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군사]
...국제정치의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동시에 냉전의 진영 너머를 향한 남북한의 외교경쟁도 잦아들었다. 중립·비동맹의 시대가 저무는 듯했다.
탈냉전, 평화를 지향한 비동맹의 신념
―전쟁을 선동하는 냉전의 목소리에 제동을 걸다
1970년을 전후하여 미·소, 미·중의 지도자들이 긴장완화를 추구하며 지구적 냉전과 동아시아, 그리고 한반도의 정세가 급변하고 비동맹 정상회의도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특히 1973년 알제리 비동맹 정상회의에서 북한이 주장하는 한반도 문제 관련 결의안이 채택되고 북한이 비동맹에 직접 가입을 시도하자 남북한의 외교경쟁은 격화했다. 1975년 페루 리마 비동맹 외상회의에서 북한은...
[통일/남북관계]
...배타적 통제권을 놓고 경쟁하는 양상이다. 나아가 남북한이 서로 상대국의 정책결정에 영향력을 획득하기 위한 경 쟁을 하는 등 내정에 간섭하는 개입의 양상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남북한 숙적관계의 긴장완화/종결을 위해서는 4대 요인인 ‘충격→기대치 변화 →상호 호혜성→강화→ 숙적관계의 긴장완화/종결’이 라는 기본 모델을 근간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때 변화의 충격에 포함될 수 있는 요인들은 평화/경제적 인센티브, 각종 쇼크들, 새로운 위협들, 집중된 갈등, 정책 실패 5개 요인이다. 그 외에도 기본 모델을 구성하는 4대 요인 각각의 세부 구성요인을 주목하면서, 남북한 관계에 적합한 모델을 보다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정치/군사]
본 연구는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대안으로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긴장 완화를 제시한다. 한반도 군사적 긴장완화는 한반도에서의 무력충돌 가능성 감소와 남북한 간 상호 위협 감소로 구분해 논의할 수 있다. 본 연구는 한반도에서의 무력충돌 가능성 감소를 위한 군사분야 정책과제로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구성?운영을 포함한 ?9.19 군사합의? 이행 확대 ▲상호 이해 심화 ▲새로운 방향에서의 상호의존성 증대를 제시했다. 또한 남북한 간 상호 위협 감소를 위한 군사분야 정책과제로 ▲위협적 군사행동 상호 자제 ▲군사력 배치 변화 ▲단계적 군축 추진을 제안했다.
[통일/남북관계]
...한다. 장기적인 시야에서 미·중·러·일 4강과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통일은 외적 조건과 함께 내적 조건이 갖추어져야 가능하다. 다시 말해 당국 간 고위급 접촉뿐 아니라 민간 분야 교류의 확대·활성화가 필수적이다. 하루 빨리 개성공단을 재개하고 금강산 관광, 이산가족상봉, 군사적 긴장완화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여기서 저자는 브란트의 말을 인용한다. “평화가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평화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독일 통일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그 나라 고유의 서방정책과 동방정책이라는 토대 위에 ‘평화’를 지키며 통일을 이뤄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통일을 위해서는 이벤트성...
[학술논문] 북방한계선(NLL) 문제에 관한 국제법적 검토와 대응방안
...이들 문서의 법적 효력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최소한 ‘남북한 당국이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성실하게 이행하고 준수하여야 할 규범’으로 보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당사국간의 관계에 적용될 수 있는 국제법의 관계 규칙으로 유엔 해양법협약이 자주 언급되고 있는데, 평시 적용을 전제로 하는 유엔 해양법협약의 해상경계 획정 원칙에 관한 규정은 서해상의 군사분계선인 NLL에 적용될 수 없다. 이 글에서는 NLL을 둘러싼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과 관련하여 한국 정부가 ① NLL이 유엔 해양법협약상의 ‘영해’가 아닌 ‘해상에서의 군사적 분계선’임을 주장, ② 남북 간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이라는 합의의 전제조건 명시, ③ 유엔 사무총장에게 천안함...
[학술논문] 한반도 평화 회복을 위한 국가전략: 개성공단 사업을 중심으로
...△남북관계를 개선· 발전시키고, △북한의 개혁 개방을 촉진시키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북한주민들의 대남 인식을 개선하는 등 정치사회적 의미도 작지 않다. 이러한 개성공단이 이제 ‘잠정 폐쇄’ 상태에 들어갔다. 북측의 통행 제한 조치와 북측 근로자 전원 철수, 그리고 남측 인력 전원 철수로 모든 공장의 가동은 중단되었다. 개성공단에서 우리 기업들이 공장을 가동한지 9년 만의 일이다. 남북관계의 마지막 보루인 개성공단의 ‘잠정 폐쇄’로 남북관계는 이제 암흑시대로 접어들었다. 물론 상황이 완전히 종료된 것은 아니다. 아직은 완전 폐쇄된 것이 아니고 남북한 당국 모두 ‘완전 폐쇄’를 거론하는 것은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따라서...
[학술논문] The Quasi-Cooperation between the Two Koreas: Why is It Continued?
... 위함이 아니었다. 이러한 것들이 남북 간 유사협력의 배경이다. 지난 20년 동안 남북은 적개심 종식, 평화공존과 긴장완화의 토대구축을 위한 “신의”를 보였다. 이러한 “신의”의 확고한 증거는 1992년 2월 남북기본합의서 체결이었다. 반면, 남북한은 협상기간 동안 경제 또는 군사적 능력에 있어서 자국의 약점을 이용하려는 상대방의 전략적 계산에 대해서는 “냉소적” 태도를 취하였다. 이러한 모순적 태도는 남북관계가 처한 특수한 상황에서 비롯되었다. 즉 분단 이후 양측은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을 제거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무력도발의 가능성은 남북협력 유지의 실패요인이었다. 특히, 핵개발과 핵실험,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과 같은 북한의...
[학술논문] 1979년 카터 대통령의 남북미 3자회담 추진과 박정희 정부의 인식
1979년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제안 된 남북미 3자회담은 한국의 남북한 당사자 원칙을 국제협력 원칙으로 변화한 사례였다. 본 연구는 이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이 가졌던 세계적/지역적/국지적 수준별 인식 차이와 양국의 이해관계 변화를 새롭게 비밀해제 된 1차 자료에 근거하여 분석했다. 카터 행정부의 대한반도 정책은 군사적인 긴장완화를 의도한 주한미군 철수계획과 미중관계의 우호적인 기대 속에서 수립되었다. 반면 박정희 대통령은 주변국의 외교관계나 안보환경 변화를 주시하면서도 결과적으로 남북한 체제경쟁과 현상유지를 우선했다. 이러한 차이는 남북미3자회담에 대한 한미갈등으로 표출되었다. 이에 대해 박정희 정부는 미국의 제안을 무조건 거부하기보다는 관여를 통해 회담 성격의 관철, 철군계획의 유보, 한미관계의 유지라는...
[학술논문] 남북한 접경지역의 감염병 및 자연재난 협력에 관한 연구* : 동서독 협력 사례와 비교하여
...많은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 동서독은 접경지역의 상설기구인 ‘접경위원회’를 설치하여 보건·의료, 환경, 자연재해 등 전 분야에 대해 협력체계를 구축하였고, 1973년 「재난공동대응협정」을 체결하여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감염병, 환경, 재난을 최우선적으로 대응하여 상호 신뢰 구축과 군사적 긴장완화에 기여하였다. 이러한 동서독의 접경지역 협력 사례를 토대로 남북한 접경지역의 감염병과 자연재난에 대한 구체적인 협력을 통한 신뢰회복과 지속적인 협력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남북 접경지역 교류·협력과 관련한 법규의 구체화 및 규범력 부여, 둘째, 남북 접경지역 협력을위한 상설조직 구축, 셋째, 정부, 지자체, 민간단체가 참여하는 거버넌스형 협력체계 구축. 넷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