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군사]
... 조선인민군 장교가 중국지원군 사단장에게 전화하여 전투 정황을 알리는 장면 외에는 북한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지원군이 어디에서 누구를 돕기 위해 싸우는지 알 수가 없으며, 영화는 오로지 중·미의 대결, 즉 ‘중미전쟁’처럼 그려진다. (…) 반면, 1960년대 항미원조 영화 속에서는 ‘사회주의 조선’의 구체적인 표상들이 전면에 등장한다. 인민군, 조선의 아버지와 어머니, 여전사와 같은 인물들이 그려질 뿐만 아니라, 1950년대 문학 속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이승만의 위군(僞軍)’으로 묘사된 남한군까지 등장하면서...
[정치/군사]
...5장에서는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된 원인을 살펴보았다.
2부에서는 북한의 군사에 관하여 집중 조명하였다. 먼저 6장에서는 북한군의 형성과정을 살펴보고 북한의 대남 전쟁의도가 지속되고 있는 원인에 대하여 제시했다. 7장에서는 북한이 강력한 군사력을 발전 및 유지시키는 원인을 북한의 군사전략 차원에서 분석했으며, 8장에서는 북한의 당-군관계로 인한 북한군의 한계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9장에서는 북한이 대규모 병력을 유지할 수 있는 원인을 병역제도의 차원에서 고찰해 했으며, 10장에서는 북한이 엄청난 양의 무기체계를 생산 및 소비하는 원인을 북한 군수산업의 발전과 연계하여 분석했다. 11장에서는 북한의 대남도발 특징과 변화 양상을 제시하고, 이론적 차원에서 북한의 대남도발 원인을 살펴보았다...
[정치/군사]
...군이 설정한 전술조치선 이남으로 북한 공군기가 집단으로 도발한 사례를 분석했다.
여섯째, 북한 교육과 문화 분야에서 지금까지 선행연구에 없는 내용을 발굴하여 썼다는 점이다. 먼저 교육 분야에서는 북한 고급중학교 역사 교과서를 분석한 결과 3·1운동과 임시정부, 이순신과 안중근을 철저하게 혁명적 수령관으로 폄훼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문화 분야에서는 ‘북한에는 국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밝혔다. 북한에 국악이 없다는 것은 최초의 학술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일곱째, 강연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 10개를 소개한다. ① 죽은 김일성이 지금도 북한을 통치하는지 여부 ② 쿠데타 가능성 ③ 최고사령관 국무위원장 당...
[정치/군사]
당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국무위원회 등북한의 군사・국가 지도기관을 분석하다
북한은 1962년 12월 당시 불리했던 외부 상황에 대응키 위해 당중앙위원회 군사위원회를 창설한다. 그 후 김일성과 김정일 시기의 당중앙군사위원회는 군 지휘권, 군 인사와 군사 외교, 군수산업, 군 복지 문제 등 국방 문제 전반을 다루었고 국가의 중요사항을 결정하는 일 등에도 관여하였다. 물론 김정일 집권 후 일시적으로 위축되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김정은 시대에는 당의 군사 분야 협의체로서의 역할이 정상화되었고 국가 위기관리 기관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또한 김정일과 김정은으로의 군권 승계 과정에서 교두보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한편 한국전쟁 당시 운용되었던 ‘공화국 군사위원회’가...
[사회/문화]
...데 한걸음 다가섰다.
* 책속으로 추가
위기 이전의 북한 사회에서 관료들은 주로 ‘경제의 정치화’를 통해 공적 위계 계선을 따라 이익을 확보하는 방식을 택했다. 즉, 지배집단에 충성을 보여주고 그 답례로 특권·특혜를 보장받는 호혜관계가 주된 방식이었다. 당 지도자를 왕처럼 떠받드는 종교적 숭배현상은 일상적 의례였으며, “당 지도부는 새로운 최고 영도자로서 다른 모든 당원들 위에 군림하는 존재”였다. 이런 숭배와 군림의 방식은 관료체제의 위계 계선을 통해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되었다. 스탈린시대의 관료들이 ‘작은 스탈린’으로 지칭되었듯이, 북한도 도처에 ‘작은 수령’들이...
[학술논문] 북한군 병영생활을 통해 본 김정일-김정은 시대 당・군 관계 변화: ‘이중적 후견관계’를 중심으로
본 연구는 북한군 병영생활을 통해 김정일-김정은 시대 당·군 관계 변화를 미시적으로 분석하였다. 군 출신 북한이탈주민 18명의 심층면접을 진행하여 ‘정치군관↔병사↔군사지휘관’ 간의 권력구조와 상호작용을 ‘이중적 후견관계’라는 분석틀을 활용하여 실증적으로 규명하였다. 연구결과, 김정일의 선군정치 시기에도 당에 의한 군의 지배원칙은 일관되게 유지되었으며, 김정은 시대에는 당 중심 체제 정상화로 군에 대한 당적 통제가 더욱 강화되었다. 특히 김정은 시대 들어 입당권 제한과 정치군관의 권한 확대로 정치군관-병사의 후견관계 양상이 더욱 강화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북한의 당-국가체제하에서 일관되게 군이 당의 통제하에 있음을 보여준다.
[학술논문] 북한 청년동맹의 초기 성격 연구(1946∼1948): 조직, 당과의 관계, 역할을 중심으로
...‘북조선민주청년동맹’으로 불리었다. 사회주의체제 청년단체의 기본적 기능은 ‘사상교양’이다. 1948년 11월 청년동맹(민청) 제3차 대회는 사상교양단체로서의 성격을강조했으며, 이는 해방 이후부터 정권 수립 시기까지 사회주의체제 청년단체로서의 성격이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결성 초기 민청은 소군정의영향, 당 지도부의 다원성, 공산주의적 색채를 가졌으면서도 대중적 단체를 지향했던 점 등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따라서 당은 민청에 대한지도를 공식화하는 대신, 민청 지도 간부를 통한 인적 지도, 문화부를통한 군대 민청단체 지도 등의 방법을 통해 장악력을 강화했다. 초기 민청의 역할은 각종 사회개혁과 정권 수립 지원, 그리고 사회적 동원을 추동하는 데 집중되었다.
[학술논문] 북한 4대 군사노선의 완성에 중소분쟁이 미친 영향(1962-1966)
...진영 내에서도 외교적 고립 위기에 처하였다. 결국 북한은 흐루시초프의 실각을 계기로 대소접근을 시도하고 소련과 해빙기를 맞이했다. 소련과의 관계 회복으로 북한은 비로소 소련으로부터 현대적 장비를 수입하고 조선인민군의 현대화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국제관계에서 편승의 대가를 깨달은 김일성은 1966년 10월 제2차 당대표자회에서 중소분쟁에서 중국과 소련 어느 곳에도 치우치지 않을 것을 주장하는 자주노선을 공식 외교노선으로 선언하였다. 이와 함께 전군 현대화를 추가한 4대 군사노선을 완성하고 국방과 경제의 병진노선을 재확인하였다. 결국 중소분쟁이라는 비대칭 동맹의 관계 이완은 북한의 자율성 상승을 야기하였지만 강대국이 제공하는 안전보장의 약화와 함께 ‘낮은 수준의 안보-자율성 교환’을...
[학술논문] 김정일 체제 등장 이후 군부 엘리트 통제에 관한 연구- 당․군 관계 중심으로 -
...완료하였다. 김정일은 김일성 체제와는 달리 ‘선군정치’, ‘군 중심의 사상과 정치’, ‘강성대국’ 등 군부대 중심의 각종 슬로건을 내세우며 북한의 모든 분야를 해결하려는 당․군 체제를 이뤄나갔다. 김일성 체제는 당 우위의 당․국가 체제로 당원이 군 조직의 핵심적인 지위에 겸임하여 당이 군을 장악해 당․군 간의 갈등이 적어 군부에 대한 강고한 통제가 가능한 반면, 김정일 체제는 ‘선군 정치’를 앞세워 군이 급부상함으로써 당의 군에 대한 통제력이 약해 강고한 군부통제에서 표피적 군부통제의 경로를 거치게 된다. 하지만 북한 체제의 구조적 특성상 당이 없이 군부만의 존재는 무의미하므로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한계점이 나타난다.
[학술논문] 김정은 정권의 수령제와 당ㆍ정ㆍ군 관계
본 논문의 목적은 수령제와 당․정․군 관계를 중심으로 북한 김정은 정권의 권력구조의 특징을 살펴보는 것이다. 본 논문의 문제의식은 북한에서 1967년 유일적 지배체제가 형성된 이후 수령제의 기본 요소인 수령의 유일적 최고결정권, 당적 지배, 정(政)과 군(軍)의 역할분담 등이 지속되고 있으나, 시대별로 그 기본 요소 간 관계가 재조정된다는 것이다. 김정은 시대 권력구조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김정은은 김일성․김정일에 비해 수령으로서의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수령 개인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던 정치’에서 ‘정치시스템에 의한 정치’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김정일 시대에 약화된 당을 북한정치의 중심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그리고 경제발전과 체제 보위를 위해 내각과 군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