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군사]
...항일 민족주의자와 국내의 온건한 민족주의자, 북에서 내려온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이 단결, 통합하여 김일성. 박헌영 세력과 소련 제국주의에 피로써 지켜낸 ‘친일파의 나라가 아니라 민족주의자의 나라’라고 주장한다.
친일 청산의 문제에 있어서는 1950년 5월의 2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조봉암, 조소앙과 안재홍 등의 진보적 인물들과 정치적 유동성이 풍부한 무소속의원이 대거 당선되어, 국회에서 선출하는 간선제 대통령을 통한 정권교체, 친일 청산이 충분히 가능했는데도 직후인 6·25전쟁 때문에 모든 것이 무산된 것은 천추의 한이며, 북한이 적반하장으로 한국을 비난하는 것은 지독한 선전·선동이라고 지적한다.
대한민국에는 임시정부의...
[사회/문화]
...평화권이 그러하다. 한국 평화학에서 인권문제가 갖는 특수성과 보편성을 균형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한국 평화학의 깊이와 그것이 세계 평화학에 기여할 잠재력을 잘 보여줄 것이다.
평화주의 시각에서 분단정전체제를 분석할 때 그 대안은 무엇인가? 통일은 민족주의의 틀에 갖춰버려진 비원(悲願)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통일이 되면 평화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가? 시대 변천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진보·보수를 불문하고 그동안 통일 담론이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틀에서 운위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럼 통일문제는 운명적으로 세계와 호흡하지 못하고 그 정당성은 과거를 호명하는 데서만 찾을 수 있는가? 세계시민주의와 같은 담론은 통일과 소통하지 못하는가? 다시 말해 평화학의 시각에서 한반도 통일문제를 어떻게...
[학술논문] 김수영의 전통 인식과 자유주의 재론 -「거대한 뿌리」(1964)를 중심으로-
...한일회담이 본격화되면서 진보적 민족주의 담론이 확대된 무렵이자, 박정희의 관제적 민족주의가 강력해진 때였다. 그러나 김수영은 민족주의 이념에 근거하여 전통을 강조하지 않았다. 예컨대 이 시의 첫 연에서 ‘김병욱’은 단순히 ‘북쪽 시인’이 아닌 해방기에 가능했던 리버럴한 정체성의 전형으로 등장하여 민족주의 이념을 넘어 전통을 재인식할 실마리를 제공하였다. 김수영이 보기에는, 한일회담 이후 다시 고개를 든 저항적 민족주의는 자주독립이라는 해방기의 역사적 과제를 재소환 했음에도 반공 이데올로기를 극복하지 못한 채 민족의식만 격상시킨 “쇼비니즘”(「참여시의 정리」, 1967)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었다. 이 ‘투박한 민족주의’는 김수영에게...
[학술논문] 문학의 정치 : '문사연'의 새로운 20년을 위하여
이 글은 민족문학사연구소(약칭 ‘문사연’) 창립 20주년을 기념하는 4차 심포지엄(부산대, 2010.12.22)에 제출된 발제문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알다시피 ‘문사연’은 학문을 통해서 나라의 민주화와 민족의 통일에 기여하고자 한 진보적 학술운동의 일환으로 창립되었다. 그런데 약칭에서 ‘문’이 강조되듯이 ‘문학’의 근본적 차원을 중시한 ‘문사연’은 문학연구를 제대로 수행하는 것에 의해서 운동에 기여하고자 하였으니, 통일문학사를 준비하는 전망 아래 고전문학과 현대문학 양자를 아우르는 ‘한국문학통사 다시 쓰기’라는 공동작업을 추진함으로써, 분야를 넘어, 학연(學緣)을 넘어, 민족문학론...
[학술논문] 「분지」를 읽는 몇 가지 독법 - 남정현의 소설 「분지」와 1960년대 중반의 이데올로기들에 대하여
...해석의 코드란 바로 당시 전 세계적인 관심사였던 제3세계 신민족주의였다. 매체 상으로 [청맥]과 재일교포 잡지 [한양]이 이 기반에서 담론을 생산하고 있었다. 신민족주의의 맥락에서 한국 민족주의 운동은 자연스럽게 ‘반미’의 과제로 연결되었다. 미국이 한국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은 이 시기의 진보 민족담론 진영의 글들 도처에 나타난다. 결과적으로 남정현의 「분지」를 당시 진보 민족담론의 맥락에서 읽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던 것이다. 한편 비판적 자유주의자였던 김수영이 「분지」를 읽었던 방식을 놓쳐서는 안된다. 김수영의 독법을 추측하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비판적 자유주의가 저항담론의 다른 축인 진보적 민족주의를 어떻게 대타화하고 인식했는가를 살피는 작업이며 동시에...
[학술논문] 북한 고등중학교 민요 교육의 음악적 고찰
...신민요를 개작한 개작민요와 신민요스타일로 만들어낸 민요풍의 노래가 사용되었음을 보았다. 또한 음구성으로 보아 메나리토리로 보이는 <풀무타령> 한 곡을 제외하고는 모두 경토리 선율의 곡이었으며, 지역성도 무시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북한 고등중학교 민요 교육은 북한이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민족주의를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맞물린다. 1946년부터 시작된 북한의 민족문화수용원칙인 전통문화유산 중 진보적이고 인민적인 것을 비판적으로 계승발전시키다는 원칙은 민요에 적용되어 피지배 인민들의 삶 속에서 만들어진 민요를 중시하되, 노래에 현 시대의 내용을 담기위해 가사의 개작을 당연시 해왔다. 또한 조선민족제일주의가 주창된 이후 북한에서는 민족적 색채가 강한 민요의 강조를 통해 조선민족제일주의의 강화를 꾀하고...
[학술논문] 개성공단 북한 근로자에 대한 남한 주민의 태도에 관한 연구
...북한근로자 만남 빈도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개성공단에 상주하지 않는 사람이 상주하는 사람보다, 매일 만나지 않는 사람이 매일 만나는 사람보다 한 근로자에 대한 신뢰와 수용의 수준이 높다는 점은 매우 인상적이다. 개인적 특성으로는 정치적 입장, 한민족에 대한 자랑스러움 여부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진보적인 입장이 보수적인 입장보다,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사람이 민족주의적 성향이 약한 사람보다 북한 근로자에 대한 신뢰와 수용의 수준이 높다는 점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한편 개성공단을 통한 접촉 이후 남한주민들은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들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종전보다는 더 가깝게 느껴졌지만 그 정도는 그다지 크지 않으며, 가족을 이루어 살게 되어도 괜찮겠구나라는 생각이 더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