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군사]
...한국정치학회와 〈트럼프 2.0 시대 한국의 자체 핵무장 옵션과 여론〉이라는 주제로 발표자만 14명이나 되는 대규모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때 발표된 논문 중 하나는 미국 민주주의와 확장억제의 신뢰성에 관한 것으로, 한국 성인 1,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연구를 진행했다. 주목할 만한 발견은 미국 민주주의의 후퇴가 확장억제의 신뢰성 저하와 큰 상관관계를 가진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미국 민주주의의 회복탄력성을 믿어도 될까?
셋째, 7월 15일 「동아시아에서 떠오르는 이중 핵 위협(A Rising Nuclear Double Threat in East Asia)」이라는 워게임 보고서가 국내 언론을 통해 기사화되었다. 이 보고서는 두 가지 상황을 상정했다. 하나는 북한의...
[사회/문화]
딱딱한 대북관? 말랑말랑한 반북!
한반도 통일과 MZ세대의 인식
선진국 국민으로서 성장한 MZ세대에게 북한은 낙후되고 독재적인, 괴리감이 큰 영역이다. 그에 비해 MZ세대는 민주주의, 선진 문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생활했으며, 스마트폰으로 전 세계 뉴스를 보고, 사회를 이해하고, 온라인으로 소통했다. 이들은 일찍부터 모든 것이 ‘손안에’ 있었기에 멀리서부터의 시각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기보다, 자신을 중심으로 북한이나 통일 같은 ‘먼 문제’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또 다양한 이유로 MZ세대의 통일 지지도는 높지 않다. 특히 20대는 “통일을 함께 논의할...
[정치/군사]
북한은 언제 무너질까? 지금은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을 보기 힘들지만, 1990년대 초에는 흔하게 만나는 질문의 하나였다. 그때는 북한도 머잖아 붕괴할 것이고 한반도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통일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북한과 가깝게 지냈던 루마니아가 시민혁명으로 무너지고 차우세스쿠 대통령이 처형되었을 때,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르몽드는 “다음 차례는 북한인가?”라는 제목으로 사설을 실었다. 그렇지만, 북한은 무너지지 않았고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3대째 권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한·소수교와 소련 붕괴 이후 중국에 의지하려던 북한은 중국마저 남한과 수교하자 극심한 국제적 고립에 직면했다. 이 때 북한의 핵사찰 수용 문제가...
[경제/과학]
... 시작했다. 2019년 한 해 동안 세미나팀은 에너지 전환론, 에너지 전환의 지리학, 에너지 민주주의, 정의로운 전환 등의 이론공부를 마치고, 북한 에너지시스템 관련 계획과 정책을 살피고, 남북 에너지 교류협력 실태와 한반도·동북아 스케일의 인프라 건설 계획까지 검토했다.
그 연구 결과를 담은 《한반도 에너지 전환》은 다양한 개념과 이론자원 그리고 사회공간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과거를 평가하고 현재를 진단하고 동시에 미래를 구상하는 실천적 과정이었다. ‘탈탄소 시대를 향한 새로운 에너지 공동체 구상’이라는 부제에서 드러나듯 한반도 에너지 공동체는 ‘안보’와 ‘개발’이라는 화석화된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국가주의와...
[통일/남북관계]
...전쟁을 치르기도 하였다.
우리 민족의 사례처럼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가장 큰 변수는 두말할 필요 없이 지정학적 위치라 할 것이다. 역사상, 많은 국가들이 그들의 처한 지리적 상황 때문에 수많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고 운명이 결정되곤 하였다. 현재 세계 13위의 경제 대국이고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군사력을 보유하고, 정치적 민주주의도 이룩한 우리 대한민국이 만약 아프리카에 위치한다면 우리는 이미 그 지역에서 큰 영향력 있는 국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 주변에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자리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전체 GNP는 한반도 주변 국가들 전체 GNP의 4%에 불과하며, 핵무장을 한 전통 강대국인 미국, 중국, 러시아와의 전쟁은 결과를...
[학술논문] 1950~70년대 ‘사상계’ 지식인의 분단인식과 민족주의론의 궤적
...1950년대 말 분단 상황의 특수성을 앞세운 이승만 정권의 반공 독재가 전면화하면서, 사상계 지식인들의 반공 자유주의 내부에 균열이 생겼다. 그들은 민주주의의 확보와 국민생활의 향상을 통해 공산주의가 발붙일 수 없도록 하자는 승공의 논리로 반공 독재와의 차별화를 시도하면서, 자유 민권 투쟁의 주체로 지식인을 호명하였다. 4ㆍ19 이후 민간 차원의 통일논의가 분출하는 가운데, 자유세계보다 민족을 앞세우는 민족주의의 물결이 밀려왔다. 그러나 사상계 지식인들은 반공 평화통일론을 고수하며, 먼 장래의 남북총선거에 대비한 남한 체제의 경쟁력 강화에 매진하였다. 그 요체는 민주주의의 물적 토대 구축을 위한 경제 근대화와 복지를 통한 사회통합에 있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사상계 지식인들은 기존의 자유세계론을 우회해 경제자립과...
[학술논문] 한국근현대사에서 공생적 관점의 도입과 협동조합운동사
...국가-사회-개인의 상호협력사회구조를 만들고, 시민의 주체성이 살아있는 사람중심의 사회경제로 전환하자는 사회운동과 연결되어 있다. 한국사회를 분단과 갈등, 자본주의의 확대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런 균형을 만들어가려는 움직임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 연구는 일제하 신국가건설론과 남북한 협동조합운동의 흐름을 검토하면서 한국근현대사 속에서 공생사회를 지향하는 움직임이 어떻게 맥락화되었는가를 살펴본다. 해방 후 남북한에서 제기되었던 협동조합정책은 일제하에 형성된 여러 세력들의 국가론 / 경제론과 연결된 협동조합론 사이의 협력과 경쟁의 과정이자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남과 북의 경제체제는 공통적으로 협동조합을 사회의 기초에 놓고 있다. 특히 북한의 인민민주주의체제와 남한의 제헌헌법에서 제기하는 균등경제체제는 토지개혁과 협동조합, 도시와...
[학술논문] 1947년 북조선 면ㆍ리 인민위원회 선거
1947년 2~3월 북조선 전역에서 면, 리 인민위원회 선거가 실시되었다. 선거는 임시적인 성격의 지방정권기관을 상설적인 정권기관으로 전환시켰다. 인민위원회 선거는 지방정권기관에 정통성과 합법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1947년 2월 도, 시, 군 인민위원회 대회가 개최되어 최고주권기관인 북조선인민회의와 최고집행기관인 북조선인민위원회가 조직된 것이다. 인민위원회 선거는 북조선의 국가건설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인민위원회 선거는 북조선 사회에 소비에트 민주주의를 조기에 정착시켰다. 선거는 당–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통일전선–정당․사회단체 –대중으로 연결되는 정치사회적 동원 체계를 제도화하고 당의 지도적 역할을 한층 강화했다. 선거 규정은 일반적 평등적 직접적 선거원칙...
[학술논문] 정노식의 생애 연구- 행적과 교유를 중심으로
...갖는다. 정노식에 관련 기사는 1930년대 중반까지 등장하지 않는데, 정노식은 1938년 『조광』에 「조선광대(朝鮮廣大)의 사적(史的) 발달(發達)과 가치(價値)」를 발표하고, 이를 보완하여 1940년 조선일보사에서 『조선창극사』를 출간하면서 그의 면모가 다시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1940년대 이후 정노식의 행적은 급격한 사회주의자로의 전환을 보여준다. ‘민주주의민족전선’과 ‘남조선노동당’의 결성에 깊숙이 관여하며, 이로 인해 재판을 받게 되면서 1948년에는 월북한 것으로 되어 있다. 정노식이 북한에서 어떠한 활동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 정노식은 북한에서 학문적이거나 문화예술 분야에서 활동한 기록은 찾을 수 없었는데, 북한에서는 중앙당에서 주요 요직을...
[학술논문] 사회주의가 북한 어민의 풍습과 노동관행에 미친 영향
북한의 인민민주주의 개혁과 사회주의 협동화의 중요한 대상이었던 농업과 수산업 분야는 1945~60년 획기적인 변화과정을 거쳤고, 농민과 어민들의 생활방식도 크게 변모하였다. 인민민주주의 개혁과 사회주의 협동화는 단지 북한을 인민민주주의체제 및 사회주의체제로 바꾸는 과정일 뿐 아니라 사회주의적인 인간형을 창출하는 과정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6.25전쟁 전 북한은 중요산업의 국유화 조치를 취하면서도 개인상공업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생산력 발전을 추진하였고, 어업분야는 중소어업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당시 반제반봉건 인민민주주의 개혁의 일환으로 북한정권이 추진하였던 수산업 정책은 미신을 타파함으로써 어민들의 과학적 인식의 토대 아래 수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닦고, 국영기업소와 수산합작사를 활성화하여 어민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