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남북관계]
...있다.
해방 이후 한국의 자유주의는 그 이전 시기부터 서양으로부터 수용된 것이기는 하지만 자유주의 자체가 논의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의 일이다. 그 이전까지는 자유주의 대신에 자유민주주의가 논의와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자유민주주의의 제도는 제헌헌법의 수립과 함께 도입되었으나, 자유민주주의에 관한 논의 자체는 오히려 이승만 정부에 대한 비판과 반대로부터 촉발되었다. 또한 자유민주주의 개념의 의미 변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계기는 유신체제의 등장과 민주화였다. 유신체제는 또한 자유민주주의와의 관계에서의 통일 개념의 의미에 관해서도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유신헌법이 표방한 반공주의 이념 및 사실상의 대통령 종신 독재 제도와 결부된 자유민주적...
[사회/문화]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남북한 관계와 통일 문제 그리고 학교 통일 교육의 핵심을 파악하는 안내서”이다.
1장. 자유주의 및 공동체 주의 사상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중요한 이념 중의 하나인 자유주의, 그리고 현대 자유주의가 안고 있는 이론적, 실제적 문제점에 대한 대안으로서 공동체주의를 다룬다.
이 장은 자유주의 사상의 흐름을 고전적 자유주의, 복지 자유주의, 현대의 자유주의로 구분해 살펴본다. 그리고 공동체주의 사상은 샌델과 매킨타이어를 중심으로 전개하며,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논쟁을 인간관, 반사회적 개인주의, 보편주의, 주관주의/객관주의, 반완전주의와 중립성이라는 다섯 가지 논제로 검토하고 있다.
[학술논문] 1950년대 동아시아의 반공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재검토 -『自由中國』과 『사상계』의 대항담론 형성 가능성-
...1950년대의자유주의자들이 내린 반공의 선택이 다른 모든 것을 결정해린 것처럼 보는견해는 1950년대를 해석하는 다른 가능성을 봉쇄해버릴 수 있다. 50년대자유 민주주의와 반공의식은 한측면에서는 체제 이데올로기를 강화해간 측면이 있지만, 다른 한 측면에서는 냉전이라는 극히 제한된 이데올로기적 공간 속에서 대항담론으로서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동아시아50년대의 자유주의는 서양에서와 같이, 또는 현재의 동아시아 자유주의자들처럼 계급적 기반을 갖지 못했다. 이로부터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있는데 동아시아 자유주의의 계급적 기반의 부재는 그들의 유약성을 말할수 있는 근거가 될 있지만 또한 그것이 없기 때문에 더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는 서양과는 다른 자유주의 버전이 있을 수 있었음을 암시하는...
[학술논문] 「분지」를 읽는 몇 가지 독법 - 남정현의 소설 「분지」와 1960년대 중반의 이데올로기들에 대하여
...것이다. 한편 비판적 자유주의자였던 김수영이 「분지」를 읽었던 방식을 놓쳐서는 안된다. 김수영의 독법을 추측하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비판적 자유주의가 저항담론의 다른 축인 진보적 민족주의를 어떻게 대타화하고 인식했는가를 살피는 작업이며 동시에 이 두 축이 어떻게 자기 위치를 잡아나가는가를 살피는 작업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김수영에게 있어 민족주의는 다소 ‘비과학적인’, 그래서 ‘위험한’ 것이었다. 그는 민족주의에 내장된 맹목성을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요약해 본다. 남정현의 「분지」를 해석하는 심급은 확실히 신민족주의 혹은 반제 민족주의 담론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분지」를 가장 ‘정확하게’ 읽은 쪽은 역설적으로 말해 반공국가권력의 장치였던 검찰과...
[학술논문] 1950~60년대 반공주의 담론과 감성 정치
... 논리로서의 반공주의 ③ 자유주의/개인주의/휴머니즘 옹호 논리로서의 반공주의 ④ 자본주의체제 수호 논리로서의 반공주의 ⑤ 반독재 민주화 정서로서의 반공주의 ⑥ 근대화/개발 논리로서의 반공주의 ⑦ 계급감정으로서의 반공주의 ⑧ 반통일 정서로서의 반공주의 ⑨ 반민주화 논리로서의 반공주의 ⑩ 반민족/반북 정서로서의 반공주의. 이처럼 반공주의는 민족과 반민족, 민주화와 반민주화, 통일과 반통일이 혼재된 상이할 뿐만 아니라 상충되기까지 하는 다양한 사고와 감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면적, 중층적, 모순적이다. 대략적으로 1950년대의 반공주의는 반공=민주주의=反독재→反정권으로 귀결된 반면, 1960년대에는 반공=反용공=反反독재=反민주주의→反反정권으로 의미화 된다고 할 수 있다. 반공주의는 다양한...
[학술논문] 1950년대 후반~1960년대 초반 ‘사상계 경제팀’의 개발 담론
...경제팀’을 비롯한 지식인들이 군사정권의 경제정책에 호응하였던 것은 군사정권이 이들이 구축해온 개발 담론을 적극적으로 전유해가고 있었기때문이었다. 사상계는 분명 반공 민족주의, 근대주의로 가득 찬 텍스트이다. 그러나20세기는 민족주의와 근대주의의 시대였고, 식민지에서 해방된 직후 냉전과 분단, 전쟁과 전후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 휘말려 있던 한국 지성계가민족주의와 근대주의를 넘어선다는 것은 어쩌면 그 시점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히려 우리는 한국의 지성계가 축적해온 개발 담론이 군사정권의경제개발계획에 일정하게 반영되면서 자본과 시장 주도의 자유주의가 아니라 국가 주도의 계획이라는 방식으로 정초된 점에 주목해야 한다. 6․25 전쟁 후와 군사정권 등장 후 균등경제와 공익실현을 위해 마련되었던 헌법 조항들이 대폭...
[학술논문] 1950~70년대 ‘사상계’ 지식인의 분단인식과 민족주의론의 궤적
‘사상계’ 그룹은 해방후 한국의 자유주의 지성을 대표하는 지식인 집단으로, 이북 출신, 숭실ㆍ오산ㆍ한신 학맥, 학병 세대라는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同人的 결사를 유지하였다. 분단과 전쟁을 거치며 사상계 지식인들은 자유세계 대 전체주의 국가의 대결구도로 냉전 상황과 대면하였다. 그래서 그들의 공산주의 비판에는 공산 독재 내지 공산 전체주의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종속적 위치에 있기는 했지만 파시즘 독재에 대한 비판이 뒤따랐다. 그러한 면에서 그들의 냉전인식은 극우 반공주의와 구별되는 반공 자유주의로 대변되었다. 그런데 사상계 지식인들의 자유세계론은 그들의 후진성 콤플렉스와도 관련하여, 서구적 보편에 대한 특수의 자리를 좀처럼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독자노선으로 등장한 아시아적 제3세력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