 컸다. 셋째, 공채의 운용방식은 단순히 할당이나의무 부과가 아닌 복권식 추첨 방식을 원용함으로써 대중들의 잘살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 측면이 있었다. 공채는 전쟁이 초래한 인플레이션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