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논문] 이산가족 상봉의 사회적 의례 효과 연구 -이산가족 상봉의 재현, 의미, 문화적 상징을 중심으로
본 연구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분단사회가 만들어 낸 독특한 문화적 실천이자, 상징적 의례로 분석한다. 이산가족 상봉은 단순히 흩어진 가족들의 재회를 넘어, 분단사회의 역사적 맥락과 사회적 구조를 재생산하는 중요한 현상으로 작동해왔다. 이에 본 연구는 이산가족 상봉 현장을 ‘사회적 의례’로 탐구하여, 분단사회가 이산가족의 상봉을 어떻게 재구성하여 새로운 의미를 창출, 강화하였는지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사회학자인 뒤르케임의 집합 의례와 고프만의 상호작용 의례를 이론적 틀로 삼아 이산가족 상봉이 가족 구성원들의 개인적 경험에 국한되지 않고, 남북한이라는 집단적 정체성과 도덕적 기준이 드러나는 상징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밝혔다. 특히 본 연구는 상봉 과정에 내재되어 있는 성(聖)과 속(俗)의 이항대립적 구조가
[학술논문] 재일조선인의 ‘귀국’을 위한 문화운동 –<조선민보>의 “단편소설 리레”를 중심으로–
1959년 12월부터 시작된 ‘귀국사업’은 일본, DPRK, 국제적십자사가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합동으로 진행하였다. ‘귀국사업’ 과정에서 총련은 DPRK의 지원을 받아 적극적으로 ‘귀국’을 위한 ‘문화운동’을 전개하였다. ‘귀국’을 선전하기 위해 DPRK에서 문화·예술인이 동원되었듯이 총련에서도 문화·예술인이 동원되었고 그중에는 귀국한 예술가도 적지 않았다. ‘귀국운동’ 초기에 독자의 요구에 의해 조선민보에 ‘귀국’이라는 주제로 “단편소설 리레”가 게재되었다. ‘릴레이’형식의 연재소설에 작가 김민, 류벽, 리은직, 윤광영, 허남기가 참가하였는데 이들의 각 작품은 비교적짧은 작품이지만 상당히 함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의 ‘귀국운동’이라는 주제에서 벗어난 작품도 있지만전체적으로 ‘북으로 간다’는...
[학술논문] ‘Separated Korean Families’ As A Human Rights Issue
남북한 적십자사는 1971년부터 40년의 세월이 경과하는 동안 남북의 이산가족의 고통을 완화시키는 방안을 협의하기 위하여 도합 150회의 회담을 개최해 왔다. 그러나 그 결과는 매우 실망적이다. 남한에서는 2000년 도합 125,000명의 실향민(IDPs)들이 적십자회담이 주선하는 이산가족 상봉에 참가하겠다고 신청했다. 그러나 그 동안 적십자회담이 성취한 것은 한 번에 한 쪽에서 100명이 참가하여 철조망이 쳐지고 무장한 북한군이 경비하는 북한의 한 지역에서 3박4일의 일정으로 만나고는 다시 헤어지는 방식의 ‘상봉’이었다. 적십자회담의 주선으로 그 동안 남북간에는 18회의 그러한 ‘상봉’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125,000명의 남측 신청자 중 ‘상봉’에 참가하는 데 성공한 이산가족은 1,700여 명에 불과하다...
[학술논문] 대한적십자사 초대 사무총장 손금성의 의료 수련과 적십자활동
이 논문은 개성 출신의 의사로 대한적십자사의 사무총장으로 활동한 손금성의 의료 수련과 적십자 활동에 대하여 살펴본 글이다. 이글을 통해 첫째 그의 개성 한영서원 수학과 독립만세운동 참여, 둘째 미국 필라델피아 하네만의과대학 유학, 셋째 해방 후 대한적십자사 조직과 적십자 활동, 넷째 대한의학협회와 적십자의 발전을 위한 제언 활동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이 연구를 위하여 대한적십자사 관련 책자와 논문, 신문, 문서 등을 활용하였다. 먼저 대한적십자사와 적십자병원과 간호학교 등에 관한 논문과 저서를 활용하였다. 손금성의 국내 수학과 미국 유학, 미국에서의 민족운동 관련하여 국내에서 발간되던 『동아일보』와 『경향신문』 등과 미주에서 발간되던 『신한민보』 등의 신문을 활용하였다. 그리고 손금성 작성 「赤十字의 祕史」
[학술논문]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 김신실의 활동(1954~1960)
...적십자 국제활동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김신실은 제1공화국 시기 1954년 아시아민족반공연맹 초창기부터 활동하였으며, 적십자사의 사무총장에 임명되어 제19차 뉴델리 국제적십자위원회에 참가하는 등 납북인사 문제 해결에 힘썼다. 회의 마지막 날인 11월 7일 북한측은 실향사민 7,034명 중 337명 생존자 명단을 국제적십자사를 통해 대한적십자사 대표에게 전달하였다. 김신실이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던 50년대 중반 이승만 정부는 아시아민족반공연맹과 세계반공연맹을 주도적으로 창설하였으며, 반공의 큰흐름 안에서 일본의 반공노선에 회의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반일노선으로 나타났다. 세계적인 냉전체제 속에서 아직 한국전쟁의 영향이 지대했던 당시의 상황 속에서 남북한 적십자사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