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美전략사령관 지명자 "러·중·북 맞서 美도 핵전력 현대화해야"
리처드 코렐 미국 전략사령부(USSC) 사령관 지명자는 30일(현지시간) 러시아와 중국, 북한이 핵전력을 확대하는 것이 미국과 동맹국들에 실제적인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뉴스] "주한미군, 숫자보다 능력" 사령관이 병력 감축 시사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미 육군 대장)이 8일 한미 동맹 현대화와 주한 미군 조정에 대해 “숫자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역량(capabilities)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그런 결정들이 내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위협과 북·러 밀착에 대응하기 위해 주한 미군 구성과 역할이 달라져야 한다는 취지지만, 병력 감축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은 것이다.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와 관련해 어떤 논의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뉴스] '김정은 격노' 누그러졌나…삭제됐던 北해군사령관, TV 재등장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지난달 북한에서 발생한 구축함 사고 책임자 가운데 한 명인 김명식 전 해군사령관이 북한 관영매체에서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가 다시 등장했다.
조선중앙TV는 지난 1월 첫 방영을 시작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기록영화 '위민헌신의 여정, 새로운 변혁의 2024년'을 29일 재방영했다.
[뉴스] 국방부 "해병대사령관 4성 장군 진출 검토"…국정기획위에 보고
국방부는 이재명 대통령의 '준 4군 체제' 공약 이행계획의 일환으로 '해병대사령관 4성 장군 진출'을 검토하겠다고 국정기획위원회에 보고한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뉴스] 주한미군사령관 “미군 때때로 이동해야... 감축 이야기 들은 바 없어”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27일(현지 시각) 주한미군 감축설에 대해 “(미) 합참의장이 그런 이야기를 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다만, 주한미군의 전략성 유연성을 강조하는 입장을 보였다.
[정치/군사]
“죽음은 두렵지는않았다. 오직 패전이 두려웠다”
전쟁과 군과 그리고 백선엽,
한국 역사에 있어서, 6.25전쟁은 무엇을 의미하며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는가?
한국전쟁 당시 최일선 야전사령관으로서 전쟁을 치룬 백선엽장군이 오늘의 젊은 지정에게 바치는 생생한 전쟁 메시지
[정치/군사]
...분석한 결과 3·1운동과 임시정부, 이순신과 안중근을 철저하게 혁명적 수령관으로 폄훼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문화 분야에서는 ‘북한에는 국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밝혔다. 북한에 국악이 없다는 것은 최초의 학술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일곱째, 강연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 10개를 소개한다. ① 죽은 김일성이 지금도 북한을 통치하는지 여부 ② 쿠데타 가능성 ③ 최고사령관 국무위원장 당 중앙군사위원장의 관계 ④ 건군절과 선군절 차이 ⑤ 뇌물 등 부조리 실태 ⑥ 혁명열사릉과 애국열사릉 차이 ⑦ 장마당과 장마당 세대의 특징 ⑧ 북한군 수뇌부 인사 분석 ⑨ 김정은 사망 시 권력 세습 문제 ⑩이승만 대통령과 김일성의 친일파 청산 실상 등이다.
[정치/군사]
...한국전쟁을 기록한 무수한 글에는 부주의하게 적은 몇 줄의 글이 작고 큰 사건으로 이어졌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처럼 한국전쟁을 둘러싼 각 세력의 심리전은 대단했다. 왕수쩡은 한·미 vs 북·중이라는 표면적인 구도뿐만 아니라 세력의 내부에 깃든 긴장감을 포착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한국전쟁 하면 떠오르는 미국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사령관이 한국전쟁에 개입된 여러 관점을 놓고 대립하는 장면을 ‘웨이크섬 회동’을 비롯해, 각종 전보의 교신에서 쌓인 불신과 맥아더의 언론 플레이로 인해 빚어진 갈등 등으로 비중 있게 다뤘으며, 중국인민지원군 지휘관 펑더화이가 적군인 한국과 미군을 대상으로 한 3차 전역을 도중에 중지한 것을 두고 소련과 북한(특히 김일성)의 심경이 불편했던...
[정치/군사]
...탓’ 하는 미 8군 사령관이 있었다고 꼬집었다. 백 장군이 지적한 것처럼 당시의 잘잘못을 기록해 귀감으로 삼으면서도 열악한 상황 속에서 분투했던 국군에 대해 애틋하고 따뜻한 눈길로 바라볼 때도 됐다.
베이징 특파원 시절 김정일의 방중이나 북한의 핵실험 등으로 북-중 관계에 변화 조짐이 보일 때 접경 도시 단둥에 종종 갔었다. 단둥 시가지 뒤편 잉화산에 세워진 항미원조기념관에도 들렀다. 그런데 이번 시리즈 취재차 단둥에 가서 과거에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있음을 알게 됐다. 단둥은 북-중 교역의 최대 관문일 뿐만 아니라 6·25전쟁의 상흔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곳이었다. 미군 폭격으로 끊어진 다리 ‘단교(斷橋)’ 위에 중공군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가 ‘1950년...
[정치/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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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전쟁 발발 나흘 후인 1950년 6월 29일 수원 비행장에서 히긴스는 전쟁상황 시찰 차 방한 중인 맥아더 장군을 만난다. 당시 둘이 만나는 사진은 충격적이다. 30세의 히긴스는 오른손을 허리에 얹고, 70세의 맥아더는 오른손으로 히긴스의 왼팔을 가볍게 잡고 말을 건네고 있다. 1945년 8월 일본 패망 후 맥아더 연합군 최고사령관 앞에서 감히 그런 포스를 취한 사람은 없었다. 이는 맥아더가 양손을 허리에 얹고, 일본 국왕은 차렷 자세로 선 사진과 비교된다.
아무튼 맥아더는 수원 비행장에서 히긴스에게 자기 전용기에 동승을 제안하고, 히긴스는 도쿄로 가는 도중 그를 단독 인터뷰해서 ‘한국에 지상군 파병’에 관한 특종을 건진다...
[학술논문] 국방개혁안의 논의와 발전방향
천안 함 피격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 등 북한의 계속된 도발과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반성은 국방개혁의 필요성을 검토하게 되었다. 더구나 2015년 전시작전통제권이 한국군으로 전환됨에 따라 우리군의 주도적 역할을 강화해야 하는 시대적 상황은 우리군의 전쟁지도 능력. 작전기획·계획 및 수행능력을 획기적으로 제고할 필요를 요구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군의 구조·운용·교육 전 분야에 대한 3군의 합동 성 강화와 포괄적 안보위협에 대비하는 전투 형 군대육성으로 적극적 억제능력을 향상 시키며 군을 슬림화하고 국방 운영의 낭비 요소를 줄이는 효율성 극대화 등을 중점으로 국방개혁의 기본방향을 설정하였다. 특히 1990년 「818계획」에 따라 개편된 현재의
[학술논문]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정책의 변경요인 분석과 대안:한·미의 국가이익을 중심으로
...바람직할 것이다. 셋째, 전작권 전환은 정치적 요인을 배제하고 순수 국가이익 차원에서 객관적 분석을 통해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전작권 전환조건 평가시 고려해야 할 사항은 한반도 안보환경 평가, 북한 핵미사일에 대한 한국 측의 대응능력 평가, 전작권 전환 당시 북한군의 능력 vs 한국군의 능력 비교, 주한미군의 한국군 지원보장 등이다. 향후 전작권 전환 시 새로운 지휘구조는 ‘한미연합작전’ 수행과 ‘한국의 자주권’보장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군을 주축으로 하면서 미군의 주요 기능이 편성된 새로운 연합전구사령부를 창설하고 사령관은 한국군 합참의장이 맞도록 하되, 유엔사의 역할을 강화하도록 설계할 필요가 있다.
[학술논문] 북한의 군사지도·지휘체계: 당·국가·군 관계를 중심으로
...군사지도·지휘체계는 최고지도자인수령을 정점으로 당, 국가, 군이라는 3선으로 분화되어 ① 당 총비서와 당중앙군사위원장의 당적 통제, ② 최고사령관의작전 지휘 통제, ③ 국방위원장의 군사행정 및 국방경제 통제 영역의 각기 다른세 가지 계선으로 나뉘어 작동하게 되었다. 김정은 역시 ‘당 제1비서’와 ‘당중앙군사위원장’직을 가지고 중요 군사정책과 군 간부 인사 결정에 관여하고 있으며,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직으로 국가군사기구인 인민무력부, 인민보안부, 국가안전보위부를 지도하고 있다. 또한 군대의 최고직책인 ‘최고사령관’직을 가지고 군대를 직접 지휘 및 지도하고 있는것이 북한 군사지도·지휘체계의 오늘이다.
[학술논문] 한국군은 6.25전쟁 정전협정의 당사자인가?
...없는 형식상 하자 (瑕疵) 로서 제시되고 있는 논거들을 반박하고 있다 . 정전협정 원문에 한국군 사령관의 서명이 없는 것은 국제연합군 사령관이 한국으로부터 군지휘권을 위임받은 상태에서 16 개 참전국 사령관들과 한국군사령관까지 대표하여 서명했기 때문이었다 . 정전협정에 따라 1954 년 제네바에서 개최된 정치회담에도 한국대표가 참석했고 , 이에 대해 공산진영은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바 있다 . 1918 년 11 월 11 일에 체결된 제 1 차 세계대전 휴전협정(Convention d’armistice) 에서도 독일군의 무조건항복을 받아내야 한다고 하면서 휴전협정 체결에 반대했던 미군 사령관 존 퍼싱 (John Pershing) 은 협정문에 서명하지 않았고 , 연합군 총사령관인 페르디낭 포쉬...
[학술논문] 서해북방한계선(NLL)의 법적성격에 관한 연구
1953년 7월 27일 한국정전협정 체결시 육상에서의 경계는 쌍방 간의 군사 접촉선을 중심으로 군사분계선이 합의되었으나 해상경계에 관하여 아무런 근거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다만 정전협정 제2조 13항목에서 “백령도 등 서해 5도만유엔군 사령관 통제 하에 둔다”라는 내용만 명시되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입법적 흠결로 북한은 서해북방한계선을 비합법적인 선으로 그 법적 효력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서해 북방한계선은 1953년 8월 30일에 유엔군과 한국군의 북쪽해상으로 월선(越線)을 방지하기 위해 설정되었다. 간헐적으로 무력충돌은 있었으나 쌍방 간의 무력적 충돌방지역할은물론 평화와 군사적 안정을 유지시켜 온 사실상 남북한 간의 해상경계선이다. 특히 서해 북방한계선은 한국해군에게 북한의 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