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5.16 쿠데타에 대한 북한의 인식과 대응: 남한의 정치변동과 북한의 국내정치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5.16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부터 군사 쿠데타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일정 정도 검토하고 있었다. 북한은 5.16 쿠데타 발생 직후 이를 미국이 사주한 쿠데타로 추측했다가 다시 군내 진보세력에 의한 독자적인 쿠데타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했다. 심지어 군사 쿠데타를 지지하는 성명 발표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반공 국시를 내건 군사정권이 혁신세력을 탄압하는 것 등을 보고 이틀 만에 5.16 쿠데타에 평가가 미국이 사주한 '반동세력'에 의한 쿠데타로 다시 완전히 바뀐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북한은 박정희에 대한 일정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간첩 황태성을 남파하여 박정희와의 접촉을 시도했다. 이와 같이 북한은 쿠데타에 대한 정확한 정보부재 상태에서 한동안...
[학술논문] 광복 후 분단체제에 대한 원불교의 대응과정 연구
...있다. 분단체제에 대한 원불교의 대응양상에 대해서는 먼저 광복 후의 과제와 당시 최고 지도자였던 정산 송규의 「건국론」의 의미를 짚어보았다. 그 내용 가운데 민주국건설과 중도주의 운용은 현 시점에서도 한반도의 통일방식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어 분단체제의 고착화에 대한 대응과 분단 회복운동에 대한 참여를 다루었다. 전자는 반공을 국시로 삼아 분단이 고착화된 시기의 원불교의 대응을 논한 것이다. 비록 이념적인 측면에서 통일의 당위성을 내세우기는 했지만 원불교의 사회적 역할은 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80년대 후반 노태우 정부의 등장과 함께 원불교도 북방 및 북한교화의 정책을 수립한 것은 고무적이라고 할 수있다. 후자에 있어서는 현재까지 한국사회 내 분단회복 운동에의 동참을...
[학술논문] 한국의 군종제도와 기독교
한국에서의 군종제도의 시작은 기독교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기독교 군목제도는 반공을 국시로 하고 다수의 기독교 신자들이 참여한 이승만 대 통령 시절에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초기부터 천주교도 신부들 도 참여했지만, 기독교 군목만큼 그 활동이 활발하지 못했다. 1960년대 후반 에 월남전이 발발하면서 불교도 파병된 한국 병사들을 위해 군승을 파송하 기 시작하면서 표면적으로는 세 종교가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처럼 보였으 나, 실제로는 적지 않은 종교적 갈등을 빚은 것도 사실이었다. 최근에 들어 햇볕정책을 비롯한 대북정책의 변화로 반공이라는 단어가 서 서히 사라지고, 북한이 더 이상 우리의 주적이 아니라는 이데올로기 진공의 정치적 상황은 군종 병과의 존폐를 위협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종교 간의 과열경쟁도...
[학술논문] 한국 정치극의 전개 양상 -192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정치극운동을 중심으로-
...극작술이 주로 사용되었고, 극적 허구보다는 실화 소재와 다큐멘터리 극작술을 선호했다. 이는 연극의 ‘교육적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며, 공연은 재현과 의례를 결합한 퍼포먼스 형식을 취했다. 세 번째 정치극운동 시기인 1970-80년대는 3공, 5공, 민주화시기라는 정권의 변화에 따라 각기 변별되는 전개양상을 보인다. 3공이 반공을 국시로 삼으면서 좌파 이념을 명백히 내세운 정치극은 사라진다. 검열을 피해 재야연극운동이 일어났는데 대학가의 탈춤부흥운동과 연계해 마당극 양식을 만들어냈다. 체제비판적, 현실참여적 내용은 이전 시기 정치극을 계승하는 것이지만, 역사의 주체로서 민족, 민중을 상정하고 전통연희 미학을 결합한 새로운 진전을 이루어냈다. 마당극은 민족/민중성이란 지향 담론에 맞추어...
[학술논문] 국민과 비국민의 경계― 피학살자유족회사건을 중심으로
...이유 등을 살펴보면 재판의 쟁점이 피학살자가 ‘국민’인가 ‘비국민’인가 하는 데 놓여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유족회와 유족회 활동이 반국가적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그 연장선 상에 놓여 있었다. 판결문은 “북한괴뢰의 동조자였던 보련원 및 국가보안법 기 미결수의 피살은 불법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반공을 국시로 하는 대한민국의 충실한 국민이라고 할 수 없을진대…”라고 하였다. 이는 피학살자는 단지 비국민이라는 이유로 학살을 당하고도 학살자에게 죄를 물을 수도 없고 그들의 죽음을 애도해서도 안 되는 ‘호모 사케르’였음을 말한다. 국민과 비국민의 경계는 유동적이었다. 예컨대 유족회사건에서 유일하게 사형을 선고받은 유족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