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해방 후 8년간 최명익과 그의 문학, 1945.8~1953 - 중간파적 경향과 애국주의 선전을 중심으로
...경고를 받은 이유를 조명하겠다. 해방 직후, 최명익은 특정 이념을 추구하지 않는 ‘중간파’를 표방하고 평양예술문화협회를 결성하였지만, 토지개혁을 지지하고 북한에 인민민주주의 국가가 수립되는 것에 협조하였다. 또한 최명익은 김일성을 새 국가의 지도자로 인정하고, 일제 말과 해방 후 국가 건설기에 북한 주민들이 발휘하는 애국심의 고무자라고
선전하는 북한 문학의 노선을 따랐다. 그러나 한국전쟁 기간, 최명익은 박헌영 계열 문학자들과 협력하였으며, 「기관사」(1951)와 같은 소설에서 인민민주주의와 조선로동당을 애국심의 원천으로 강조하는 등 박헌영의 노선을 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명익은 1953년 초 이태준과 달리 숙청되지 않고 경고만 받았다. 그 이유는, 최명익이 수많은 문인들 가운데서 제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