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1948년의 남북협상에 관한 연구
1947년 10월 초 이후, 북한의 김일성은 남북한의 정당과 사회단체 대표자들의 회의(남북협상)를 개최할 것을 거듭 제의했다. 김일성이 그런 제의를 한 목적은 유엔이 한국문제를 토의ㆍ결의하는 것을 저지하고, 남한에서 정부수립을 위한 총선이 실시되는 것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김일성은 남북한 정당ㆍ사회단체 대표자회의에 남한의 정당과 사회단체 대표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다양한 정치공작을 전개했다. 특히 김구와 김규식을 끌어들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전개했다. 김구와 김규식은 김일성의 그러한 공작에 말려들어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협상에 참여했다. 북한주둔 소련군 지휘관들과 김일성은 평양회의의 진행에 관한 모든 사항을 사전에 일방적으로 결정해 놓았다. 남한주둔 미군과 남한의 우익세력은 평양회의를 방해하지 않았다. 평양회의는
[학술논문] 남북의 평화 협상게임과 최적 국방투자 분석
...유인책으로서 금전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대북 협상력을 높이는 국방 안보 외교력을 키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는 국방 안보 외교력을 키우면 전쟁 억제력이 높아져;북한의 전쟁 선택에 대한 기대 보상을 줄일 뿐만 아니라 평화협상게임의 협상력을 높여 협상 금액을 낮출 수 있어;국방에 대한 적절한 규모의 투자에 의해서 내쉬균형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국방부문 뿐만 아니라 비국방부문의 효율성도 매우 중요하다. 완벽한 평화협상 부재 시에 한국의 비국방부문의 효율성이 높아지면;이 부문의 투자가 증가하여 북한보다 한국의 소득이 더 증가하며;따라서 국방부문 투자도 더 증가한다. 이에 의해 승전할 확률이 높아져서 비국방부문의 투자는 더욱 증가하여 국방부문 투자도 더 증가하는 양의 되먹임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