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한국 강제병합 100년과 일본 사회의 동향
2010년은 한국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해였다. 한국을 강점한 식민지 모국으로서 일본이 2010년을 어떻게 기념하였는지는 식민지였던 한국인들로서는 중요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본고에서는 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한국강제병합 100년과 관련하여 이루어진 일본의 국내 동향을 정리하였다. 2010년 9월의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중일 간의 갈등,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서의 일본의 지위붕괴와 중국의 부상 등 변화된 동북아 국제정세 속에서 이루어진 '100년'이었기 때문에, 동아시아 전체사 속에서 양국사가 어떻게 기념되는지는 향후 한일관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테마이다. 2010년 4월에 이루어진 공동여론조사에 의하면, 일본의 경우는 한국의 경제적 발전을 인정하고 있고 향후 한일관계를 낙관적으로...
[학술논문] 냉전기 일본 진보파 지식인의 한국 인식 - 『세카이』의 북송·한일회담 보도를 중심으로 -
...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도 북송이 재일조선인 추방사업이라고 하는 인식은 결여하고 있었다. 한편 한일회담에 대해서도 대미 자립 외교, 신식민주의적 자본 진출 비판, 분단 고착화 저지, 동아시아 평화 유지 등을 내걸고 반대의 논진을 폈지만, 남한의 반대 이유였던 식민지 지배의 책임 문제에 대한 인식은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현저히 결여되어 있었다.
[학술논문] 일본어의 영향에 대응하는 한국어 복언(復言)의 발전적 전개 양상 -근·현대 남·북한의 신문 문장을 중심으로-
近代以降、日本による植民地支配によって韓半島全体で日本語の借用語が多く使われていた。しかし、南北両国が開放されて以降、日本語の残滓をなくそうと韓国語を使う運動が積極的に起き、純粋な韓国語が正しく普及されており、近年これに対する研究が活発に行われている。本研究では、日本による植民地支配以降、60数年が過ぎた今日の南北の言語が日本語の影響から抜け出し、純粋な韓国語への復言化がどのように進んでいるのかについて、1920、30年代の近代の新聞と南北両国の現代の新聞に使われている日本語の借用語と純粋な韓国語の実証的な考察を通して、共時的・通史的に対照分析を行ってみた。その結果、開放以降60年が過ぎたが、南北間の言語すべてに今でもなお残滓がかなり見られた。しかし、開放以降国家的、社会的次元で日本語の浄化作業が長い間行われてきた結果、日本語式の語彙の使用が次第に減り、純粋な韓国語の新語が使われているの...
[학술논문] 해방기 자전적 소설의 고백과 주체 재생의 플롯 ― 채만식 「민족의 죄인」, 이기영 「형관」 연구
...「민족의 죄인」과 이기영의 「형관(荊冠)」은 식민지 시기의 경험을 고백하는 과정을 통하여 해방기 내에서 주체의 재정립을 꾀한다. 채만식의 「민족의 죄인」이 자신의 대일협력을 고백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복원하고자 한다면, 이기영의 「형관」은 도덕적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과 노동의 의미 복원을 통해 새로운 국민국가 건설의 주체가 되고자 한다. 「민족의 죄인」은 역사의 반복 내에서 한 인물이 생존하기 위한 필요악으로 대일협력이 선택되었음을 역설하는 동시에 윤리적인 순수성을 지키지 못한 그 자신의 절개를 비판함으로써 이중의 전략을 구사한다. 화자는 그 스스로의 도덕적 타락을 비판함으로써 한 인물을 패배자로 만드는 역사적 상황을 토로하는 것이다. 이는 일본의 식민 지배와 급작스러운 해방이라는 급격한 역사의 진행에서...
[학술논문] 사할린 한인 귀환을 둘러싼 배제와 포섭의 정치 - 해방 후∼1970년대 중반까지의 사할린 한인 귀환 움직임을 중심으로
...사할린 한인의 문제를 일본의 식민지 지배 책임의 문제로 제기하지 못했다. 단지 북한과의 체제경쟁 속에서 일본의 ‘재일조선인 북송문제’를 비난하면서 사할린 한인의 한국 귀환을 요구했다. 이러한 입장은 사할린 한인 문제를 식민지 지배책임의 문제라기 보다 냉전의 문제로 치환되는 원인이 되었다. 일본 또한 사할린 한인의 문제에 무관심과 무성의로 일관했다. 한국과 일본의 이러한 태도가 사할린 한인을 방치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사할린 한인 귀환문제가 한국정부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게 된 것은 한일협정이 체결된 직후인 1966년부터이다. 이것도 한국정부의 일본에 대한 식민지 지배 책임에 대한 문제제기라기 보다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구명운동에 대한 일종의 면피성 대응과 일본의 ‘재일조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