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김정은, 소련군 추모 해방탑 참배…"북러친선 더 강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조국해방의 날'로 부르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옛 소련군을 추모하는 해방탑을 찾아 헌화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조국해방 80돌에 즈음하여 8월 15일 해방탑을 찾으시였다"고 16일 보도했다.
[뉴스] 북한, '3대 세습' 우상화 행사로 광복 80주년 경축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북한이 김일성 주석을 '조국해방의 은인'으로 찬양하고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최고지도자를 우상화하는 행사를 조직해 광복 80주년 경축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있다.
항일투쟁을 정치적 정통성의 근거로 내세우는 북한이 8·15를 체제 선전과 내부 결속의 계기로 활용하는 모습이다.
[뉴스] [광복 80년] ③ 해방과 함께 찾아온 분단…여전히 먼 통일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한반도가 일제의 억압에서 벗어난 지 80년이 지났다.
1945년 8월 15일 정오. 일왕 히로히토가 라디오를 통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며 온 겨레는 그토록 갈망하던 광복을 맞았지만 해방의 기쁨은 찰나였다.
[뉴스] 북, 광복절 앞두고 항일투쟁 띄우기…"자력갱생 사상 원천"
북한은 8·15 광복절을 앞두고 항일혁명 선열의 투쟁 정신이 오늘날 자력갱생으로 계승되고 있다고 밝혔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9일 '혁명의 1세대들의 백절불굴의 투쟁정신을 따라배우자' 제목의 1면 기사에서 "항일혁명 선렬들의 백절불굴의 투쟁 정신은 우리 인민을 자력갱생의 투사들로 키우는 사상·정신적 원천"이라고 썼다.
[뉴스] 북, 김일성 항일투쟁 '백두산' 고리로 김정은에 충성 독려(종합)
북한이 8·15 광복 80주년을 앞두고 김일성 주석을 '항일의 전설적 영웅'이라 우상화하며 대를 이은 충성을 주문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일 '조국 해방의 위대한 은인, 만고 절세의 애국자를 우러러' 제하 2면 기사에서 "항일의 전설적 영웅, 만고절세의 애국자이신 위대한 수령님"이라고 김일성 찬양에 나섰다.
[지리/관광]
...우리 모습은 어떠할까를 그려 보자.
--- p.264
무엇보다 해방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장충단에 모여들고 있었다. 이들은 당시 전재 동포 또는 귀환 동포로 불렸다. 특히 해방 초기에 돌아오고 있는 동포들이 전재민(戰災民)으로 표현됐던 것은 이들이 자발적인 선택에 따라 이주한 것이 아니라 중일전쟁과 아시아·태평양전쟁 과정에 강제로 동원돼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던 전쟁 피해자, 일제 전시동원 체제의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들에 대한 도움이 필요하다는 정서가 지배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1945년 8월 31일, 조선재외전재동포구제회를 시작으로 수십 개에 이르는 구호단체들이 결성되고 조선건국준비위원회와 주요...
[사회/문화]
...달랐지만 해방은 모두의 일이었다
해방 80주년에 발견한 8.15의 새로운 의미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이 포츠담선언의 무조건수락을 선언하며 한반도는 해방을 맞이했다. 하지만 해방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에서 8.15를 맞이한 코리언들의 삶까지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해방 80주년인 2025년, 한반도라는 작은 렌즈의 프레임에서만 사고했던 8.15를 동아시아로 확장시켜 그 당시 해방을 맞이했던 코리언들의 삶을 되짚어 보고, 의례적으로 기념하는 ‘국경일 8.15’가 아니라 현재 코리언들의 삶에 풍부한 사유를 제공하는 8.15와 만난다.
이 책은 한ㆍ중ㆍ일의 역사 교과서에 기록된 8.15, 해방을 배경으로...
[사회/문화]
...발생한 문학자들끼리의 노선 갈등이었는가? 넷째, 1952년 12월 15일 조선로동당 제5차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이 박헌영 및 남로당 계열의 종파주의에 대해 비판한 이후 남로당 계열 문학자들이 숙청되거나 사형 당한 것은 순전히 정치적 대립의 부산물인가? 다섯째,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10월 13일 조선로동당 총정치국이 신설되고 1951년 3월 20일 이후 남로당 계열 문학자가 사상 전선에 중용된 것에 소련−구체적으로 스탈린−이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마지막, 해방 후 8년간 북한문학의 전개에서 김일성은 어떤 역할을 하였으며 전쟁 이후 북한문학 전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해방 후 8년간 북한문학의 형성과 전개는 임화가 국가건설기 문학자의 과제로 제시한...
[정치/군사]
1945년8월15일 일제로부터의 해방이 되고, 1948년8월15일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정부가 건국된 것과 6·25전쟁의 참상에 대해서 편향되고 비뚤어지고 심히 왜곡된 교육으로 인해 안보의 중요성이 결여된 세대가 이끌어갈 미래 자유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실로, 염려되지 않을 수가 없다.
6·25 전쟁은 우리 한국 민족사뿐 아니라 세계 역사까지 굽이지게 틀어 놓은 국제적인 대 환란이었다. 3년 1개월 2일(1950. 6. 25~1953. 7. 27)에 걸친 동족상잔의 비극과 동서양 대 진영의 투쟁을 돌아보면서 특히, 6·25 전쟁에 대해서 올바른 지식이 없는 동시대를 함께 사는 어린이, 청소년, 젊은이, 어른 세대에게 ‘역사적...
[통일/남북관계]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통일을
한평생 가슴에 품었던 지도자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기쁨으로 들뜬 조선 사람들이 독립운동을 이끈 그들의 지도자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감격과 환호 속에서 사람들이 외친 이름은 우리 민족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민중의 곁을 지켰던 지도자 ‘여운형’이었습니다.
여운형은 일제에 맞설 때는 태양처럼 뜨거운 사람이었지만, 헐벗고 굶주린 조선 사람들을 향해서는 봄날의 햇살처럼 따사로워 ‘해를 품은 지도자’로 불렸습니다. 1945년 당시 여운형은 ‘조선을 이끌어 갈 양심적인 지도자’, ‘최고의 혁명가’로...
[학술논문] 소련군의 대일전 참전과 러시아에서 본 광복의 의의 및 평가
...있다. 8.15 해방은 일본의 항복 결과이며, 미국에 의한 원폭 투하와 장기전으로 인한 일본 국력의 약화, 소련군의 참전이라는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였다. 한국의 해방이 연합국의 승리에 의해 이루어졌음에도 뒤이은 분단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이들을 ‘해방자’로 부르기는 어렵다. 그러나 러시아측은 소련군에 의한 8.15 해방의 논리를 지속적으로 견지해왔다. 시기별로 논조의 차이는 있다하더라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근본 논법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이 논리는 주체의 입장을 강조하는 현 북한의 주장과도 상이하다. 따라서 한반도의 해방에 대한 러시아측의 과도한 서술을 교정하고 서로 수용할 수 있는 방향에서 이를 재해석함으로써 양국이 공히 인정할 만한 ‘한국의 해방’에...
[학술논문] 북한 초기 문학예술의 미디어 전장: 『문화전선』에서 『조선문학』으로
이 논문은 해방 직후부터 6․25전쟁 직후에 이르는 북한문학 초창기(1945∼53)의 실상을 새롭게 파악하기 위하여 문예지의 미디어(매체)적 존재상황을 공시적, 통시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북한의 대표 문예지 『조선문학』(1953∼2015)의 전신인 계간 『문화전선』(1946),계간 『조선문학』(1947), 월간 『문학예술』(1948∼53)을 미디어 독법으로 분석하였다. 그 결과 8․15해방 후 북한 사회주의체제 건설과정의 진통이 문예지에 실린 기사뿐만 아니라 미디어 자체의 편집양식 변화에도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당과 문예조직의 미디어 장악 의도가 강하게 작동한 이면에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문학예술이 ‘당 정책의 전달자’ 노릇을 해야 하는...
[학술논문] 박태원의 월북 전후를 통해 본 냉전기 남북의 이순신 표상 연구
박태원은 해방 직후부터 대략 15년 동안 모두 9차례에 걸쳐 이순신을 형상화했다. 해방 이후 이순신은 좌익과 우익, 남과 북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인물로 독해 방식에 따라 애국심을 강조하는 이승만의 발화와 김일성을 우상화하는 작업에 모두 동원될 수 있었으며, 작가 박태원이 반복적으로 이순신을 형상화하면서 월북 이후 북한체제에 비교적 순조롭게 안착할 수 있었던 배경 역시 여기에 있었다, 특히 박태원의 이순신-임진왜란 관련 저작은 해방과 건국, 전쟁을 거치면서 급변하는 남북의 공식담론과 조응하고 있는 동시에 두 체제하에서 작가가 생존하는, 글을 쓰는 방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수 있다. 해방 이후 국난을 기록하고 그 교훈을 되새기는 작업은 일련의 정치적 행보를 통해 민족의 자주적 통일을 선결과제로 내세웠던...
[학술논문] 남북분단 70년과 북한선교의 방향성 모색
2015년은 해방과 분단 70년을, 2018년에는 남북한 정부수립 70년, 2020년에는 6·25전쟁 70년을, 2023년에는 휴전 70년을 맞게 된다. 향후 10년 내에는 미래 남북관계의 실제적 변화가 어떠한 형태로든 전개되리라 예상된다. ‘기쁘면서도 슬픈 날’로 기억될 수 있는 8·15 해방과 동시에 북한지역과 북한교회에 대한 지배의 주체가 일본식민지에서 이데올로기로 교체되었고, ‘동방의 예루살렘’이라는 평판마저 있었던 북한지역 지역은, 상당 기간, 찬송과 기도의 소리는 더 이상 공식적으로 들려오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종교와는 무관한 사회로 비춰지며 운영되던 북한사회도, 공인 기독교회가 1988년에 건립된 봉수교회를 시점으로 다시 등장하기...
[학술논문] 청계 정종여의 해방기 작품과 활동: 민족미술론의 수용과 실천
1945년 8월 15일 해방 직후부터 1948년 남북한 단독정부가 수립되기 전까지, 이른바 해방기 미술에 대한 기존 연구에서는 정치적 혼란으로 인한 공백기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식민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가 건설과 민족미술 수립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논의와 모색이 해방기에 이루어졌음을 밝히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해방기에 쓰인 민족미술론에 대한 문헌을 분석하고, 월북화가 정종여(鄭鍾汝, 1914~1984)의 작품과 활동을 고찰하였다. 해방 직후 미술단체들은 민족미술의 수립을 위해 식민지 잔재와 일본색 제거, 전통미술의 계승을 공통적으로 주장했다. 그러나 정치적 입장에 따라 ‘민족미술’의 성격 규정부터 전통미술에 대한 인식, 민족 고유색을 바라보는 관점까지 차이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