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1945~1946년 조선공산당의 선전 활동: 『해방일보』를 중심으로
...‘강철’의 연재 등을 통해 중앙당에 대한 당원들의 복종과 헌신이 요구되었다. 이는 경성콤그룹 중심의 당 지도부가 반중앙파의 도전에 맞서 자신들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당 조직의 통일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당내 갈등은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한편, 『해방일보』는 조공의 통일전선 전략을 반영해 한민당을 ‘반동’으로 규정하면서도 이승만·김구 등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며 이들과의 제휴 가능성을 모색했다. 1945년 말 신탁통치 파동을 계기로 『해방일보』를 통한 조선공산당의 선전 활동은 전면 수정되었다. 1946년 초부터 『해방일보』는 식량난과 테러 문제를 집중 보도하며 우익에 대한 비판을 강화했고, 이는 당시 남한 사회의...
[학술논문] 미군정 초기 정치 대립과갈등 구조의 중층성 -1945년 말 한국민주당 주도세력의정계 개편 운동을 중심으로-
...중심으로 한 한민당 주도세력의 1945년 말 정계개편운동의 배경과 양상, 특징과 성격을 살펴보는 것을 통해 미군정 초기 정치 대립과 갈등 구조의 중층성을 해명하는 연구이다. 이승만과 임정세력이 모두 귀국한 1945년 말 시점에서 미군정, 이승만, 임정, 한민당 주도세력, 조선공산당을 비롯한 좌익 세력들이 어떠한 대립과 갈등 구조를 중층적으로 맺고 있었는가를 살펴보았다. 한민당 주도세력은 1945년 12월 들어 민족문제를 전면적으로 제기하면서 남한 신국가 건설을 위한 정계개편운동을 광범하게 전개하였다. 이러한 운동이 제기된 직접적 배경은 미국무부 빈센트 극동국장의 한반도 신탁통치 발언으로 드러난 미 국무부의 한반도 신탁통치 방침에 대한 우려였다. 그리고 소련 점령하의 북한 정세도 영향을 미쳤다. 한민당 주도세력은...
[학술논문] 芹村 白寬洙의 정치 이념
...상황에서 단정 문제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으며, 백관수 한 개인의 결심으로 어찌 되거나 바뀔 상황이 아니었다. 백관수를 비롯한 남한 정치 요인들의 납북은 이미 북한의 개전 당시에 입안된 용의주도한 계산에 따라 진행된 것이었다. 북한 지휘부는 서울을 점령하고 그들을 볼모로 삼아 남한을 항복시킬 수 있다고 오판한 데에서 전쟁의 비극은 잉태되었다. 분단 70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에서 본다면 역사는 크게 바뀐 것이 없다. 그 당시 건국준비위원회(建準)이나 민주주의민족전선(民戰)의 노선이나 투쟁 방식과 한민당의 노선이나 지지 기반은 지금에 와서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역사에서 70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역사는 진보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회의를 느낄 수도 있다.
[학술논문] 해방직후 한반도에서 좌우협력은 왜 실패하였는가?
...성과를 거둔 사례이다. 그러나 이후 좌우협력은 여러 요인에 의해 실패로 끝났다. 건국준비위원회가 인민공화국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좌우협력은 결렬되었다. 신탁통치문제로 북한의 공산주의세력과 민족주의세력의 연합은 파기되었다. 4당코뮤니케 합의에도 불구하고 합의문을 둘러싸고 정당내부의 이견으로 4당회담과 5당회담은 결렬되었다. 어렵게 합의한 좌우합작 7원칙도 한민당과 공산당의 반대로 좌초되었다. 이 글은 해방직후 한반도에서 시도되고 일정한 성과로 이어졌던 4가지 사례가 어떠한 요인에 의해 실패로 귀결되었는지를 고찰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결국 좌우협력과정에서 공동의 목표에 대한 이견, 권력공유 원칙보다는 주도권을 둘러싼 권력경쟁과 독점, 이념적 차이와 양극적인 정당경쟁 등이 좌우협력의 가능성을 축소시켰고, 좌우대립을...
[학술논문] 월북 이후 최익한의 학문과 집필활동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국학의 다양한 분야에서 집필 활동을 하였다. 당시 많은 학자가 월북하였기에 북한의 학문적 수준은 상당히 높았다. 그도 자신의 1930년대 작업을 이어받고, 더하여 새로운 분야로도 활동 영역을 넓혀나갔다.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운동으로 일관한 최익한은 남북연석회의를 즈음하여 미국의 ‘침략주의’와 국내의 이승만・한민당 세력에 저항하여 북에 머물렀다. 그러나 북한에 머무는 순간부터 북쪽 체제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역할은 정치활동 보다는 강의와 집필 쪽으로 나아갔다. 김일성종합대학에 근무하면서 강의와 집필을 함께할 수 있었다. 최익한은 1948년에서 1957년까지 약 10년 간 국학 분야에서 여러 저서와 논문을 작성하였다. 그는 김일성종합대학에 몸담았으나 역사학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