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텍스트 개작을 통해 본 작가의 분단의식 변모과정 -황석영의 <한씨연대기>를 중심으로-
<한씨연대기>는 황석영의 초기 분단의식이 집약된 소설로 이후 분단소설의 원형이 되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반공주의 집필환경에서 월남민의 시각이 반영된 이 작품은 작가의 초기작으로 그 한계역시 노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작가는 이 작품을 개작하거나 ‘다시 쓰기’했다고 할 수 있다. 1974년 단행본을 펴내면서 북한사회를 부정적으로 드러낸 일련의 삽화를 삭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1989년 방북 직후 북한내부의 시각을 반영하여 <한씨연대기>의 속편에 해당하는 <흐르지 않는 강>을 발표한다. 이 소설에서는 <한씨연대기>에서 한영덕이 북에서 체험했던 비극적인 사건들이 부인되고, 한영덕은 북의 ‘민주주의’
[학술논문] 1950년대 신문소설에 나타난 ‘전쟁’과 ‘반공이데올로기’ 형상화 방식 연구 -김송 <永遠히 사는 것>, 박영준 <愛情의 溪谷>, 홍성유 ,<悲劇은 없다>를 중심으로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는 김송 永遠히사는 것(<대구매일신문> 1951. 9.1~12.8 연재), 박영준 愛情의 溪谷(<대구매일신문> 1952, 3.1~7.17 연재), 홍성유 悲劇은 없다(<한국일보> 1957. 5.7~12.2 연재)를 중심으로 전쟁 담론과 반공이데올로기의 지배이데올로기화 과정을 밝히고, 어떻게 작가의식과 연동하여 형상화되는 지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신문소설의 경우 국가권력과 결탁한 신문기업의 성격상 지배이데올로기의 직접적인 영향관계 속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란 특수상황과 신문이라는 매체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전쟁을 북의 도발로 규정한 이승만 정권은 공론 장으로서 신문을 활용하여 전쟁에 관한 담론형성을 조정하였다. 이 세 작품에 드러난...
[학술논문] 박조열 희곡의 ‘동물’과 생태적 감수성
본 논문은 박조열 희곡에 등장하는 동물을 통해 탈인간중심주의의 관점과 그 기원으로서 작가의 생태적 감수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박조열의 희곡은 한국 현대사의 구체적 현실이었던 분단 문제와 정치 권력의 문제를 대면해서 드러낸다는 점에서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소재와 작가의 전기적 삶이 직접적으로 연관되면서 작품 해석에 일정 정도 답보상태를 가져왔다. 이에 작가의식의 새로운 면모를 살피고자 다른 한국작가의 희곡에는 나타나지 않는 동물 표현에 주목하고자 한다. 첫 작품 「관광지대」에서 ‘소’는 자연스러운 본성을 가진 존재로 그려지면서 남북한협상 담당자들의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태도를 풍자한다. 이 때 소는 북측 대표나농부의 말을 이해하고 의사소통하는 존재로 나온다. 이러한 동물의 특성은 「흰둥이의방문」에서는...
[학술논문] 북한식 ‘미술가’ 개념의 탄생: 전전(戰前) 미술의 대중화, 인민화 문제를 중심으로
...역할’을 확인하고 “노동계급을 정치경제문화의 창조에 있어서 참된 주인공이자 주동력으로” 고양시키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대중성,’ ‘인민성’이 당시 북한문예비평의 핵심 테제로 등장한 이유다. 이것은 한편으로 프롤레타리아 출신 작가의 등장을 고무하는 방향으로, 다른 한편으로 기성 작가들의 의식 개조와 태도변화를 촉구하는 방향으로 전개됐다. 당시 북한미술은 ‘대중성,’ ‘인민성’의 기치 하에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규범적 코드에 입각해 작업하는 비전문 미술신인들을 적극 양성했다. 평양미술대학에서 졸업생이 배출되기 전부터 북한미술계에는 미술연구소와 미술제작소 등을 경유한 다수의 비전문 신인미술가가 배출되었고...
[학술논문] 김영석의 전쟁소설 고찰 -박영준 전쟁소설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여성은 남성을 돕는 보조적인 위치에 머물기도 하지만, <이 청년을 사랑하라>에서는 남성과 대등한 위치에 서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박영준의 소설에서 여성은 보조적이거나 때로는 열등한 젠더적 위치에 머물고 만다. 여성 형상화에 있어서는김영석의 전쟁소설이 상대적인 진보성을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김영석의 전쟁소설에서 가장이색적인 점은 남한의 혁명 역량을 계속해서 등장시킨다는 점이다. 이것은 북한군 나아가 북한이 결코 하나의 정치세력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 그 중에는 남한의 혁명 역량도중요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는 작가의 의식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전시까지만 하더라도 남로당으로 대표되는 남한혁명세력이 당당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는 하나의 증거라고 볼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