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李대통령 "남북 대화채널부터 신속히 복구…대화·협력 재개"
이재명 대통령은 6·15 남북공동선언 25주년인 15일 "군사적 긴장 완화와 평화로운 분위기 조성을 위해 중단된 남북 대화 채널부터 신속히 복구하며 위기관리 체계를 복원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뉴스] "통미봉남 두려워하지 말아야"…정세현 前장관, 새 정부에 조언
"통미봉남(通美封南)을 두려워하지 말고, 워싱턴으로 돌아서 평양으로 가도 좋다는 열린 자세로 이재명 정부가 남북 평화 협력 관계를 복원해주기를 바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를 이끌었던 정세현 전 장관은 13일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25주년 학술회의에서 이같이 말했다.
[뉴스] 6·15 공동선언 기념식 12일 개최…통일부 장관 3년째 불참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남북관계의 주요 이정표로 꼽히는 6·15 남북공동선언(이하 6·15 공동선언) 기념식에 주무 부처인 통일부 장관이 3년 연속으로 불참할 것으로 보인다.
11일 통일부와 김대중평화센터에 따르면 통일부 김영호 장관과 김수경 차관은 12일 열리는 '6·15 남북정상회담 25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는다.
[뉴스] [단독]北, 남북철도 아예 못쓰게 동해선 선로 침목 뽑았다
북한이 최근 금강산으로 이어지는 동해선 철로 철거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이 철로는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을 계기로 연결돼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6년 실제 철로가 놓였다.
[통일/남북관계]
...살고 통일하자는 것은 1972년 7.4남북공동선언에서 시작해 수 차례에 걸쳐 정상들 사이에서도 대화가 오가고 선언문도 만들어지고 했지만, 전쟁이 끝난 후 70년이 지나도 여전히 진전이 없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남과 북이 각각 가지고 있는 기득권의 뿌리 때문입니다. 이 기득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절대로 평화와 통일이 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남과 북이 기존의 단체나 개인이 누려온 기득권을 현 체제 안에서 추구할 수 있게 하는 통일 모델을 찾아야 됩니다. 이것이 다름 아닌 김대중-김정일 남북정상이 최초로 만나 합의한 2000년 6.15 선언입니다.
우리가 체제와 이념에 차이가 있어도 민족이 중심이 되어 통일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6.15의 정신이며, 기득권의 뿌리가 깊은 현 상황에서...
[통일/남북관계]
...이데올로기의 기저를 이루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 밖에도 북한에서 마르크스주의마저 포기하고 김일성 주체사상에 입각한 3대 세습 체제가 구축된 것을 통렬하게 비판한 다. 아울러 남한이 채택한 자본주의 역시 극심한 양극화로 인 해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한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두 번째 글, 「KOREA 이데올로기는 공포다」라는 논문에서는 분단 체제가 고착화 되는 과정에서 남북의 위정자와 지배계급 이 공포 이데올로기로 확산시켰음을 지적하고 비판한다. 남북 한은 6.15 남북 공동선언으로 남북 평화 통일 대원칙을 세계만 방에 공표했음을 재확인하고 있다. 민족 통일은 오로지 남북의 평화공존을 전제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대원칙을 강조하는 것이다.
[통일/남북관계]
‘동족 개념에 기반한 감상적 통일론과 경제교류는 출발점부터 잘못됐다!’ 지난 6월 15일 평양에서는 6,15 남북공동선언 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성대히 열렸다. 이제 6월은 남북한 정상이 한자리에 모여 반세기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고 민족통일의 길로 나아간 시발점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올해 6월은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55주년이 되는 비극의 달이기도 하다.
55년 전, 북한에 대한 정확한 정보 없이 막연한 자신감과 희망만을 가졌던 우리 정부는 갑작스런 전쟁에 무너져 내렸고 결국 우리 민족은 한반도가 초토화되는 쓰라린 아픔을 겪어야 한다. 반세기가 흐른 지금, 한반도는 다시 한번 위기를 맞고 있다. 점증하는 북핵문제와 북한인권문제 등으로 남북한 당사자는 물론...
[학술논문] 불교에서 본 남북한의 평화 소통에 대한 연구
... 지난 세월 동안 분단의 비극적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많은 노력들이 있었다. 1972년의 7·4남북공동성명을 비롯하여 여러 의미 있는 성과들이 발표되었는데, 그 정점에 있는 것이 2000년의 6·15남북공동선언이다. 이를통해 그동안 남북 사이의 뿌리 깊은 장애물이었던 불신과 반목, 적대적 대결 관계에서 신뢰와 화해, 호혜적 상호 협력 관계로 전환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남북의 최고 지도자들에 의해 합의된 이 통일 방안은 자주화, 민주화,평화통일의 3대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 즉,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그리고 무력을 행사하지 않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념의 차이를 극복하고 통일을 실현하자는 것이다. 이는 곧 신라시대 이래 전해져온 호국삼부경인...
[학술논문] 남북기본합의서: 의의와 평가
1991년 12월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채택되었다. 이 논문은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된 배경과 그 이후의 상황 진전 및 그 주요 내용을 검토한 바탕위에서 남북기본합의서의 의의를 재조명하려는 것이다.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에 대해 남북한의 최고책임자 모두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그 이행을 다짐했으나, 북한이 팀 스피리트 훈련을 이유로 그 이행·실천을 거부함으로써 본 궤도에 진입조차 하지 못하였다. 남북기본합의서의 의의는 첫째, 통일을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전제하고,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공존, 나아가 통일을 향한 기본틀을 제시하였다는 점, 둘째, 제3자의 개입·중재·조정없이 남북한 당국이 독자적인 공식
[학술논문] 남북기본합의서에 대한 북한의 입장
...추진함으로써 김정일 후계체제의 안정화를 도모하고자 한 것이었다. 여기에 더해 남북기본합의서 내용이 당시 남북관계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정치적 선언’에 가까운 것이었기에, 북한에서 남북기본합의서는 퇴락의 길을 걷고 있다. 북한은 1991년 체결 당시에는 남북기본합의서를 ‘조국통일강령’으로 칭송하더니, 북핵문제가 불거진 1992년 중반경부터 북한의 통일정책에서 ‘주변화’ 하였고,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에는 ‘형해화’ 하였다. 그리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에는 김정일이 직접 서명한 6.15공동선언에 남북기본합의서를 ‘흡수’시켜, 현재는 북한의 통일담론에서 남북기본합의서를 찾아보기가 힘든 상황이다.
[학술논문] 감옥서사에 나타난 ‘좌익 장기수’ 비교 연구
본 논문은 김하기의 중편 <미귀(未歸)>와 조정래의 장편 <인간 연습>에 나타난 ‘좌익 장기수’의 감옥서사를 비교한 것이다. 2000년 ‘6. 15 남북공동선언’ 이후에 북한 사회와 한국 사회에서는 ‘비전향 장기수 송환’ 문제가 화제가 되었다. 북한에서는 이 시기에 ‘비전향 장기수 주제 소설’이라 하여 비전향 장기수를 다룬 감옥서사가 집중적으로 창작된다. 한국 문단에서는 김하기의 『완전한 만남』이 출간되면서 대중에게 ‘비전향 장기수’들의 실상이 알려진다. 감옥서사는 분단체제의 희생양을 다룬 ‘비전향 장기수’ 외에도 ‘전향 장기수’를 들 수...
[학술논문] 북한의 4세대 전쟁 수행 전략과 대응방안
...정치적·사회적 붕괴를 추구하는 전략으로, 전선 및 전쟁과 평화의 구분이 모호하며 전투행위자의 식별과 적의 전략적 중심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북한은 1980년대 이전까지 단기 속전속결전략에 의한 전면전 승리에 주력하였으나, 탈냉전기에 접어든 이후에는 핵개발 및 대량살상무기를 증가시킴으로써 비대칭 전략에 치중하였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과 함께 남북화해와 협력시대가 개막된 이후 북한의 정치·군사전략은 4세대 전쟁양상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4세대 전쟁 수행전략을 분석해본 결과는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전략의 목표 면에서 심각한 경제난과 외교난을 겪고 있는 북한은 체제위협에서 벗어나는 것이 당면목표이지만 여전히 한반도 공산화 통일을 궁극적 목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