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식민지 소극적 협력자들의 해방 후 우익세력화 고찰 - 소설 『관부연락선』 속에 나탄 ‘이’와 ‘유태림’의 우익세력화 고찰 -
...소극적 협력자들이 해방 후 우익세력화되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그들은 해방 후자신들과 그 가문의 생존․안녕을 도모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는 상태에서 우익세력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고 그 방향에서 사회적인 위치를 설정하고 언행한 자들이었다. 첫째, 소설 속의 이와 유태림은 반공주의의 태도를 지니고서 식민지 학병의 기억을재구성함으로써 해방공간에서 자신들이 우익세력의 쪽임을 분명히 하고자 했다. 공산주의 교양회 장소 대여 건에서 좌익세력을 반민족적인 행위를 하는 자로 여기거나, 좌익세력에서 말하는 민족 희생자가 아니라 자본주의적인 근대가 지향하는 자유가 없는노예로 스스로를 바라보는 반공주의의 태도를 지녔다. 둘째, 이와 유태림은 해방공간에서 좌익세력과 일정한 거리두기를 하면서도 우익세력 내의 입장․계열들이 지향하는...
[학위논문] 소련의 對북한 점령정책에 대한 연구 : 1945. 8. - 1948
...예가 북한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철군당시 북한에서는 친소정부와 친소 지도부의 형성 등 정치부문의 민주화는 완성된 반면, 경제적 민주화는 진행중에 있었다. 그럼에도 소련이 철군을 주도하고 점령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과 일본, 그리고 남한에 대응할 수 있는 친소국가 북한을 형성하였기 때문이다. 북한의 사회주의화는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었고, 소련은 친소정부가 향후 경제적 민주화를 예정대로 수행하리라 자신하였다. 반면, 남한에서 우익세력의 정국주도와 일본의 미국영향력 편입 등 주변상황으로 북한은 일본의 전략적 대안으로 부상하였다. 이에 소련은 대외적으로 북한이 친소국가임을 보다 강조할 필요가 있었고 그 결과 북한에서 친소국가를 수립한 점령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학술논문] 1948년의 남북협상에 관한 연구
...정당ㆍ사회단체 대표자회의에 남한의 정당과 사회단체 대표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다양한 정치공작을 전개했다. 특히 김구와 김규식을 끌어들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전개했다. 김구와 김규식은 김일성의 그러한 공작에 말려들어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협상에 참여했다. 북한주둔 소련군 지휘관들과 김일성은 평양회의의 진행에 관한 모든 사항을 사전에 일방적으로 결정해 놓았다. 남한주둔 미군과 남한의 우익세력은 평양회의를 방해하지 않았다. 평양회의는 소련군과 김일성이 사전에 계획한 대로 진행되었고, 남한 참여자들과 북한 참여자들 간의 협상은 없었다. 그 회의는 소련과 김일성이 계획해 놓은 결의들만 채택했으며, 그 결의들의 내용은 남한 총선 저지를 위한 전 민족적 투쟁을 촉구하고, 북한의 한반도 공산화통일 의지를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학술논문] 해방공간과 이념적 선택의 도상학
해방공간은 서로 다른 지배 체제와 권력의지의 배타적 대립과 충돌의 혼란상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해방공간은 얄타회담(1945,2)에서부터 가시화된 미, 소 군정에 입각한 분단을 기반으로 하면서 좌익, 우익, 중도 좌익, 중도 우익 세력이 서로 혼전을 벌인다. 특히, 이들은 친일파 처단, 토지제도 개혁, 모스크바 3상회의 이후 신탁과 반탁, 정부수립 등을 두고 견해 차이를 보이면서 정국의 혼란을 증폭시킨다. 이념적 반목과 대립의 혼전이 심할수록 현실 속(時)에서 “진리”(道)의 구현을 견지하는 시중지도(時中之道)의 길 찾기는 더욱 중요하고도 어렵다. 설정식의 해방 공간에서의 첫 번째 이념 선택은 우익진영에 합류하는 것이었다. 그는 미군정청 고위관리로 나아간다. 그러나 미군정의 제국주의적 본성에...
[학술논문] 대한독립촉성국민회와 기독교
독촉국민회는 이승만과 김구가 연합하여 1946년 2월에 지방우익세력을조직하려고 만들었던 연합조직이었다. 초기에는 오하영과 김구가 중심이되어 조직을 이끌었으나, 이승만은 지방 조직을 확산시킨 남부지방 순회여행 후 1946년 6월에 열린 2차 전국대회에서 중앙조직을 장악하였다. 이 조직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신익회의 정치공작대 세력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한 요인이었다. 그는 6월 29일에 민족통일총본부를 조직하였고, 7월에이 조직에 애국단체 총연합회를 통합시켰다. 이러한 세력 확장을 이룬 후에 독립촉성국민회의 운영에서 드러난 난맥상을 해결하기 위해 1946년 9 월 7일에 제3차 전국대회를 열었는데, 임원진에 임정세력이 상당히 참여했으나, 중앙위원조직은 이승만이 확실하게 장악하였다. 이승만은 1946년 말에 단독정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