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북, 중·러 접경에 외식인프라 확충…청진에 대형식당 개업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북한이 중국, 러시아와 교류가 많은 함경북도 청진에 대형 식당인 '청진관'을 개업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4일 청진관 개관식이 열렸다고 25일 보도했다. 고기쟁반국수과 냉면 등을 팔며 대형 연회장도 갖췄다. 한옥 형태의 지붕을 올린 2층 건물에 여러 동이 있어 한 번에 수백명을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뉴스] "모가지 따러 왔수다"…공비→목사 '靑습격사건' 김신조 별세(종합)
1968년 박정희 대통령 살해를 목표로 이른바 '1·21 사태'로 불리는 청와대 습격사건을 일으킨 북한 무장공비들 가운데 유일하게 투항한 요원으로, 귀순해 목사로 활동한 김신조 씨가 9일 별세했다. 향년 83세.
서울성락교회 등에 따르면 김씨는 이날 새벽 세상을 떠났다.
[정치/군사]
...초토화 폭격〉을, 2024년에는 두 번째 편으로 〈당신이 보지 못한 한국전쟁: 삐라 심리전〉을, 그리고 2025년 6월에 이 3부작 시리즈 세 번째 편이자 완결편인 〈당신이 보지 못한 한국전쟁: 포로와 판문점〉을 펴냈다.
〈당신이 보지 못한 한국전쟁: 포로와 판문점〉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뉴스타파 해외사료수집팀이 미국 국립문서기록청(NARA) 등에서 수집한 한국전쟁기 포로와 판문점 관련 사진과 영상, 도면, 지도 등을 선별해서 수록했다. 또 공동 편저자인 성공회대 전갑생 교수와 뉴스타파 김용진, 최윤원 기자가 해제를 붙였다.
해마다 6.25가 다가오면 각 매체는 앞다퉈 특집기사나 프로그램을 내놓는다. 하지만 대부분 전황이나 영웅담 발굴 소개 등 비슷비슷한...
[통일/남북관계]
...서울변호사회 중국문화연구회 회장, 서울지역 통일교육위원을 맡고 있다.
이 소설은 21세기 오늘의 세계와 한반도의 문제, 그리고 통일 담론을 그 주제로 삼고 있다.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이 저자는 한반도 역사상 최초로 통일을 기획하고 추진하여 성공에 이르게 한 전략가 “춘추공에게 후손으로서 꿈에서라도 오늘의 과제와 문제에 대하여 조언을 청하고 대화하고” 싶은 바람으로 춘추공을 오늘 이 시대에 소환하였다.
저자는 오랫동안 김춘추에 관한 역사 자료와 평전을 두루 살펴보았다. 그리고 중국과 일본의 관련 기록, 김춘추와 동시대인인 당의 이세민, 고구려의 연개소문, 왜의 나카노오에에 관해서도 자료를 연구하며 2년에 걸쳐 소설 집필을 완성하였다.
김춘추 시대인 7세기...
[정치/군사]
...아프카니스탄을 점령하자 인도양 진출도 막히게 되었다. 러시아는 이제 남은 지역인 아시아 쪽으로 눈을 돌리며 한반도에서 일본과 대립하게 되었다. 일본은 영국과 미국을 등에 업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 조정은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혁명, 을미사변(민비시해) 등 변란이 있을 때마다 청나라에 군대 파병을 요청하는가 하면 고종을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시키기도 했다. 청과 러시아에 의존하고 일본을 기웃거리기만 할 뿐 국제정세를 바로 보지 못한 조선은 결국 망국에 이르게 된다.
이 책 〈미·중 패권경쟁 승자와 손잡아라〉의 저자 임방순은 역사에는 가정이 있을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수시로 “~했다면”을 꺼내 들어 우리의 앞날을 예시하고 있다. 이 책의 부제인 “누가...
[사회/문화]
...개화기를 규정하는 시점과 교육과정에서의 시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이는 이 책의 각 장이나 부록의 표에서도 그 관점이 소개된다. 예컨대, 개화기의 시작을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교육학 분야에서는 1894년의 갑오개혁부터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제7장에 서술된 바와 같이 1881년 조선 정부가 처음으로 신식 기술 습득을 위해 중국(청, 靑)에 영선사(領選使)를, 일본에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을 파견하고 이후 외국어 통역과 신식군대 양성에 필요한 최초의 근대적 관립 학교를 세웠기에 1881년을 시작점으로 하였다. 그리고 일제의 조선총독부에 의해 국가적 교육권이 완전히 장악되어 제1차 조선교육령이 반포되기 직전인 1910년까지를 개화기로 설정하였다.
1945년...
[정치/군사]
17세기 명·청 교체, 19세기 서세동점, 20세기 냉전, 그리고 21세기 오늘날. 주변 정세가 크게 요동치는 시기마다 한반도는 거의 예외 없이 변화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있었다. 여러 차례 벌어진 전쟁, 국권상실, 분단 등 정치적 갈등과 긴장 관계의 끊임없는 연속은 특히 한반도가 세계정세, 국제정치와 긴밀하게 얽혀 있음을 말해 준다. 이 책은 한일 관계를 중심으로 근현대의 국제사회, 국제정치의 변동을 살펴본다. 한일 관계를 두 나라 간의 관계로만 국한하지 않고 세계적인 차원에서 국제관계의 흐름과 동아시아 지역 정세, 그리고 양국의 국내 정치 상황을 고려하면서 그 전개 과정을 보여 주는 것이다. 나아가 구조와 과정을 동시에 살핌으로써 개별 사건을 넘어 그 맥락을 짚을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한다...
[학술논문] 식민사관에 의한 가야사연구와 그 극복
가야사연구는 征韓論, 청·일전쟁, 강제병합의 과정 속에서 이루어졌다. 타율성이라는 식민사관을 바탕으로 ‘임나일본부설’이 만들어졌고, 임나일본부설을 증명하기 위하여 가야사가 연구되었다. 이러한 가야사연구는 한·일 양국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못했다. 1980년대 이전까지의 가야사연구는 임나일본부에 대한 긍정과 부정을 위한 근거제시에 불과했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 그리고 한일관계에 대한 객관적인 역사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것이 가야사의 불행이었다. 가야사연구는 더 이상 과거 일본의 제국주의사학자들이 내세웠던 ‘일선동조론’이나 북한사학자가 주장하는 ‘분국론’같이 민족적 자존심을 만족시키는 내셔널리즘이 되어서는 곤란하며 현대적...
[학술논문] 다산 정약용의 문헌해석방법과 필롤로지philology
...집중되어 있었고 상고음 체계를 연구한다든가 음운의 변화를 분석하는 학문은 발달하지 않았다. 조선에서는 오역吳棫『운보韻補 』의 협운설叶韻說이나 소장형邵長蘅 『운략韻略 』의 통운협운설通韻叶韻說을 주로 수용하였다. 다산도『논어고금주 』의 논의에서 협운설을 그대로 따르고 있고 상고음운부설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3 다산은 문헌연구에서 중국의 고전 문헌들이 최초 성립에서 완정성完整性을 지녔으리라 전제했기 때문에 문헌의 성립 층위에 대한 고찰이 부족하다. 그러나 문헌의 문맥적 해석에서 소학의 방법론을 적용하여 자구문문단문헌의 조직을 파악한 점은 기존 주석구주와 신주 이하 명청의 주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주 이하 명청의 주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학술논문] 「고요한 돈」의 한국어 번역 판본 비교 - 백석 번역본을 중심으로 -
...풀린 때를 맞아 출판사 일월서각과 문학예술사에서는 거의 동시에 「고요한 돈」 전체를 일곱 권의 책으로 묶어냈다. 일월서각본은 일본의 횡전서수(橫田瑞穗)가 번역한 판본을 이중번역한 것이고 문학예술사본도 대부분의 문장표현이 일월서각본과 같아서 번역텍스트로 일본어본을 이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후에도 「고요한 돈」은 몇 차례 더 번역된다. 동서문화사와 청목사에서 똑같이 작품 전체를 두 권 분량에 담아냈다. 그러나 이렇게 여려 차례 번역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번역의 질은 그다지 개선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오랫동안 실전된 것으로 여겨졌던 백석 번역본이 발굴되었다. 남경대학 윤해연 교수가 북경국가도서관에서 찾아내 고려대 최동호 교수에게 복사본을 전달함으로써 그 존재가 확인되었다. 백석본 「고요한 돈」은 다른 한국어...
[학술논문] 그 이름 불러주기 ― 실록의 조선ㆍ청나라 호칭(互稱) 분석
二十世紀東亞國家之間的互稱顯示出如何認爲對方。韓國所用的南韓․北韓․中國․臺灣, 朝鮮所用的北朝鮮․南朝鮮․中國․臺灣, 中華人民共和國所用的韓國․朝鮮․臺灣, 日本所用的韓國․朝鮮․中國․臺灣, 這些互稱都反映着各國如何定位對方。除現在國家之間的互稱外, 過去東亞國家之間的互稱也反映一个國家定位對方的方式。滿人宣言‘我們是滿人’之前, 他們被明朝定爲女眞。明朝永樂帝設置衛所管轄統制東北, 將該地部族劃分爲建州、海西、野人女眞。但是被稱爲女眞的部族並不放棄原來名稱。兀良哈、斡朶里、兀狄哈長期保持自己的部族名, 海西女眞從1550年代開始自稱爲葉赫、烏拉、哈達、輝發, 明確他們的整體性。『明實錄』將女眞記爲野人、夷人、貢夷, 野人意味文化落後的部族, 後兩個名稱意味獻上貢物的集團。'朝鮮王朝實錄'將女眞記爲野人、胡人、彼人。可見, 明朝也好, 朝鮮也罷
[학술논문] 근현대 한국인의 중국 인식의 궤적
...구분하여 중국 인식의 전개 과정을 추적하였다. 청일전쟁은 전통시기 한국인의 중국 인식을 결정적으로 변화시킨 중요한 계기였다. 중국 중심에서 일본 중심으로 동아시아 국제질서가 변동되는 의의를 가지는 청일전쟁을 거치면서 중국은 부정적인 인식의 대상으로 간주되었다. 소중화주의(小中華主義)에 입각한 기왕의 대청(對淸) 인식에 서구 문명론이 새로이 가미되면서, 중국(청)은 ‘문명개화의 낙오자’이자 조선 근대화의 장애물로 타자화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의 중국 멸시관이 확산되는 한편 일상생활에서 중국인이 한국인을 억압하고 생존까지 위협하는 ‘인정 없고 비열한 존재’로서 경험되면서 청일전쟁 이후 중국에 대한 한국인의 부정적 인식은 한층 더 강화되었다. 그러나 비록 일제 강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