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불후의 고전적 명작’의 장르적 교섭과 확장
...계승하고자함에서 비롯되었다. ‘불후의 고전적 명작’은 어버이 수령 즉 아버지의 소유가 됨으로써 북한에서 예술성과는 관계없이 침범해서는 안 되는 신성하고도 거룩한 작품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호출된 ‘불후의 고전적 명작’은 대표필자인 김일성을 중심으로 영화, 가극, 소설 등으로 장르별로 재탄생되며 장르적 확장을 통해 다양한 창작자들을 생산해 낸다. ‘불후의 고전적 명작’은 구전되던 이야기를 모티프로한 집체창작물이지만 김일성을 1차 아이디어 제공 또는 부분 창작에 참여를 통해 원작에 대한 대표 필자로 호명하고 이후 사후적으로 2차 장르화를 통해 극작가, 연출가, 작가 등으로 하여금 미적 표현을 책임지게 하는 방식으로 장르의 확장을 꾀함으로써 원작에 예술적 질을...
[학술논문] 불후의 고전적명작 가요의 음악적 지향
북한에서 불후의 고전적명작 가요는 다른 장르의 것과는 달리 김일성과 김정일이 창작한 노래가 섞여 있다. 이 노래는 외적으로 절가형식을 갖고 대체로 두도막형식을 취하고 있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러나 창작자가 다른 두 부류의 음악이 존재하며, 창작 시기가 다르고, 사용하고 있는 음계의 양상도 다르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가요는 북한 가요의 모범이 되는 작품이며, 모든 창작가들이 배우고 견지해야 할 작품이다. 김정일은 그의 저서인 『음악예술론』에서 명곡의 조건으로 사상성과 함께 민족성, 인민성, 통속성을 말하면서 그 예로 불후의 고전적명작 가요를 제시하였다. 즉, 불후의 고전적명작 가요는 가사에서 사상성이 담보되어 있으며, 음악형식은 민족성, 인민성, 통속성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음악적인 면에서 볼 때 민족성은 김일성...
[학술논문] 박정희 시대의 ‘민족’ 담론과 이만희 영화의 ‘민족’ 표상
...작품인 <7인의 여포로>에서 북한군을 동일 ‘민족’의 범주 안에서 형상화했다는 이유로 이만희는 검찰에 의해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되었고 영화는 상영 금지 처분까지 받았다. 국가가 영화의 상영을 위한 검열 뿐 아니라 제작 허가 및 영화 제작사의 설립 허가에까지 관여했던 1960~70년대에 이 사건은 이만희를 비롯해 수많은 창작자들에게 예술적 상상력을 제한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서 만들어진 이만희의 다른 작품에서 다루어졌던 국군과 이 작품에서 국군 묘사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박정희 정권과 이만희의 민족 표상이 늘 상충되는 것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 북한군에 대한 형상화를 최소화하거나 삭제하고 ‘적(敵)’으로서...
[학술논문] 남북 저작물 교류에 대한 협력방안 연구‒ 저작권 집중관리기구 설립방안을 중심으로 ‒
...상호 협력방안은 남북 저작권사업이 현재 저작권교류 관리 사업에서부터, 통일 이후에 법체계가 안정화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저작권관리를 담당하여야 하므로 협력방안에 대한 현실에 적합한 구체적인 논의의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이렇게 현실에 적합한 협력방안에 대해서 논의하기 위하여 대부분 창작자 개인에게 귀속되는 저작권을 관리·보호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남측의 저작권 집중관리제도와, 창작자뿐만 아니라 창작자가 속해있는 기관에게도 귀속되는 저작권을 관리·감독하는 북측의 저작권사무국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에 따라 양측의 체계에 모두 적합한 남북 저작물 교류에 대한 남북 단일의 구체적인 협력방안에 대하여 모색해 본다. 이렇게 살펴본 남북의 저작권 현 체제를 최대한 바꾸지 않는 선에서 남북...
[학술논문] 잡지 『조선문학』의 합평회를 통해 본 전쟁기 북한희곡의 검열 연구
...부분을 보완하려 한다. 해방 후 『조선문학』에 연재됐던 합평회는 좌담회의 형식을 빌린 문학 검열 방식으로, 작품의 창작자를 합평회장에 동석하게 한 다음 궁극적으로 자기비판을 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연극 분야의 경우 합평회는 참가자들의 활발한 상호비판, 자기비판이 전개될 수 있었던 장(場)으로, 상대적으로 평론이 빈곤했던 연극의 경우 그 중요성은 더욱 중시됐다. 주지할 점은 작가의 자기비판을 유도하는 합평회장에서 여러 주체들의 발화가 뒤섞임에 따라 합평회장에서 제시된 개선책들이 서로 충돌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김일성의 전쟁 중 문학예술에 대한 강령과 화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합평회는 창작자가 의무적으로 참석해 “토론에서 나온 의견들을 대체로 접수하겠다”는 수순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