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군사]
...7~8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개최된 원폭국제민중법정 제2차 국제토론회 자료집이 발간되었다. 유럽과 미국,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전 세계의 저명한 국제법 학자와 법률가, 반핵·군축 연구자들이 발표와 토론을 맡았으며, 발표문과 토론문은 각각 한국어, 영어, 일본어 세 가지 언어로 번역되었다.
2023년 6월 한국 성주에서 개최된 1차 토론회가 1945년 기준 조약국제법에 의해서든 관습국제법에 의해서든 핵무기 투하가 반인도적일 뿐만 아니라 불법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데 초점을 두었다면, 2차 토론회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핵무기 사용과 위협을 불법으로 단죄할 수 있는 법리를 확립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또한 1·2차 토론회 성과를 바탕으로 2026년 뉴욕에서 개최될...
[정치/군사]
본 서는 중국과 북한 양국이 1961년 체결한 중-북 동맹 조약 체제를 어떻게 관리, 운용해 오고 있으며, 특히 강대 동맹국으로서 중국이 그동안 북한과 지속적인 '갈등과 냉각 관계 유지에도 불구하고 동맹을 계속 유지해 오고 있는
실익은 무엇인지, 그리고 특히 제1세대 지도부인 마오저뚱 시기 이래 현 제5세대 지도자 시진핑 집권에 이르기까지 중국이 동맹국인 북한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관리하고 조정해 왔는지를 국제정치학적 '동맹 이론'의 관점에서 분석
하였다. 우선 양국이 체결한 ‘중-북 동맹조약’의 내용과 그 실효성 여부를 살펴보는 한편, 중-북 양국이 동맹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상호 갈등과 협력을 상시적으로 반복해 온 이유와, 또한 중국 최고지도부의
[학술논문] 북한이탈 남성주민의 남한 사회에서의 적응경험
Purpose: The study was done to explore meanings and essence of the experience in South Korea of men defectors from North Korea. Methods: Data were collected from March, 2011 to May, 2012, through in-depth interviews with ten men defectors. Data analysis was conducted using the process of hermeneutic phenomenological reflection. Results: Eight essential themes were extracted; ‘buoyant expectation
[학술논문] 1259년 북계 成州 岐巖城戰鬪 승전의 역사적 성격
성주 기암성은 조선 후기 지도류인 『동여도』·『대동여지도』· 『대동방여전도』를 통해서 보면, 성천도호부 삼기면(지금의 북한 평안남도 성천군 삼덕면)에 있는 두미산 좌측 산자락에 위치한 석성이었고“험산대성”의 입지를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기암성에서 1259년(고종 46) 1월에 대몽전투가 벌어졌는데, 야별초 부대와 성주 백성들이 서로 협력하여 몽골 장수 보파대가 이끌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몽골군 1개 부대를 크게 격파하였다. 기암성전투는 몽골 제6차 침입(1254∼1259) 말엽에고려가 북계 지역에서 거둔 마지막 승리이자 군·관·민이 협력하여 거둔유일한 승리였다. 기암성에는 이미 1258년에 야별초 부대가 파견되어있었는데, 비록 방호별감은...
[학술논문] 남북한 친자법의 통합방안
본 논문은 장차 제정될 통일 가족법에 있어서 친자법의 입법화를 위한 기초자료를 제시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북한 가족법(제25조-제34조)에서 규율하는 친생자와 법정친자의 각 규정의 주요내용과 특징을 검토한 후, 이를 토대로 남북한 친자법의 통합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먼저 북한 친자법의 규정 중에서는 혼생자와 혼외자의 지위 평등(제25조 제3항), 자녀의 성과 부성추종의 원칙(제26조 제1항) 등과 같이 우리 민법의 관련 규정과 같은 태도를 취하는 것들이 있으며, 이러한 것으로는 친생자관계존부 확인의소 등 친자관계를 다투는 소(訴) 관련 규정, 자녀의 성과 부성주의의 예외를 다루는 규정 등을 들 수 있으며, 위 적용에 있어서는 독일의 입법태도를 고려한 경과조치를 두어야 할 것이다. 또 북한 가족법은 그 단순성으로
[학술논문] 남북대화 규범의 탄생- 구성주의 시각에서 본 1970년대 남북대화
본 논문은 1970년대 남북대화를 구성주의의 시각에서 접근하고자 했다. 구성주의는 현실주의가 포착하지 못하는 연구대상을 발견하게 해주며, 연구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설정하게 함으로써 현실에 대한 또 다른 이해를가능하게 한다. 1970년대 남북대화는 ‘데탕트’의 흐름 속에서 한민족국가를 꾀하는 ‘민족주의’와 이산가족방문을 뒷받침하는 ‘인도주의’의 가치가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이와 같은 가치들은 이전부터 존재해왔으나, 냉전적 국제정치구조가 느슨해지기 전까지는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일원이라는 정체성을 가로지르는 남북교류는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우호적인 남북관계는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이는 1970년대 남·북한의 관계개선이 국가 이익과정체성
[학술논문] 1960년대 북한의 군사주의 확산 과정 연구
북한은 1960년대 초 북·소 관계가 악화되고 남한에서 5·16 군사정변이발생하자 1962년부터 ‘국방에서의 자위’ 정책을 천명하고, ‘4대 군사로선’을 추진하는 등 군사주의적 경향을 강하게 나타냈다. 특히 미국의 베트남전 확전, 북·중 관계 악화 등 안보 위협이 심화된 1966년에는 경제· 국방건설 병진노선을 강화하고 군사비를 대폭 증액시켰다. 이러한 군사력 강화 정책은 군대의 정치적 참여 확대 및 군사주의의 제도화로 이어졌다. 또한 군부의 정책결정 영향력 증대와 군사력 강화는 김일성의 한반도 혁명 완수 의지와 맞물려 1968년 전후 1·21 청와대 습격사건과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등 공세적·군사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