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북, '6·25 때 미국 무기 격퇴' 주장…노골적 비난 없어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북한이 6·25전쟁에서 미국의 주요 무기를 파괴했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며 반미 메시지를 발신했다.
조선중앙통신은 26일 평양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사적 및 공훈무기 전시장에 전시된 추격기 3대와 어뢰정 1척을 소개했다.
[뉴스] 북한, 6·25 전승세대 띄우며 "사상정신 계승" 촉구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북한은 26일 조국해방전쟁이라 일컫는 6·25전쟁 참전 세대를 띄우며 이들의 사상 정신을 계승하자고 촉구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1950년대 영웅세대들처럼 살고 있는가' 제목의 4면 기사에서 참전 노병들을 "위대한 전승세대"라고 찬양했다.
[뉴스] 김정은, 6·25정전일 맞아 우의탑 헌화…'북중친선' 언급도 없어(종합)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전협정 체결 72주년(7월 27일)을 맞아 6·25전쟁 참전 중국군을 추모하는 우의탑을 찾았다.
조선중앙통신은 27일 김 위원장이 전날 우의탑을 방문해 헌화한 뒤 "조국해방전쟁의 위대한 승리사에 아로새겨진 중국인민지원군 렬사들의 전투적위훈과 공적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뉴스] 北, 6·25 종전일 앞두고 작년 서해서 건진 '적 비행기' 전시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북한이 6·25전쟁 정전일을 앞두고 지난해 서해에서 인양했다는 '적 비행기' 잔해를 공개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해 서해 초도(남포 인근 섬) 수역에서 건져내 새로 전시한 '적비행기 잔해'가 최근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노획무기전시장에 새로 전시돼 참관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고 17일 보도했다.
[뉴스] 北, 6·25전쟁 75주년 맞아 반미의식 고취…"만고죄악 규탄"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북한이 6·25 전쟁 75주년을 맞아 반미의식을 끌어올리며 내부 결속을 다졌다. 
조선중앙통신은 25일 '6·25 미제 반대 투쟁의 날'에 즈음해 청년학생들과 여맹일꾼(간부), 여맹원들의 복수결의모임이 24일 평양시 일대에서 진행됐다고 전했다. 
 
[사회/문화]
...졸업하면서부터였다. 당시는 경호원과 당중앙위원회 지도원(부원)이 서기로 동행했다. 촬영소에는 사무실도 있었고 간소한 침실도 꾸렸다. 그때부터 예술영화촬영소에는 부비서 직책만 있었다. 당비서는 사실상 김정일인 셈이다. 모든 영화사업은 김정일의 지도와 비준을 받아야 했다.
● 김현숙 우인희 성혜림 세 여인의 배우생활의 연도를 돌아보자.
김현숙은 1953년 6·25전쟁이 끝나면서 영화촬영소 현지에서 입문한 중학교 졸업생이었다. 집이 근방이라 촬영소 주변에는 늘 아이들이 서성였다. 그들 중 눈에 짚이는 처녀가 17세 김현숙이었다. 영화인들이 그를 불러 몇 동작을 찍어 돌려보니 배우로 품이 있었다. 특히 앞으로 가면서 뒤로 돌아서 웃어보는 모습이 귀엽고 아름다웠다...
[지리/관광]
아빠, DMZ에 가면 뭐가 있나요?
20세기 중반, 6·25 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우리는 그때의 상처를 입은 채로 아직도 임진강 주변에서 남과 북이 서로 대치 중이다. 이 책은 대학생 딸과 아빠의 대화 형식을 빌려 평소 일반인들의 접근이 쉽지 않은 비무장 지대와 민통선 인근의 문화유산을 답사한다. 오두산성부터 반구정까지, 호로고루성부터 자유의 다리까지 수도권과 비교적 가까운 파주·연천의 한강 하류와 임진강, 한탄강 하류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이 지역은 한반도의 역사가 기록되기 이전부터 인류의 거주 흔적이 가장 많았던 곳 중 하나이며, 지정학적·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젊은 세대는 평화와 통일의 당위성을 스스로...
[정치/군사]
『남조선 해방전쟁 프로젝트 1(침묵의 전쟁 38선을 넘다)』은 해방 이후부터 1960년대까지 북한이 무모하게 감행한 대남공작의 전모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기록서. 저자는 방대한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김일성 체제하에서 진행된 조직공작과 선전선동 및 특수공작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공개한다. 성시백 사건, 여간첩 김수임 사건, 국회 프락치 사건, 강동정치학원, 6·25 전쟁 당시의 정치공작대 등 굵직한 사례들을 생생히 마주하다 보면 북한 공작이 오늘날도 예외가 아니라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은 단순한 사건의 나열을 넘어,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독자 스스로 현재와 미래를 전망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이 책의 시리즈 (2)
 
[정치/군사]
...상당수가 지도자의 위대성을 직 · 간접적으로 찬양하고, 지도자에 맞서는 대상은 악마화시킨 우표이다. 「만국우편협약 및 최종의정서」 제6조 제5항 제4호에서는 우표의 디자인에 “국가에 대하여 적대성을 지닌 정치적 인물이나 주제는 배제된다”고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미(反美), 반일(反日)을 주제로 한 북한우표는 수없이 발행되었다. ‘남조선 인민이 북한의 지도자를 흠모하고 찬미’ 혹은 ‘남조선 인민이 대한민국 정부를 배격’하는 모습을 부각하여 연출한 우표도 많다. 6 · 25 전쟁을 ‘북침(北侵) 받았으나 결국 영광스러운 승리를 맞은 사건’으로 그려내는 등 일어나지 않은 각종 역사적 사실을 조작(造作)...
[통일/남북관계]
“6·25전쟁 75주년 맞아 숨어 있던 참전용사들의
생생한 증언집 『호국영웅들의 이야기』 출간”
“잊혀진 영웅들을 기억하고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20여 명 참전용사의 실명 증언 수록,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
한국전쟁 발발 75주년을 맞아 출간된 『호국영웅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너무 쉽게 “과거”라 부르고 지나쳐왔던 전쟁의 한복판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은 단순한 군사 기록이 아니다. 이름 없는 병사, 전투의 최전선에 섰던 노병, 이제는 고인이 된 이들의 살아 있는 목소리를 통해...
[학술논문] 중국의 ‘抗美援朝’ 전쟁과 周恩來
...6월 25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했을 때 중국은 ‘조선전쟁’이라고 불렀으나, 10월 중국인민지원군(the Chinese People’s Volunteers)이 참전하면서 ‘抗美援朝戰爭’으로 명명하였다. 당시 ‘抗美’는 ‘保家衛國’이라는 애국주의 구호이고, ‘援朝’는 위험에 처한 형제나라 ‘조선’을 도와준다는 국제주의 구호이다. 그런데 항미원조전쟁은 조국 방어와 조선을 돕는 전쟁을 넘어, ‘인민해방군의 현대화 건설, 국내경제건설, 대중동원, 애국주의 정신, 중국의 대국지위’ 등 정치․외교․군사적으로 중요한 주제와 관련되며, 사회 각 방면의 인적․물적․사상적...
[학술논문] 韓㳓劤의 韓國史學 方法論에 대한 고찰
...있고, 대학생 때에는 일제의 학병 징집을 거부해 强制勞役을 당했다는 점, 그가 당초 史學을 전공키로 결심한 이면에는 排日的 저항의식이 상당한 작용을 했지만, 해방 후의 여건 변화는 그의 전공을 韓國史學으로 바꾸게 했다는 점, 그는 동료들과 『朝鮮史槪說』을 집필하였고, 조선후기의 天主敎 傳來 문제를 다룬 졸업논문을 학회지에 실리고, 母校 강사가 됨으로써 6.25 동란 직전에 한국사학자로 대두할 수 있었다는 점 등이다. 둘째로 한우근의 한국사에 대한 인식의 방향을 살핀다는 목표아래, 당초 한국사에의 접근방식과 주요 쟁점에 대한 견해와 입장을 검토하였다. 그리하여 그가 처음에는 한국사를 세계사적 연관성 아래 合法則的으로 파악코자 하여 시대구분에서 ‘封建’이란 용어를 사용하였으나, 그것은 내용상...
[학술논문] 6․25전쟁 이전 북한의 평화운동
북한에서는 6·25전쟁 이전부터 세계평화운동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평화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북한은 1949년 3월 개최된 평화옹호전국연합대회의 준비를 시발로 전국 각지에서 평화옹호운동을 조직하기 시작했고, 4월에 개최되는 파리 평화옹호세계대회에 대표단을 파견함으로써 세계평화옹호운동에 동참했다. 전쟁 이전 북한 사회에서 평화운동은 국제사회의 평화옹호운동과 달리 반전운동이나 반핵운동의 일환으로 강조되기보다 통일운동의 대중적 실천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북한 사회에서 평화운동은 대중들에게 정부의 통일방침을 교육하고 선전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자 동시에 북한 사회의 일상적 활동을 통일운동과 연결시키는 역할을 했다. 평화운동은 이를 통해서 대중들의 관심과 역량을 통일운동으로 결집해내고, 통일운동의...
[학술논문] 자유민주주의와 방어적 국가형성: 대한민국 초기국가형성 재고, 1945~1950
이승만 정부는 건국직후에 이중적 위기상황을 맞았다. 하나는 미군철수에 의한 군사적 공백에서 오는 안보적 위기였고 또 하나는 국내의 체제저항 및 반란세력의 물리적 도전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위기였다. 이러한 이중적 위기상황은 1948년 정부수립부터 1950년 6․25 직전까지 적지 않게 국가체제와 정치체제에 영향을 주었다. 특히 1948년 10월의 여순반란사건으로 인하여 신생국가체제 전반에 대한 좌익의 침투를 색출하는 작업과 함께 국가보안법의 제정이 이루어져 방어적 국가형성이 이루어졌다. 제1공화정 초기의 국가 부문은 아직 안보나 경제 등의 각종 하부구조적 권력이 충분히 체제도전에 대응할 정도로 확립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1948년 말에 국가보안법이 제정됨으로써 가장 취약한 자유주의체제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학술논문] 6·25 전쟁~1950년대 후반 북한의 평화운동
In North Korea, Peace Movement started briskly before the Korean War. Even though the outbreak of the Korean War staged by North Korea put peace movement on hold, North Korea ran the movement anyway very actively as a propaganda in order to seek an end to the war that had become an international conflict. This article intends to clarify the developmental aspects and characteristics of North Korea’s