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한국전쟁기 유엔한국묘지(적군묘지)의 조성과 의미
이 글은 한국전쟁기 적군 묘지의 조성 배경과 실체를 제한적인 자료를 토대로 살펴본 것이다. 요약하면, 적군 묘지의 조성은 표면적으로 국제 인도법인 제네바협약에 따른 것이었다. 미군은 제네바협약의 체약국이 아니었지만, 참전과 동시에 곧바로 승인했다. 이 같은 즉각적인 조치는 적진에 있는 미군 전사자의 수습과 송환을 위한 영현관리 때문이었다. 따라서 미군의 영현관리가 어느 정도 체계화되는 1950년 9월 전후한 시기에 비로소 미군 묘지의 일부 구역에 최초로 적군 유해가 매장되기 시작했다. 나아가 낙동강 방어선의 돌파, 인천상륙작전, 그리고 서울 수복이라는 일련의 전투 과정에서 대규모의 적군 포로가 발생해 부산에는 약 14만 명을 수용하는 포로수용소들이 운영되는 가운데 독립적인 제2 적군 묘지가 1950년 12월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