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북한, 남북 화해 노래 '반갑습니다' 금지"
북한에서 남북 화해를 상징하는 노래로 유명한 '반갑습니다'의 공연이 금지됐다고 일본 매체인 교도통신이 29일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매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국을 주적으로 규정하고서 (이 노래가) 공연 무대에서 제외됐다"며 "북한 여성들이 일하는 중국 내 북한 식당에서도 이 곡이 공연되지 않게 됐다"고 전했다.
[뉴스] 북한, 유엔총회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제기…일본 “근거 없는 주장”
여성 인권을 주제로 한 유엔총회 회의에서 북한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며 일본을 비난했습니다. 일본은 근거 없는 주장이라며 일축했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정치/군사]
...전쟁이었다. 이러한 항미원조의 특수성으로 인해, 전쟁의 비극을 극대화하고 전투원 인민지원군의 전의를 고무하고 격려하는 ‘타자’의 역할, 즉 전쟁의 수난자는 ‘중국/여성’이 아닌 ‘북한/여성’이 담당했다. 이에 따라 항미원조 문예 속 북한은 대부분 유일한 ‘보호자/남성’인 중국 지원군과 그들의 보호 아래 살아가는 북한 여성과 아동으로 묘사되었고, 인민군을 포함한 북한 남성은 서사에서 아예 삭제되거나 축소되었다. 이런 특징은 전 인민의 참전 지지와 동원이 절실했던 전쟁 시기 문예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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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남북관계]
...땅에서 피스메이커가 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믿는다.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하고 졸업 후엔 노동운동과 빈민운동에 소극적으로 동참했다. 하지만 치열한 노동 현장에서 자신은 너무나 무력했다고 고백한다. 미련 없이 노동 현장을 떠나 실력에 맞는 방식을 찾기로 했고, 이후 대학원 진학과 결혼, 미국 풀러신학교 유학을 마취고 귀국했다. 그즈음 중국 거주 탈북 여성들의 처참한 상황을 알게 됐고, 이들을 위 한 피난처 제공 활동에 참여하게 됐다.
그러면서 이 땅 한반도에서 피스메이커가 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하고, NGO 활동을 하고, 북한학 박사학위도 땄다. 그 과정에서 저자가 온몸으로 겪은 남한사회의 ‘반공 이데올로기’는 처참했다. 통일을 위해서라면 총칼을 써도 된다는 흡수통일의 주장은...
[경제/과학]
...독일의 사회적 협동조합인 ‘자수성가 협동조합(HausGemacht eG)’을 통해 독일의 소외된 여성들이 어떻게 자립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김창진 교수(성공회대학교 사회적경제대학원장)는 기존 사회주의 경제체제 전환국인 소련-러시아, 동독, 벨라루시, 쿠바의 협동조합 경험이 갖는 의의와 한계를 살펴보고, 북한에 사회연대경제 모델을 적용하는 것이 왜 필요하고 중요한지를 설명했다. 더 나아가 북한에 사회연대경제 모델, 특히 협동조합을 중요한 수단으로 도입할 때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하는지를 제시했다.
이찬우 교수(일본 테이쿄대학교)는 1940년대 중반 이후 오늘날까지 평양을 중심으로 협동조합이 어떻게 형성 및 변화되어 왔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정치/군사]
...경험을 하기도 한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이 책은 남성성이 실체가 아니라 규범임을 증명한다. 여성에 대한 폭력, 군사력 등 공사 영역에 걸쳐 세계 최고의 무장 국가인 한국사회의 필독서”라며 강력추천했고,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운영위원장은 “전범들의 정신분석에서 출발해 일본 사회 정신분석에까지 나아간다. 충격적인 동시에 감동적이고 희망의 울림이 있는 역작”이라고 격찬했다. 『전쟁과 사회』 『대한민국은 왜?』 등의 저서를 통해 한국 현대사를 조명해온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과거 저자와 만나 대담할 때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에 관해 이야기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어쩌면 죄책 없는 일본보다 죄책 없는 한국이 훨씬 더 중병에 걸려 있는지도...
[정치/군사]
...종군기자 중에서 유일한 여성이었던 마거리트 히긴스는 전쟁 초기 6개월간,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며, 한강 인도교 폭파ㆍ평택과 천안전투ㆍ대전전투ㆍ낙동강전투ㆍ인천상륙작전과 서울수복ㆍ장진호전투 등을 직접 목격한 산증인이었다.
특히, 전쟁 발발 나흘 후인 1950년 6월 29일 수원 비행장에서 히긴스는 전쟁상황 시찰 차 방한 중인 맥아더 장군을 만난다. 당시 둘이 만나는 사진은 충격적이다. 30세의 히긴스는 오른손을 허리에 얹고, 70세의 맥아더는 오른손으로 히긴스의 왼팔을 가볍게 잡고 말을 건네고 있다. 1945년 8월 일본 패망 후 맥아더 연합군 최고사령관 앞에서 감히 그런 포스를 취한 사람은 없었다. 이는 맥아더가 양손을 허리에 얹고, 일본 국왕은 차렷 자세로 선 사진과...
[학술논문] 동아시아 여성평화운동과 일본 여성의 횡단정치학
...민족/국가의 권력관계에서 성별화된 여성 주체가 민족/국가의 정체성의 정치학을 넘어서는 것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특히 일본 여성에 초점을 맞추면, 일본 여성은 여성의 정체성, 피해자/가해자 정체성, 주권자 정체성 등을 지닌 다중적 주체로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한반도 통일문제 등에 관철되어 있는 식민주의를 직시할 수 있었지만, 식민지지배, 침략전쟁, 전후책임 등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온전하게 인식하지 못한 미완의 탈식민주의적 정치학에 머물렀다. 그 뿐만 아니라 일본 여성은 식민주의를 직시하는 것조차 도의적 책임론을 통한 일본의 도덕성 회복, 이를 통한 아시아에서의 신뢰회복으로 탈냉전 후 새롭게 재편되는 동아시아 질서의 창출에 일본이 공헌하기를 바람으로써 일본의 강성대국화를 추구하는 민족주의적...
[학술논문] 구식민자의 젠더화된 초상 -두 개의 전후(戰後), 젠더 정치를 통한 식민 기억의 (재)구성-
...부재하는 자여야만 했던 것이다. 탈식민지화와 냉전질서의 구도 속에서 잔류 일본인에 대한 재현은 한편으로는 식민․해방의 경험을 어떻게 기억(/기념)할 것인가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후식민의 상황에서 일본과의 관계를 어떤 방식으로 구축․상상할 것인가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었다. 이 글에서는 기억․재현의 대상으로서 잔류 일본인이 ‘여성’으로 한정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식민 기억의 (재)구성을 둘러싼 젠더 정치의 함의를 살펴보았다. 특히, 잔류 일본인에 대한 기억이 한국전쟁 이후에는 공산주의 치하 일본인 여성의 수난사로 구성된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이를 통해 반일주의와 반공주의가 착종된 가운데 식민 기억의 (재)구성과 한․일 관계에 대한 상상이 이루어졌던 맥락을 살펴보았다.
[학술논문] 언론에 재현된 ‘동아시아’ 담론의 특성에 관한 연구 - <조선일보>와 <경향신문> 기획연재를 중심으로
...<조선일보>와 <경향신문>의 관련 칼럼을 분석한 결과 두 신문모두 동아시아에 대한 개념 정립 및 역사성 인식이 부족하였으며 그 내용에 있어서도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먼저 <조선일보>의 동아시아는 미국, 중국, 일본,북한의 대립 및 갈등이 일어나는 냉전적 공간인 ‘동북아’로 인식되었고 역사, 안보, 경제라는 거시적인 관점이 중심이었다. <경향신문>은 이와 달리 동아시아의역사성은 물론 다문화, 노동, 환경, 여성 등 다양한 이슈들을 함께 제시함으로써동아시아라는 공간을 상생과 공존의 공간으로 재현하고 있었다. 두 신문에서 드러나는 차이는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동아시아라는 공간을 담아낼 개념 및 담론자체의 모호성과 관련이 깊다고 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학술논문] 사할린한인 귀환문제에 대한 전후 일본정부의 대응
패전 후 일본정부는 외교권이 박탈됨에 따라 구 일본제국 내 일본인·비일본인의 송환은 미소 점령당국이 담당하게 되었다. 이에 소련이 일체의 외교교섭을 거부한 가운데 일본정부는 연합국총사령부를 통해 1946년 12월 ‘미소간 협정’을 이끌어 냄으로써 억류 일본인의 국내 귀환을 실현시켰다. 그리고 외교권을 되찾은 1950년대 중반에는 ‘일소공동선언’을 통해 잔류 포로, 한인과 결혼한 일본인 여성 및 가족의 귀환이 실현됨으로써 해묵은 억류자 귀환문제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나 상기 2번의 귀환교섭 과정에서 한인의 귀환은 여전히 미제 사안으로 남게 되었다. 이것은 국적 등의 명분으로 포장된 혈통에 따른 차별적인 귀환교섭, 그리고 재일동포와 사할린 한인 등 1952년...
[학술논문] 국민화의 문법과 여성문학, 그 불/일치의 궤적 - 임순득 다시 읽기
... 것은 아니었으며 제국 일본의 국민 형성 원리와도 합치되지 않는 자리에 있었음을 살펴보았다. 또한 해방 이후 북한의 민족국가 성립 과정 속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창작을 하고자 했음에도, 여성적인 시각이 문제시되는 한편, 남성 작가에 의해 그것이 교정(다시 쓰기)되는 양상을 분석하였다. 임순득 문학은 시종일관 국가주의적 젠더정치의 좌장 안으로 소환되었으나 오히려 국가의 경계나 외부를 환기하였다. 이에 대한 당대 문단의 반응과 후대의 연구 경향은 남북한의 민족문학사가 특정한 여성성을 선택하고 배제하는 가운데 구성된 것이었음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