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남북관계]
...권리와 특혜를 명문화했다. 동포를 매개로 한 교류·방문·사업·문화의 새로운 공간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 흐름 속에서 저자는 ‘평화도시 삼각 네트워크’의 구체적인 비전을 제안한다. 해외동포를 연결고리로, 남녘 도시와 북녘 도시를 잇는 실질적 협력 구상이다. 나아가 이재명 정부의 담대한 결단과 트럼프 정부의 마지막 시나리오, 하노이의 천재일우를 재현하기 위한 저자의 제안은 실로 파격 그 자체다. 통일을 말하지 않으면 통일은 사라진다. 통일과 평화는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할 동반자다. 우리의 통일은 남북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을 넘어, 인류 문명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AI, 다시 남북의 봄을 말하다』는 통일을 ‘과거의 구호’가 아닌 ‘현재의 과제’로 다시 불러낸다. 언어를 바꾸고...
[통일/남북관계]
...최초의 남북경협 종합 연구서! “무찌르자 공산당, 때려잡자 빨갱이.” 1945년 분단 이후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수많은 반공 구호는 북한과의 모든 접촉을 금기시한 적대적 대북인식의 산물이었다.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로도 남북은 무력통일의 의지를 거두지 않았고, 상대를 경제협력의 파트너로 상상하는 일조차 불가능한 시대가 이어졌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물리적 단절과 이념적 대립 속에서도 협력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1988년 7ㆍ7 선언을 계기로 ‘민족공동체적 시각’이라는 새로운 틀이 등장하며 남북경협의 제도화를 견인했다. 이후 교역과 투자, 관광, 특구사업으로 이어진 남북경협은 협력의 지평을 넓혀왔지만, 정치적 이해와 군사적 긴장의 파고 속에서 번번이 확대와 위축, 재개와 중단의...
[지리/관광]
...2024. 1.16 RFA 보도 전문에 의하면, 사고 경위 및 지점 등이 상당히 구체적이라 놀랍다. 사고의 진위 여부를 놓고 말들이 많지만, 북한 당국은 사고 발생 1달이 지나도록 침묵으로 일관하는 게 선뜻 이해가 안 된다. (*2004년 4월 22일 발생한 용천역(평안북도) 폭발사고의 경우, 북한 당국은 신속히 보도하고 국제 사회의 구호를 요청했다. 당시 우리나라도 230억 규모의 구호물품과 복구용 건축자재를 지원한 바 있다.) (중략) 북한은 전체 전력 생산의 80% 이상을 수력 발전에 의존하는데, 특히 겨울철이면 전력난이 심각하다. 이유인즉, 수력발전소의 댐에 가둔 물이 꽁꽁 얼어버려 발전기를 가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력발전의 대안으로 화력발전을 가동해야 하는데, 화력 발전소 역시 석탄 공급이 제때 안 되고...
[학술논문] 북한 원림화 사업의 다층적 기능 확장 : 생태·경제·규율의 교차
북한은 김정은 집권 이후 ‘수림화·원림화·과수원화’ 구호를 내세우며전국적 차원에서 원림녹화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본 논문은 현 시기 북한에서의 원림화 사업이 환경미화나 조경의 측면을 넘어 생태환경적 기능, 경제적 활용, 일상 규율과 통치 강화라는 다양한 기능들이 서로 교차하며 공간전략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분석한다. 2010년 「원림법」과 2022년 「원림녹화법」 의 비교는 원림화가 더 이상 권고적 지침이 아니라, 법적 의무·책임·감독체계를 통해 주민과 기관을 직접적으로 규율하는 국가적 사업으로 성격이변화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농촌마을 현대화·도시화, 지방발전 20×10 정책의 기조하에서 원림화 사업은 경제림 조성과 지방공업공장과의 연계등으로 결합되어 주민의 부가적 소득 창출과 경제적 실용성을 강화하는방향으로...
[학술논문]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한국 교회의 역할
...파괴되었고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납북되고 살해를 당하였다. 이러한 극심한 전화 속에서도 한국 교회는 전쟁의 두려움 속에 떨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펼쳐 나갔다. 먼저 군인들을 위한 지원 사업으로는 군인 모집 지원 사업, 구국 기도회, 휴전 반대 등을 들 수 있겠다. 또한 군인들을 위한 선교 사업으로 군종 제도 관철과 포로 수용소의 포로를 위한 선교 사역 등을 들 수 있겠다. 외국의 원조가 들어오면서 파괴된 교회를 재건하는 사업도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무엇보다 당시 가장 강력한 교회의 사업으로 재난 속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구호 사업을 들 수 있겠다. 한국 전쟁 시기부터 시작된 1950년대는 한국 교회가 대단한 부흥과 성장을 경험하였다. 이 연구의 목적은 이러한 교회 성장의 원인을 발견하는...
[학술논문] 한국전쟁기 대중소설의 서사 전략과 젠더 정치: 이무영의 『사랑의 화첩』과 정비석의 『애정무한』을 중심으로
...정비석의 『애정무한』(1951)은 전쟁이 창출한 국민국가-남한의 윤리 의식과 감정 구조를 파악하는 데 유효한 텍스트이다. 『사랑의 화첩』은 타락한 반민족주의자로 지목된 여성을 통해 전쟁기의 젠더화된 인식 체계를 재현한다. 가톨릭 사제와 수녀의 길을 걷고 있던 한 남녀는 사랑에 빠져 세속의 삶으로 돌아온다. 남편은 국가라는 이름의 신을 새로이 맞이하여 전재민 구호사업에 투신하며, 이와 같은 민족적 대의 앞에서 아내의 개인적 욕망은 부정되고 처단되어야 할 것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아내가 처절하게 전락하게 되는 결정적 이유는 그의 섹슈얼리티가 공산주의자를 향해 발현되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월북 후에야 북한이 지상의 지옥이라는 깨닫게 되는 한편, 중요한 것은 육체가 아니라 정신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뒤늦은...
[학술논문] 광복 후 ‘안중근 의사 유해 찾기’의 경과와 역사적 검토
이 글은 광복 후 70여 년간 안의사유해찾기의 과정을 정리하고, 향후 과제를 전망하고자 한 것이다. 광복 후 안의사유해의 봉환을 처음 제기한 것은 1946년 3월 안의사 순국 36주기에 맞추어 우덕순 등이 성립한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였으나 구호에 그치고 말았다. 그리고 안의사유해찾기에 누구보다 고심하던 백범이 1949년 서거하고, 6·25전쟁 이후 남북 대립이 극심해진 상황에서 안의사유해찾기는 관심에서 오랫동안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안중근의사의 동상이 남산에 세워지고, 순국기념일에 추모식을 거행하면서도, 안의사유해찾기는 엄두를 내지 못한 채 20여 년이 넘는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1980년대 들어 중국 개방의 바람이 불면서 국교수교 전이라 해도, 민간차원의 방문이 허용되면서 안의사유해찾기도 활기를 띠기...
[학술논문] 북한 로동당 제7차 대회 경제정책의 분석과 평가
...추진되어야 할 “경제강국건설과 인민경제발전전략”이 ‘제7차 당대회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문’으로 보고되었다. 여기에서 제시한 것이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이다. 전력공업을 필두로 한 제반 공업과 농수산업 그리고 대외경제 까지를 정상궤도에 올려놓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경제개발구를 활용하고, 우리식 경제관리방법과 사회주의 책임관리제를 모든 분야에 적용하여 생산을 정상화하고 확대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진행 중에 있는 정책을 나름 집대성하여 제시한 것이다. 문제는 이를 시행하기 위하여 내세우고 있는 것이 ‘조선속도’, ‘만리마정신’ 등 각종 동원전투를 통한 자강제일주의 전략노선이다. 결국 경제정책의 시행을 정치적 구호로 풀어 가겠다는 것은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방법으로 북한이 말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