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청동기~철기시대 중국 동북 지역 물질문화의 전개와 상호 작용 및 족속
...및 遼西의 魏營子類型은 청동예기의 族徽 등에 언급되어 있는 일부 족속 및 그의 선계와 연관이 있고, 燕山山地의 東南溝-玉皇廟文化는 山戎族, 內蒙古 東南部의 夏家店上層文化는 東胡族의 선계 諸族, 水泉類型은 東胡族, 遼寧省·吉林省 中部·延邊朝鮮族自治州·沿海州 南部·韓半島는 濊貊系 제 족속, 十二臺營子文化期 遼寧의 일부와 초기철기시대의 西北韓은 古朝鮮에 해당된다. 또한 內蒙古 東北部의 哈烏拉文化는 몽골 동부와 외바이칼호 일대의 족속, 扎賚諾爾類型은 익히 알려져 있는 것처럼 拓拔鮮卑族의 선계와, 黑龍江省과 吉林省 西部의 白金寶文化부터 紅馬山文化까지는 고대 중국에서 鮮卑·烏桓은 물론 東夷 제족과도 구분되는 北夷로 인식한 별개의 족속과 연관이 있다. 또한...
[학술논문] 청동기~철기시대 요령·서북한 지역 물질문화의 전개와 고조선
청동기~철기시대 전기 요령~서북한 지역의 물질문화는 기원전 3세기 전국연문화가 요서와 요동 등지의 일부 지역에까지 확산됨에 따라 커다란 변동을 겪게 된다. 이 가운데 대동강~재령강 유역의 정백동유형 전기는 이 지역 토착의 신흥동유형이 아닌 십이대영자문화 정가와자유형을 직접적인 계보로 하여 형성되었을 뿐 아니라 후기의 물질문화 양상이 위만조선과 낙랑군에 대응된다는 점에서 진개 침공 이후 이 일대로 밀려난 준왕의 고조선과 준왕으로부터 정권을 빼앗은 위만조선에 의해 남겨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십이대영자문화 정가와자유형을 준왕 이전의 고조선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위략』의 조선후 기사와 부합하는 것은 심양의 정가와자유형이 아닌 객좌의 남동구유형이다.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게 된 까닭은 십이대영자문화권이 기원전...
[학술논문] 1950년대 〈춘향전〉 중국공연의 자료적 고찰
...경극(京劇)춘향전, 1956년에 평극(評劇)춘향전이 중국에서 공연되었다. 또한 1954년 북한 국립민족예술극단 방화( )공연단이 춘향전을 북경에서 공연했다. 이후 1959년 북한영화 춘향전을 번역판이 중국에서 상영되었으며 1961년 상해월극단은 다시 북한을 방문하여 월극춘향전을 공연하였다. 이와 같이 춘향전은 1950년대부터 북경을 비롯하여 상해, 운남, 소주, 요령 등지에서 월극, 경극, 황매희, 조극 등으로 중국에서 다시 태어났다. 특히 광동성의 에 근거를 두고 있는춘향전 창곡집 표지에 1938 3 이라고 쓰였는데 그 공연여부는 알 수 없다. 이러한 중국의 춘향전 공연을 통한 문화교류활동은 전통극의 전파에도 기여하였다. 춘향전 중국공연의 각종 자료를 살필 때, 1950년대 비극적인 한국전란 중에 그 예술적 싹이 터서...
[학술논문] 遼東~西北韓地域의 細形銅劍文化와 古朝鮮 - 위만조선 물질문화의 형성과정과 관련하여 -
...세형동검문화는 여순 윤가촌 유적으로 대표되며, 적석목관묘형 묘제와 직인형의 윤가촌식동검, 파수부호와 두형토기 등의 유구․유물 복합체가 특징적인 양상을 나타내고 있어 ‘윤가촌유형’이란 지역단위 문화유형으로 설정된다. 요동 동부지역의 세형동검문화는 적석시설이 부가된 석관묘나 대석개묘가 주된 묘제이고, 검신 하부가 불룩하거나 턱이 진 상보촌류동검, 요령식 동과, 세형동모류 등의 특징적인 청동무기류와 엽맥문 청동기 등이 부장되는 점이 특징이다. 서북한지역에는 요동 동부지역의 문화요소들이 먼저 확인된다. 특히 유사 형식의 청동무기가 일정한 분포정형을 나타내며, 동종동류의 청동유물이 확인되는 것이 주목된다. 이는 고조선의 중심지 이동 후 기원전 3세기대의 문화 양상으로 볼 수 있다. 이후에는 윤가촌유형의 요소들이...
[학술논문] 朝鮮歷史編纂委員會의 설립과 북한 고조선 연구의 개시(1947~1950)
...1949년 홍기문에 이어 1950년 정세호ㆍ정현에 의해 고조선 관련 연구논문이 발표되었다. 홍기문은 일제시기 일본인 역사학자의 조선사 타율성론을 비판하고자 낙랑군과 고조선의 위치를 새롭게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어 정세호와 정현은 문헌을 중심으로 고조선과 낙랑군의 위치가 한반도 북부가 아니라 요령지역에 있었다고 강조하였다. 홍기문ㆍ정세호ㆍ정현은 모두 김두봉과 연관되었는데, 비록 입장의 차이는 있었지만 신채호의 고조선 연구를 참고ㆍ수용했다. 향후 북한학계는 고조선의 위치를 요령지역에 비정하는 것을 공식적인 입장으로 채택했다. 또한 신채호의 한국고대사 연구를 수용했다. 이 점에서 『력사제문제』 수록 고조선 관련 연구는 북학학계의 방향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연구사적 의의는 여기서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