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북한 지상전력 개편의 의미와 우리 군의 대응 정책: 기계화 및 경보병 전력 중심으로
...경보병연대로 증편하였다. 기계화 전력의 위상은 한 단계 낮아진 것이고, 특수전 전력의 위상은 한 단계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북한 지상군 구조의 변화는 이에 상응하는 전략적, 작전적 및 전술적의미를 가지고 있다. 북한이 군구조를 변화시킨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축약할수 있다. 첫 번째는 걸프전과 OEF 및 OIF를 통하여 항공력의 엄호 없이 기계화부대를 운용할 수 없음을 이해한 것이며, 두 번째는 특수전 전력을 강화하여 비대칭전을 꾀하려는 것으로, 한국군이 이 부분에 특히 취약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북한의 일반 차량, 특히 2½톤 트럭의 부족을 해소하려는방편의 하나로 취해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기계화 부대의 개편은 4개 여단이 증강되고, 각 여단의 작전 능력은...
[학술논문] 미국의 對한반도 정책과 우리의 對미 안보정책 방향
오바마 2기 정부는 북한의 WMD확산 차단, 빈곤 완화와 인권 개선에 보다 적극 개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완벽한 연합전비태세 하에서 전작권 전환을 추진하고, 주한미군 운용관련 기계화부대 순환배치와 포병 ․ 육군항공부대를 전방에 추진 배치하면서 동시에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하기 위한 체제를 구축할 것으로 전망된다. 본 논문에서 ① 북핵 ․ 미사일 위협과 국지도발에 따른 맞춤형 대응체제 발전, ② 한국 주도, 미국 지원의 신연합방위체제 구축, ③ 미래 한미동맹의 비전과 주한미군의 역할 발전, ④ 자연재해 대비 동북아 신속대응체제 구축, ⑤ 한 ․ 미 ․ 일 안보협력과 한 ․ 미․ 중 전략대화 추진, ⑥ 방위비 분담금에 대한 회계 감사권과 주한미군 근무 한국인에 대한 인사권 행사를 박근혜 정부의 대미정책...
[학술논문] 6·25전쟁 초기 북한군 기계화부대 연구 - 기계화부대의 편제 변화를 중심으로 -
6·25전쟁 초기 북한은 기계화부대를 대규모로 운용해 전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북한 은 소련의 도움을 받아 기계화부대를 육성했지만 전쟁을 치르면서 점차 한반도의 상황 에 맞춰 기계화부대를 편성하고 운용해 나갔다. 북한이 처음으로 편성한 제105전차여단은 소련군 전차사단의 편제를 참고해 만들어 졌다. 전쟁이 일어나자 제105전차여단은 한국군과 미군에 큰 피해를 안겨주며 승리를 거듭했다. 하지만 제105전차여단은 전차연대 단위로 분산되어 운용되었다. 한반도에서 는 제105전차여단과 같은 대규모 기계화부대를 집중적으로 운용하기 어려웠다. 제105 전차여단은 서울을 점령한 뒤 사단으로 승격되었다. 제105전차사단은 미군이 참전한 이후 작전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가장 큰 원인은 편제상의 문제였다. 제105전차사단은...
[학술논문] 북한의 소련군 규정・교범 번역과정 연구(1945~1950)
...1948년 2월 8일 인민군 창설 직후부터 소련군의 군사교리를 공식적으로 정규군의 모델로 설정하면서 소련군의 규정과 교범을 본격적으로 번역했으며, 번역원들은 연대급 이상의 부대에 모두 배치되었다. 이들은 인민군 창설 이후에 《군대정찰교범》 등 전술과 전략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교범을 번역했고, 민족보위성 설립 이후부터 《진지방어돌파교범》 등 공격전에 필요한 지휘관용 전술교범을 번역했다. 특히 민족보위성은 1949년에 탱크부대・기계화부대・항공부대 등 공격전에 필수적인 병종의 규정과 교범을 번역했으며, 1950년부터 《전술훈련상학교범》 등 주민거주지・산악지대・야간의 공격전투에 필요한 교범을 번역했다. 결국 인민군은 6・25전쟁 이전에 공격전에 필수적인 소련군 규정과 교범에 입각해 훈련함으로써 공격형군대로 육성되었다.
[학술논문] 북한군 제105땅크사단 65기보련 76mm대대의 참전준비와 전투일지
...국군 위주의 연구에서 우선순위가 낮을 수 밖에 없었다. 필자는 기존의 연구방식과 다른 방식의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바로 부대 단위의 전투와 작전을 독립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번 연구는 북한군 제105땅크사단 65기계화보병연대 76mm대대에 대해 확인했다. 이같은 새로운 연구는 기초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제105땅크여단은 북한군의 유일한 기계화부대였다. 그리고 북한군의 상징이기도 했다. 포천-의정부로 진공한 여단은 서울을 점령했다. 그 공적으로 제105땅크사단으로 승격하고 ‘서울’이라는 호칭을 부여받았다. 그리고 한강을 도하한 후에도 주공부대로 활약했다. 수원, 천안, 조치원을 거쳐 대전도 점령했다. 그 뒤 영동, 황간, 김천을 거쳐 약목에 도착했다. 낙동강 전선에서도 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