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청동기~철기시대 중국 동북 지역 물질문화의 전개와 상호 작용 및 족속
...청동예기의 族徽 등에 언급되어 있는 일부 족속 및 그의 선계와 연관이 있고, 燕山山地의 東南溝-玉皇廟文化는 山戎族, 內蒙古 東南部의 夏家店上層文化는 東胡族의 선계 諸族, 水泉類型은 東胡族, 遼寧省·吉林省 中部·延邊朝鮮族自治州·沿海州 南部·韓半島는 濊貊系 제 족속, 十二臺營子文化期 遼寧의 일부와 초기철기시대의 西北韓은 古朝鮮에 해당된다. 또한 內蒙古 東北部의 哈烏拉文化는 몽골 동부와 외바이칼호 일대의 족속, 扎賚諾爾類型은 익히 알려져 있는 것처럼 拓拔鮮卑族의 선계와, 黑龍江省과 吉林省 西部의 白金寶文化부터 紅馬山文化까지는 고대 중국에서 鮮卑·烏桓은 물론 東夷 제족과도 구분되는 北夷로 인식한 별개의 족속과 연관이 있다. 또한 黑龍江 하류역 러시아 경내 沿海州의...
[학술논문] 『山海經』 ‘朝鮮’ 조문의 성서 시기 연구
...고조선상을 복원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세 편 사료의 맥락을 분석하면서 해당 조문들의 성서 시기를 한정해 보고, 해당 조문들이 역사적 사실성을 담보하는지 검증해 보았다. 우선 「해내북경」편 조문은 ‘鉅燕’이란 용어가 사용되고 있어서, 이 조문은 연장 진개의 침략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본 조문에 기재된 列陽은 서북한으로 비정되는데, 중원 세력이 한반도 서북부에 진출했던 시기가 전한 무제대였다는 점을 참고로 한다면, 본편 조문은 이 시기 이후에 삽입되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후한대의 문헌에 와서야 등장하기 시작하는 倭가 본 조문에 기재되었다는 점에서 이를 더욱 확신할 수 있다. 다음으로 권말의 「해내경」편에는 ‘朝鮮天毒’이 등장한다. 천독과 관련해서는...
[학술논문] 百濟 橫穴式石室의 型式變遷과 系統關係
백제지역 횡혈식석실의 형식분류는 현실의 평면형태와 천장구조에 의해 20가지 기본형식으로 분류되며, 기본형식은 다시 석재와 용법, 현문구조에 의해 27가지로 세분되며, 횡구식석실은 방형과 장방형으로 분류된다. 폐쇄법은 횡혈식석실의 현문구조와 석재에 따라 결정되는데 이것은 횡혈식석실의 축조에서 폐쇄까지 일정한 약속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각 형식에 있어서 규모의 대응관계, 분포범위와 규모에 의한 변천을 살펴보았다. 전체 형식은 점차 현실의 규모가 축소되고 현실 폭이 좁아진다. 형식변천은 구조적인 특징에 의한 변천과정을 검토하였다. 각 단계는 형식의 출현과 소멸, 구조적인 특징, 규모의 차이에 의해 구분된다. 횡혈식석실의 유형은 고유한 특징으로 만들어진 단일양식과 두 가지 이상의 형식이 조합되서 새롭게 만들어진 복합유형이
[학술논문] 고고학 자료로 본 위만조선의 문화 성격 – 평양 일대의 고분을 중심으로 –
...토착계 주민과 燕·齊·趙의 중국계 이주민으로 구성된 다종족(Multi-Ethnic Groups) 국가였다고 파악하였다. 평양 일대는 위만조선의 수도로 비정되는 등 남북한 학계가 모두 위만조선의 강역으로 보는 최소한의 합의지역이다. 본문에서는 문헌에 고조선이 명확히 등장하는 시기, 즉 연과 직간접적으로 충돌하는 기원전 4세기 이후 서북한 지역의 고고학적 배경을 무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기원전 2세기 평양 일대에 조성된 무덤을 토광직장묘, 토광목관묘, 토광목곽묘(북한 학계의 나무곽무덤)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또한 이들 무덤의 부장품을 일별하여 평양 일대 거주민의 실체와 그들이 지닌 문화의 일면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그 결과 토착의 돌무덤 전통이 사라지고 토광묘계 무덤이 새롭게 주 묘제로...
[학술논문] 청동기~철기시대 요령·서북한 지역 물질문화의 전개와 고조선
청동기~철기시대 전기 요령~서북한 지역의 물질문화는 기원전 3세기 전국연문화가 요서와 요동 등지의 일부 지역에까지 확산됨에 따라 커다란 변동을 겪게 된다. 이 가운데 대동강~재령강 유역의 정백동유형 전기는 이 지역 토착의 신흥동유형이 아닌 십이대영자문화 정가와자유형을 직접적인 계보로 하여 형성되었을 뿐 아니라 후기의 물질문화 양상이 위만조선과 낙랑군에 대응된다는 점에서 진개 침공 이후 이 일대로 밀려난 준왕의 고조선과 준왕으로부터 정권을 빼앗은 위만조선에 의해 남겨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십이대영자문화 정가와자유형을 준왕 이전의 고조선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위략』의 조선후 기사와 부합하는 것은 심양의 정가와자유형이 아닌 객좌의 남동구유형이다.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게 된 까닭은 십이대영자문화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